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21. 14:24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flickr by Nathan Penlington
삶은 흔히 선택의 연속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어떻게, 할까, 말까'로 고민합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독서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부르는 독서 과정은 이렇죠. 책 선택 - 독서 - 서평 - 독서토론! 이 모든 단계를 거치는 독자는 흔치 않습니다. 서평이나 독서토론은 대개 생략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이 일련의 단계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게 하나 없죠. 모두가 중요하지만 독서의 첫 단계인 `책 선택'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우리 주위에 책이 얼마나 흔합니까, 그래설까요? 사람들은 의외로 책 고르는 일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책 선택은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요?
독서를 오랜 습관으로 여기고 살아온 사람들은 책 선택을 잘 합니다. 오래 하다 보면 능숙해지기 마련이죠. 문제는 이제 막 독서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독자들입니다.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지금 내게 맞는 책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무엇을 읽을까’란 질문은 조금 이상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타인에게 물어보진 않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몸이 아는 거죠. 책 선택은 일차적으론 취향의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정에는 책 읽는 소녀 동상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 동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죠.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살아가면서 책은 양식이 아니라, ‘특식’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책을 읽는 일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취미가 되다 보니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읽을 책조차 `남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는 일은 흔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헌책방을 배회하다 쇼펜하우어가 지은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을 만납니다. 그 순간을 니체는 "세계와 인생, 그리고 자신의 본성이 소름 끼치도록 웅장하게 비치고 있는 하나의 거울을 보았다"고 감격해 합니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간디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만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나는 큰 즐거움을 가지고 [월든]을 읽었으며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위대한 철학자, 정치 지도자의 삶에서 그네들이 선택한 책 한 권의 위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책 선택이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습니다. 잘못된 책을 선택하는 일은 잘못된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죠. 저자는 온전한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영혼을 망치는 사이비 교주와 다를 바 없습니다.
출처_ flickr by kestumparle
한겨레신문에 서평을 연재하는 여성학 강사 정희진 씨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은 입법, 사법, 행정부가 아니라 `출판 산업 종사자'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녀는 그네들을 감히 ‘지체 높은’ 관료들보다 중요하다 했을까요. 이들의 안목, 시계(視界), 가치관에 따라 사회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책을 만들고 책을 권하고 추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대중에게 권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여론과 인식이 바뀌겠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그러니, 책 한 권을 추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이겠나요?
쉽게만 보였던 책 선택이 결코 쉬운 일도 아니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우린 책을 제대로 고를 수 있을까요.
첫째, 밥은 자기 손으로 먹는 것처럼 읽을 책도 자기가 고른다는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음식을 남이 떠먹여 주는 일은 아주 굴욕적인 일입니다. 맛도 없겠죠. 자기 입에 맞는 음식은 자기만 아니까요. 천하의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책이라도 자기에게 맞는 책인지, 지금 읽어야 할 책인지, 그것은 오직 독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둘째, 베스트셀러에 대한 편견을 버립니다. 여기서 제가 의미하는 `편견'이란 베스트셀러가 나쁘다 좋다, 라는 것 자체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것까지 버리고 베스트셀러도 순수하게 그저 한 권의 책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은 분명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두의 입맛에 맞다고 내 입에 맞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죠. 대중이 함께 읽는 것은 시류에 편승한다는 안도감을 선물하지만 책 선택에 있어서는 좀 ‘콧대가 높아야’ 합니다. 군중심리는 접어두고 모두가 읽는 책도 안 읽겠다는 오기 정도는 있어야 주체적 독자로 바로 섭니다. 물론 꼼꼼히 살펴보고 책이 좋다면 두말 않고 읽어야겠죠.
셋째, 한 곳만 파면 바보가 됩니다. 장르에 집착하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폭을 좁히는 독서보다는 넓히는 독서를 해야 합니다. 스페셜리스트(전문가)는 `스페셜한(특별한) 바보'란 말이 있죠. 종교, 문학, SF, 무협 등 특정 장르만을 파고드는 독서는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 서적만 읽는 분들은 정치나 사회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이들은 독서를 하면 할수록 식견이 좁아지고 결국 바보가 되는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서양이 스콜라 철학에 압도된 중세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양성에 기반한 인문학을 부응시켰기 때문입니다.
출처_ pixabay by geralt
넷째,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를 즐깁시다. 지방에 사는지라 서울 나들이가 쉽지 않습니다. 서울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대형 서점이죠. 서점에 들어서면 몇 시간은 그냥 지나가더군요. 책을 발견하는 기쁨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책을 선택하는 일에 앞서, 책의 발견이란 위대한 사건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책 한 권의 발견, 그것은 사람의 긴 인생에서 그의 운명을 뒤바꿀 새로운 대륙과의 만남이죠.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신속성과 편의성도 책 선택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책 발견에 힘을 써야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서문과 목차를 읽으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책을 고를 때 제목만을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을 뜯어보기엔 분량이 만만치 않으니 지레 포기하고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 혹은 책 띠지의 홍보문구 만을 보고 달랑 책을 고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 않으면 좋은 책을 고를 수 없습니다. 책을 사기 전에, 목차와 서문 정도만 읽어봐도 책의 수준이 드러납니다. 서문은 수백 페이지에 쓸 내용을 단 몇 페이지로 요약한 일종의 저자 ‘공약’ 이자 상품 ‘견본’에 해당합니다. 목차는 큰 제목으로 축약한 책의 알맹이죠. 번역서 같은 경우, 번역의 질이 서문에 드러나고 맙니다. 번역서를 고를 땐 반드시 서문을 봐야 조악하게 번역된 책을 골라낼 수 있습니다.
출처_ flickr by Phil Roeder
네 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루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습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 그리고 그것이 내 운명을 정했노라고” 지금 무심코 선택하는 한 권의 책이 당신의 운명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선택해 읽는 일은 다른 한 권의 책을 포기하고 결국 읽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책 선택의 비극입니다. 호기로운 젊은 시절, 대학 도서관에 섰을 때가 기억납니다. 도서관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은 제법 많았지만 아직 젊으니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을 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직장을 잡고 생활인으로 살다 보니 1년에 책 100권 읽기도 벅찹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안타까움이 프루스트 시의 주제라면, 숱한 책과 멀어져야 하는 것은 독자의 숙명입니다. 결국 가지 못한 길과 읽지 못한 책을 남겨두고 우리 삶은 끝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어떤 책을 고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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