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9. 13: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저널리스트들은 ‘잘 보는 사람들’입니다. 특정한 대상(인물 혹은 현상)을 끈질기게 보는 관찰자들이죠. 단지 보는 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본 바를 세상에도 보여줍니다. 그 보여주기의 방식은 말과 글과 사진과 영상 등이죠. 묘하게도 영화의 구성과도 닮았습니다. 영화는 대사(말)와 시나리오(글)와 스틸컷(사진)과 씬(영상)으로 이루어지죠. 물론 저널리스트의 말과 글은 허구의 각본에 따르는 게 아니라 진실에 입각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말입니다.
저널리스트의 모티브는 ‘내가 본 것을 대중에게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널리즘=책임감’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성립될 수는 없겠지만, ‘책임감’은 분명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지성과 행동을 대외적으로 표출하게 되는 주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이걸 ‘신념’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생각(think)이 굳어지면 사고(thought)가 되듯, 강력한 책임감은 신념으로 발전하니까요.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의 생애는 대부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말콤 엑스, 무하마드 알리, 마가렛 대처, 테레사 수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삶은 유명합니다.
말과 글, 사진과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저널리스트들 중에도 극적인 순간을 살아낸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에드워드 머로(Edward R. Murrow, 1908~1965)와 로저 에버트(Roger Ebert, 1942~2013), 존경받는 두 저널리스트의 영화 같은 삶의 단편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냉철한 언론인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은 미국 CBS 방송사에 근무했던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를 조명한 작품입니다.(“굿 나잇 앤 굿 럭”이라는 말은 에드워드 머로가 자신의 시사 프로그램 <씨 잇 나우(See It Now)>에서 자주 들려주었던 끝인사입니다.)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1950년 미국은 이른바 ‘매카시즘’이 불어닥치고 있었습니다. 이 용어는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가 “미국 국방성에 200여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라며 전개한 대대적인 반공 정치를 일컫습니다. 당시 언론사들은 괜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공산주의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매카시의 공격적인 정치 성향에 대해 입을 다물던 상황이었죠. 말하자면 조셉 매카시라는 존재는 당대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출처_ Wikipedia
이때 유일하게 매카시와 정면으로 맞선 언론인이 바로 머로입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씨 잇 나우>를 통해 오로지 사실(사례)에 입각하여 매카시의 정치 행보를 신랄하게, 그리고 매우 담담하게(머로 특유의 냉철한 논조와 프로그램 진행 방식은 <굿 나잇 앤 굿 럭>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비판했습니다. 방송 이후 매카시는 격분하며 정정 보도를 요구했고, 일부 여론은 머로와 그의 팀을 싸잡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습니다. CBS 수뇌부에서도 머로에게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죠.
이런 외압 속에서도 머로는 매카시와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머로의 <씨 잇 나우>는, ‘매카시즘’의 정당성 여부를 파헤치는 청문회 개최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매카시의 주장은 근거 없는 허위였음이 밝혀졌으며, 상원의원회 결의안 채택으로 조셉 매카시의 정치 생명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1950년 매카시즘 비판 외에도 머로의 드라마틱한 보도 정신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빛을 발했었습니다.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된 런던 한복판, 언제 폭격을 맞고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옥상에 한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삼십대 초반의 이 정신나간 기자 덕에 공습 상황이 라디오로 생중계되었죠. 안전을 이유로 중계방송을 불허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영국 수상을 겨우 설득한 뒤에 진행한 전시 보도였습니다. 머로의 이 중계방송은 참전 반대 쪽에 기울어 있던 당시 미국 내 여론을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죠.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 머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TV는 번쩍이는 바보상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단, 전제가 있습니다. “TV는 지식을 전합니다. 깨달음도, 영감도 선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쓰일 때만 그렇습니다.” 이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머로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수용자 개개인의 ‘시각’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언론인이었습니다. 특정 보도 혹은 정보를 맹신하지 말고 “오직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대하라는 것이죠. 이는 언론인과 수용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언론인으로서 머로는, ‘대중’과 ‘권력’이라는 두려움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쓴 소리를 전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냉철한 지성인 중 한사람이었죠.
암 투병 중에도 300여 편의 글 남긴 평론가
퓰리처상(The Pulitzer Prize) 하면 왠지 탐사 취재와 폭로 기사 같은 특종 보도에만 주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있습니다. 평론(Criticism)도 그 중 하나죠. 지난해 일흔한 살을 일기로 영면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1975년 세계 최초로 영화 비평으로 퓰리처상 평론 부문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이십대 중반이었던 1967년부터 《시카고 선 타임즈(Chicago Sun-Times)》에서 영화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암 투병으로 눈을 감은 해인 2013년까지 장장 46년간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날에도 평론을 썼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다룬 영화는 <투 더 원더(To The Wonder)>라는 작품입니다.(그가 《시카고 선 타임즈》에 기고한 첫 평론작은 <갈리아(Galia)>라는 영화입니다.)
워낙 인기도 많았고 영향력도 막강했던 로저 에버트는 평론 기고 외에도 영화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네 살 연상의 동시대 평론가였던 진 시스켈(Gene Siskel, 1946~1999)과 함께 1986년 미국 ABC 방송국에서 <At the Movies>라는 평론쇼의 메인 호스트로 활약했죠. 진 시스켈이 타계한 뒤에는 로저 에버트 단독으로 얼마간 진행을 맡았으며, 이후 또 다른 영화평론가 리차드 로퍼(Richard Roeper, 1959~)와 공동으로 방송을 이끌어가기도 했습니다.
출처_ IMDB
DVD와 블루레이 컬렉팅이 취미인 영화 팬들이라면, “Two thumbs up!”이라는 문장이 익숙하실 겁니다. 책의 추천사처럼 DVD나 블루레이 케이스 표지에 새겨져 있는 홍보 문구이죠. 양손의 엄지를 동시에 치켜세워 찬사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이 인상적인 손짓의 주인공이 바로 로저 에버트입니다. 마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혈전을 관전하던 네로 황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엄지를 세우거나 내려서 검투사들의 생사를 결정짓던 전능한 황제 말입니다. 에버트는 수작에 대해서는 엄지를 번쩍 올리며 극찬했지만, 범작의 경우에는 가차없이 엄지를 내리며 독설을 내뱉곤 했죠. 평론가로서 자부심도 강하고 쇼맨십도 탁월했던 그는 자신의 ‘엄지 평론’을 특허 출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극단적인 평론 탓에 에버트는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호감형은 결코 아니었으나, 그만큼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했던 평론가 로저 에버트.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평론가였다는 점입니다. 2006년에 그는 침샘과 턱에 퍼진 암 때문에 턱 관절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말로 하는 평론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죠. 그 대신 더욱 열정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암 투병 중에 500여 편의 영화를 보고, 꾸준히 평론을 남기는 일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없을 겁니다.(사망 전해인 2012년에만 306편의 평론을 써냈다고 하죠.)
출처: IMDB
로저 에버트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제목과 카피가 멋들어집니다. 제목은 <Life Itself>, 카피는 “The Only Thing Roger Loved More Than Movies”입니다. ‘로저가 유일하게 영화보다 사랑했던 것, 삶 그 자체’.
삶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영화를 사랑하지도 않았을 테고, 병상에 누워 노트북을 켠 채 수백 편의 평론을 써낼 수도 없었겠죠. 모든 분야가 그러할 것이듯, 글쓰기에서도 결국 관건은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 ‘애정의 진정성’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다독다독
'다독다독, 다시보기 > 기획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투르게라도 '붉은 선'을 그어보자... 그것이 창작이다 (0) | 2014.10.10 |
---|---|
2014 한류 컨퍼런스, 한류에도 소통이 중요! 상대국 이해는 필수! (0) | 2014.10.02 |
확장된 인포그래픽, 인접 영역으로 확대되는 '비주얼 콘텐츠' 사례 (0) | 2014.09.26 |
교황 방한 4박 5일, 위로 받은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는? (0) | 2014.09.23 |
주말 육아 예능 프로그램의 현황과 한계는? (0) | 201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