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예술, 표지 디자인 이야기

2014. 7. 16. 11:27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The Book Design Blog 



여러분은 책을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시나요? 지인이나 각종 미디어에서 추천하는 책을 고른다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기준으로 나에게 필요한 책을 고른다거나 혹은 읽기 쉬워 보이는 책을 고르는 등 그 방법도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독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읽을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조건이겠지만, 그 외에도 독자들의 선택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척 많습니다. 그 중에서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표지 디자인은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게 만들어 책의 마케팅적 측면에서 무시 못할 요인이기도 합니다.


책의 표지가 판매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표지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표지의 중요성은 무시할 게 아니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처럼 책도 점차 보여지는 것이 중요시 되는 요즘, 출판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표지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새학기가 시작되면 두꺼운 달력이나 남는 포장지로 책의 표지를 싸서 책을 들고 다니곤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표지가 뜯겨 종이가 너덜거리거나 더러워지곤 했지만, 새마음 새출발을 상징하는 교과서를 깨끗하게 보관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있었던 거죠. 이처럼 1980, 90년대에는 학생들 사이에 책 표지를 포장하는 일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출처_Flickr by meganleigh 



특히 대형서점의 포장지로 표지를 싸는 것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였습니다. 책의 디자인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없던 당시 모던한 색상의 포장지와 화려한 그림이 들어가면서 서점의 로고가 찍힌 포장지로 싼 책은 당시 지성과 교양의 상징이었을 정도입니다. 혹은 하나의 패션소품에 비교할 수도 있을 정도로 책 포장은 개성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 포장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는데요. 책 표지를 다른 종이로 싸서 다니는 것은 독재정권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이죠.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편하게 들고 다니기 어려웠던 당시 사회이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책 표지 하나로도 당시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돌이켜 보면 재미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런 책 포장은 90년대 후반 들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책 표지 디자인이 눈에 띄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서점을 둘러보면 다양한 표지 디자인으로 장식 된 책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이라도 출판사에 따라 디자인이 천차만별이죠. 좋은 표지 디자인이 바로 구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 같은 조건의 책이면 기왕이면 더 맘에 드는 표지 디자인의 책을 구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처럼 구매의 2차적 고려요소로서 표지가 영향력을 발휘하다 보니 디자인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었던 당시 다소 혁신적이기까지 했던 책 디자인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읽기만 하는 책에서 소장한다는 의미를 담아 하나의 소장품으로써 책을 구매하는 경향도 생겼을 정도로 디자인 전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예를 들어 <빨간 블라우스>라는 책은 빨간 리본으로 여며진 앞선을 풀면 속옷처럼 하얀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고, <남도기행>이라는 책은 책의 표지에 산수유가지가 놓여 있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97. 11. 28 



이때부터 책 표지 디자인에 대한 독자와 출판업계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범람하는 책 속에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도 디자인 경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북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는데요. 이렇게 제품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책의 표지 디자인에도 경쟁이 붙은 이유는 최근 독특한 디자인의 책을 ‘소장’ 하려는 여성 독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청취용과 소장용을 구분해 두 장을 구매하는 것처럼 이런 문화가 책에서도 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이며, 설득력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표지는 단순히 판매촉진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책 표지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정체성을 만든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의 수단으로 책 표지 디자인이 쓰인다는 것이죠. 이런 예는 세계명작모음집으로 유명한 ‘민음사’의 디자인과 저가의 문고본 책으로 인기를 끄는 ‘펭귄북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처_알라딘 인터넷 서점 



우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경우에는 책의 상단은 책과 관련된 이미지 혹은 작가의 사진 등으로 꾸미고 나머지는 전부 흰색 바탕으로 채우면서 디자인만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민음사 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죠. ‘펭귄북스’는 매력적인 표지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선명하게 부각시켰습니다. 표지 면을 3단으로 나눠 상단은 긴 타원형 도형 안에 ‘펭귄북’이라는 문구를 넣고 가운데는 책 제목, 하단에는 펭귄 로고를 배치했는데요. 표지에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강조하던 다른 책들과 비교해 펭귄북스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디자인의 힘으로 펭귄이라는 말 자체가 저렴하고 보기 편한 페이퍼백과 동의어가 됐습니다.



출처_알라딘 인터넷 서점 




사실 책을 읽을 때 책의 띠지는 불편함을 주곤 합니다.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깝고 들고 다니며 책을 읽는 경우에는 띠지만 따로 보관해 두고 다 읽고 나면 띠지를 다시 두르곤 하는데요. 책 표지의 아랫부분을 두르는 이 ‘띠지’도 최근 책 디자인 요소에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좋은 띠지도 판매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 책 띠지의 트렌드는 바로 ‘크고 넓게’입니다. 기존에는 띠지가 책의 5분의 1 정도 크기였다면, 최근에는 책의 절반, 심지어 3분의 2까지 차지할 정도입니다. 초기 책의 띠지가 처음 등장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빨강과 파랑, 노랑 등의 강한 원색의 바탕에 ‘OOO선정 필독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선정!’ 등과 같은 홍보문구를 새겨 넣었던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띠지의 불편함과 종이 낭비라는 측면이 강조되면서 점차 띠지는 사라지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대형 띠지와 책 디자인과 어울리는 띠지가 등장해 이목을 끌면서 다시 띠지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기존의 광고문구가 아닌 사진이나 타이포그래픽 등의 이미지가 채워진 띠지와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넣는 등 다양한 디자인의 띠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띠지의 변화 역시 기존 표지 디자인으로만 시선을 끌기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조금이라도 더 차별화를 두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책의 표지 디자인이 구매를 결정하는 데 100% 요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내용을 얼마나 잘 담고 있느냐가 결국 독자들의 구매 결정 요소입니다. 최근의 표지는 너도 나도 예쁘고 독특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예쁘고 좋은 것도 많이 보면 무덤덤해지지만 좋은 글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것이 됩니다. 디자인이 좋아서 책이 잘 팔리는 것이 아닌 글이 좋기에 스스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진리는 책을 만들고 쓰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기억하고 되뇌어 봐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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