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사건으로 알아본 피의자의 인권과 알 권리의 딜레마

2014. 6. 30. 09:03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이미지 출처_ flickr by TJJohn12 


몇 해 전, 공저로 초상권에 관한 책을 한 권 냈습니다. 함께 책을 썼던 기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사회고발뉴스를 담당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열악했던 사회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죠.

 


기자의 말처럼 80년대와 90년대, 기자들은 경찰관으로 하여금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는 피의자를 끌어내게 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 안 찍히려고 고개 숙인 피의자를 향해서는 고개 들라는 주문까지도 했다고 하네요. 이건 좀 심했다 싶지만, 그땐 그럴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고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 후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횡포’를 운운하며 사회로부터 언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게 됐죠. 그런데 놀랍게도 수갑 찬 피의자 모습이 방송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한동안 진전을 보였던 인격권 존중 움직임이 최근 들어 퇴보하는 듯한 조짐마저 감지되죠. 대표적인 예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의 폐지입니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은 2005년 10월 4일 제정됐다가 2012년 7월 23일 폐지됐습니다. 폐지되기 전 직무규칙 제83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원칙적으로 공판청구 전 언론에 수사사건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예외적 공개 가능성은 열어두었죠. 또 국민들이 의혹을 제기하거나 불안감이 계속 생겨서 해소해야 유사범죄 예방을 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리고 기타 공익을 위해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사건의 공개가 가능하고, 이 경우에도 직무규칙에서는 범죄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피의자 명예나 사생활에 관련된 사항 등은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경찰서 안에서의 촬영도 금지시켰습니다.(제84, 85조)

 

이미지 출처_ flickr by Marie Coleman 

 

안타깝게도 직무규칙이 있는 동안에도 효과가 미미했기에 축소되다가 결국 폐지되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러한 직무규칙이 있다가 폐지되는 동안 모두 수갑 찬 피의자의 모습은 언론에서 보이게 되죠. 적어도 직무규칙이 폐지된 2012년 7월 23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찰서 내에서 수갑 찬 피의자 모습을 촬영하는 데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이 수갑 찬 피의자 모습을 촬영하고 공개하는 것이 정당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비교적 명쾌한 답변을 지난 3월 27일 헌법재판소가 내놓았습니다. 헌법 재판소는 한 사기범죄 피의자의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서측의 촬영 허용 행위가 법을 어겼다고 판결했죠(2012헌마652).

 

 

 

모든 법 이론의 발전이 반드시 공익적 동기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경찰서의 보도자료 배포 및 사진 촬영 허용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보험 사기범 A씨였습니다.


A씨는 교통사고를 위장한 보험사기 혐의로 구속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그것도 형제가 함께 범죄에 가담해서 수사를 받았는데요. 문제는 2012년 4월 24일 경찰서 측이 기자실에 ‘교통사고 위자, 보험금 노린 형제 보험 사기범 검거’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들에게 A씨가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이것에 대해 A씨는 언론보도의 위법성과는 별개로, 경찰이 자신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고 수사 받는 모습을 촬영하도록 허용한 행위가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경찰서를 상대로 같은 해 7월 20일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법 재판소는 이 사건을 크게 보조자료 배포 행위와 촬영 허용 행위로 나누어 위헌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우선, 보도자료 배포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 재판소는 헌법소원 심판청구 자체를 각하했습니다. 이 부분에 적용되는 것은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하는 것인데요. 보도자료 배포 행위가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헌법소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절차를 통해 구제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소원은 다른 어떤 절차로도 구제 받을 수 없는 경우에만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기에 각하됐습니다. 이런 결정은 피의사실 공표로 처벌받는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에 사건을 언론에 공개한 경찰서 관계자가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위헌여부를 가린 것은 촬영 허용 행위 부분이었는데요. 이 부분도 헌법소원으로 다룰 수 있는지부터 문제가 됐습니다. 이 경우도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더 이상의 심사를 보류하고 각하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재판관들은 촬영 허용 행위를 보도자료 배포 행위와 구분해서 별개로 다뤘습니다.


 

 

헌법 재판소에서 내린 결정에서 크게 다섯 가지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범죄 사실’ 자체가 아닌 그 범죄를 저지를 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에 관한 부분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야 할 공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에 예외적으로 피의자가 공인이어서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경우,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범행 재발 방지와 범죄 예방을 위한 경우, 체포되지 않은 피의자의 검거나 중요한 증거의 발견을 위하여 공개 수배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은 공개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극히 제한적인 영역임으로 꼭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미지 출처_ public-domain-image  

 

두 번째는 피의자로 결정하는 수사관서 내에서 수사 장면의 촬영은 보도과정에서 사건의 사실감과 구체성을 추구하고, 범죄 정보를 좀 더 실감나게 제공하려는 목적 외에는 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헌법소원을 신청한 청구인은 공인이 아니고 보험사기의 이유로 체포된 피의자이므로 신원 공개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나아가 공개적으로 수사 장면을 촬영하도록 하는 것에 어떠한 공익 목적이 없기 때문에 목적의 정당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사람의 얼굴은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로 공개됐을 때, 각인효과가 크고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로 확산이 쉽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방지를 위해서 피의자의 개인적인 인적 사항에 대한 공개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촬영 허용 행위에 대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으로서 피의자의 얼굴 공개로 가져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모자, 마스크 등으로 피의자의 얼굴을 가리는 등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이번 헌법 재판소의 결정과 관련하여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몇 가지 점을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우선, 이번 결정으로 위헌임이 확인된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 피의자의 얼굴 촬영 내지 공개입니다. 피의자가 공인이거나 특정강력범, 성폭력범일 때 및 체포되지 않은 피의자의 검거 등을 위해 공개수배가 필요할 때는 여전히 얼굴 촬영 및 공개가 ‘가능’하죠. 그러나 이미 체포돼서 조사받고 있는 일반 피의자라면 얼굴을 비롯한 신원공개는 결코 정당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이번 결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와 관련하여 경찰과 검찰로 대표되는 수사기관, 나아가 언론까지도 이번 결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데요. 헌법 재판소가 이번 사건에 개별 사건을 뛰어넘는 포괄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의자의 얼굴 및 조사받는 모습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언론에 노출되는 일은 현재도 일어나고 있어 앞으로도 구체적으로 반복될 위험이 있고, 피의자의 인격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는 영역으로서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하여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항이다.”

 

이미지 출처_ 위키백과

 

헌법 재판소가 결정문에서 ‘헌법적 해명이 긴요하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사안의 반복성과 중대성, 최초성이 있을 때입니다. 헌법 재판소가 ‘헌법적 해명이 긴요하다’고 하면서 판단에 착수했다는 것은 헌재 스스로 관련 논쟁의 종결자가 되기를 자처했음을 의미하며, 이런 점들을 모두 감안할 때 향후 이 결정이 미칠 파급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번 결정으로 공개가 금지된 사항이 피의자가 경찰서 조사실에서 조사받고 있는 모습만은 아닙니다. 사건은 피의자가 수갑을 찬 채 경찰서 조사실에서 조사받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것인데, 이것 자체로도 초상권 침해입니다. 그런데 헌법 재판소는 “피의자를 특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수사관서 내에서 수사 장면의 촬영은(…)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여 결국 수사 장면의 공개 자체가 아닌 당사자의 신원공개를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언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나온 피의자가 수사 받고 있는 장면을 촬영, 공개한 것을 가리켜 “사건의 사실감과 구체성을 추구하고, 범죄 정보를 좀더 실감나게 제공하려는 목적 외에는 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내용입니다. 수갑 찬 피의자 모습 공개에 공익성이 없다는 것이죠.


사실 생생한 정보의 전달은 기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사항입니다. 자신의 기사에 어떻게 하면 사실감과 구체성을 더하고 사건을 좀 더 실감나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기자가 아니겠죠. 그런데 사건에 사실감과 구체성을 더하기 위한 것이 공익이 아니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_ flickr by James Jordan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도 헌법 재판소가 취한 기본적인 관점은 공익과 사익 사이의 균형이죠. 법적 판단은 언제나 충돌하는 법익 사이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헌법 재판소는 일반 피의자의 얼굴 내지 수사 장면 공개는 공익과 사익 사이의 균형을 잃은 보도라고 봤습니다.


물론, 이 균형점은 당사자가 공인일 때, 혹은 강력범이거나 성폭행범일 때 등등 상황에 맞게 이동하고 무조건 얼굴 공개, 사진 촬영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죠.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잡아야 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기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기사에 사실감과 구체성을 더하려는 노력 외에도 공익과 사익 사이의 적당한 균형감각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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