기자라면 생각해봐야 할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2014. 6. 9. 11:11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 flickr by European Parliament

 

어떤 사건, 사고가 생기면 그곳에는 '기자'가 있습니다. 기자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만큼 언제 어디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발로 뛰고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힘쓰죠. 그래서 전국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는 큰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은 기자들의 전쟁터입니다. 이곳에서 사실 그 자체에 승부가 갈리는 것이 지면 1면에 보도되는 기사인데요. 그 기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성되고, 왜 기자들은 기사를 보도하려는 것일까요? 다독다독에서 기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슈에서 빠지지 않고 큰 사건이 터지는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는 40여 명 정도로 그들은 매일 전쟁을 치르죠. 그 전쟁은 누가 더 사실에 가까운 자료를 수집하고 기사를 내느냐가 걸린 전쟁이랍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실을 근거로 해서 정리가 된 기사는 단연 지면 신문과 인터넷 신문에 1면을 장식합니다. 이런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매일 아침 기자실에서는 문자 소리에 잠을 깨죠. “XX 일보 관련, 구체적인 수사 상황은 확인해줄 수 없습니다.”라는 새로운 기사를 작성하라는 알람과 같은 문자를 빈번하게 받으면서 사는 것이 검찰청 출입 기사의 일상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의 기자가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털어놨죠. M 기자는 전쟁터 같은 일상을 반년 가량 보내고 나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기사의 대부분이 반복적이고 이미 생산되었던 내용의 재생산이 이뤄지다 보니 이것도 기자의 의무지만, 그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것은 검찰 조직에 변화를 가져올 기사를 발굴하는 일이었습니다. 수사 상황과 관련하여 ‘단독’ 기사로 기자의 능력을 검찰에게 과시하는 것보다 검찰이 방해받지 않고 수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내용, 더 나아가 검찰 내부의 불합리한 제도도•관행을 개선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때 ‘해결사 검사’ 이야기를 만났죠.

 

출처_ 위키백과

 

취재원으로부터 ‘연예인, 검사, 성형외과 의사’가 연관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고 합니다. 자기 손으로 구속한 여성 연예인의 수술비를 반환하라며 성형외과 의사에게 압력을 행사한 검사가 있다는 내용은 큰 사건이라고 본능을 자극했죠. 선배들에게 보고하자 선배들도 “사실이면 얘기가 되겠지만 정말 그랬을까”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네요. 그래도 두 번 세 번 취재원을 통해 확인하고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는 즉각 기사를 쓰기 위해 법조팀과 함께 사건을 공유했죠. 이때부터 사회를 들썩이게 한 ‘해결사 검사’ 사건 보도 과정이 시작됩니다.


 

 

사건을 조사하는 부분에서 M 기자는 여자 연예인을 맡아서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곧장 여자 연예인 C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니라고 계속 부인하던 그녀와 결국 인터뷰를 하게 됐죠. 그는 바로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본인이 잘못해서 인터뷰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손이 떨렸다고 합니다. ‘기회는 한번’이라고 되뇌며 목적지에 도착해서 10여 분 후 C 씨를 만날 수 있었죠.

 

그가 처음 한 인터뷰의 내용은 취재원에게서 들었던 것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C 씨는 자신이 받은 수술이 잘못되어 재수술을 요청했지만, 성형외과 의사 D 씨는 재수술해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하네요. 그것이 억울하고 답답해서 울면서 검사인 F 씨에게 전화했다고 합니다. 그 후 검사가 의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도 직접 시인을 했죠. 

 

출처_ 위키백과

 

C 씨와 F 검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습니다. C 씨는 첫 인터뷰에선 이를 부인했다고 하네요. “오빠 동생 사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다”고 밝힌 게 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에서 F 검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죠. C 씨는 시종일관 애절한 목소리로 “처음에는 여자가 울어도 차갑게 대해, 따뜻함이랑은 상관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속이 따뜻한 사람이더라. 법정에 검사님이 들어가셔서 나의 나쁜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내가 기댈 곳은 검사님밖에 없는 거다. 다들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기자들밖에 없는데 내 모든 나쁜 점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 검사님이 그나마 믿을 사람이라고밖에 안보이더라. 힘든 일이 있었던 만큼 검사님이 내게 편지를 써주셨다. 그때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라고 느꼈다. 검사님은 제게 힘을 주신 분이다. 내가 최 원장 때문에 괴로울 때 그분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검찰청으로 돌아가는 M 기자는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취재원을 통해 입수한 정보는 사실과 다르지 않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했기 때문이죠. 여성 연예인과 그를 구속기소 했던 검사, 둘 사이에 싹튼 사랑, 여성 연예인의 성형수술에 얽힌 의사, 그 의사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 등의 복잡한 이야기 중에 보도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가 180도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선정적일 수도 있는 내용까지 공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냐, 검사의 비위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취재 내용을 공개할 것이냐, 아니면 묻어버릴 것이냐’하는 고민에 빠졌다고 했죠.

 

출처_ flickr by Kreg Steppe

 

 

 

M 기자는 첫 인터뷰의 내용과 팀의 취재 내용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보도를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F 검사가 자신이 저질렀던 압력을 행사한 내용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시인을 했고, 인간적인 호소도 했기 때문에 ‘꼭 쓸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공익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검사의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잘못은 지적해야 한다는데 모두 동의했고, 결국 첫 기사가 출고됐다고 합니다. C 씨의 설명은 넣지 않고 검사의 잘못된 점에 초점을 맞춰서 해명을 최대한 실어주려고 노력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나간 기사에 대해 주변에서는 다소 밋밋했다는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선정적인 내용을 밝히면서까지 이 이야기를 계속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후 C 씨가 진료받은 의사의 시술 내용과 프로포폴 투약, 성폭행이 이슈화되면서 검사가 저지른 잘못이 묻히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단순히 압력을 행사한 차원을 넘어서 검사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압수수색을 하겠다.”고 하는 등 의사를 협박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죠.

 

이런 내용을 토대로 두 번째 기사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정은 접어두고 검사의 권한 남용과 사건 청탁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취재했고, 이러한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대검 감찰본부가 신속하게 움직였다고 하네요. 감찰에서 수사로 전환했고 F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와 체포, 구속이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현직 검사가 공갈 혐의로 구속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죠.

 

출처_ pixabay by lavanderiadesign 


 

 

M 기자가 이 취재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극적 요소를 갖춘 사건에 대해서 다른 언론사에서 보도 방향을 선정적인 내용으로 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속 이 내용은 부풀려 확대됐고 C 씨와 D 의사 사이에 벌어졌던 성폭행과 그밖에 내용이 선정적으로 비치면서 사건이 검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초점으로 보도했던 애초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죠. 결국, 처음 C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증폭되는 의혹을 정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후 정리된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고 하네요.

 

F 검사는 결국 공갈 및 변호사법 위반 협의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죠. 이 사건으로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검찰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며 대검찰청 감찰본부 등 관련 부서에는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검찰청은 전국 감찰 부장회의를 개최해 감찰 강화 방안과 내부 비리 근절 방안을 논의했고, 신임 검사들은 발령 후 3개월간 독자적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젊은 검사들의 비리가 잇따르자 검찰이 뒤늦게 취한 조치였죠.


 

 

‘해결사 검사’ 사건 후 M 기자의 일상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아침에 들어오는 문자 소리에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기자실에서 일어나곤 하죠. 하지만 검찰의 역사에는 오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검찰 구성원에 대한 감찰은 더 강해졌고 초임 검사들은 선배 검사의 감독을 받게 됐죠. 젊은 검사들은 더는 여자 친구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며 연애가 한결 편해졌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검찰이 좀 더 긴장하고 자기 검열하는 분위기가 된 것은 맞습니다.

 

M 기자는 검사 비리 기사 하나로 검찰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의 긴장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지도 알 수 없다고 하죠. 하지만 그를 포함한 기자들의 노력도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검찰청 출입 기자로서 이들을 계속 감시하고 질책하고 때론 격려하는 게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는 많은 동료•선배 기자들이 그런 자세로 검찰청을 출입한다고 합니다.

 

 출처_ 위키백과 / flickr by Dawid Krawczyk

 

검찰은 항상 국민의 신뢰를 얻고 싶다고 말하는 데, 자신의 치부를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 절반은 기자 몫이라 말하는 M 기자 같은 사명감이 투철한 기자들이 참다운 언론인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도 알아야 할 권리를 찾아주는 기자 여러분 모두를 다독다독에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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