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7. 13: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louisehallwriter
단연코 겨울은 연인들을 위한 최고의 계절입니다. 추위는 서로의 체온을 더욱 더 간절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빼빼로데이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까지 연인들은 위한 날들이 줄줄이 있습니다. 연인이 있는 사람들도, 짝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사랑’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절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길래 오늘은 가슴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미친 듯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고 싶어지기도 하고, 하염없이 웃음을 짓고 싶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죠. 여러분에게는 그런 사랑이 있나요? 이 책을 읽으며 옛 사랑을, 지금의 사랑을 추억하시면 어떨까요?
평범한 한 남자가 보내는 순수한 사랑 -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의 뒷표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어찌보면 참 아리송한 말이지만, 이 말만큼 이 소설을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할 말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퓌순을 향한 케말의 30년간의 이야기가 바로 이 2권에 집약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터키 이스탄불. 시대는 1975년으로 자유연애(성적인 것을 포함한)가 아직 정착하지 못한 구시대적인 사고가 팽배한 때입니다. 부유한 집안에 잘 나가는 회사, 게다가 결혼을 약속한 아름다운 연인 시벨을 곁에 둔 주인공 케말은 약혼식을 앞둔 어느날, 시벨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상점에서 먼 친척 퓌순을 만나게 됩니다. 케말은 매력적인 외모에 누구보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퓌순에게 한순간 매료되었고 그날 이후 그들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게 되죠. 하지만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기 두려웠던 케말은 퓌순을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 가슴 속 깊은 사랑을 간직한채 말이죠.
"물건의 힘은 그 안에 쌓인 기억만큼이나 우리의 상상과 기억력의 추이와도 연관되어 있다. 다른 때라면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저 평범하다고 여겼을 바구니 속에 든 에디르네 비누나 비누로 만든 포도, 모과, 살구, 딸기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마음속 깊이 느꼈던 평안함과 행복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감정들은 내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 물건들과 마주하는 관람객들로 그렇게 느끼리라고 진심으로 순수하게 믿는다."
_ 2권, 91쪽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이 《순수 박물관》인 이유는 놓쳐버린 사랑, 퓌순에 대한 케말의 사랑의 방식 덕분입니다. 이 책의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한 쪽 귀걸이'나 '손수건'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케말은 퓌순의 물건들을 수집해 처음 둘이 만났던 그 옛 아파트에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합니다. 후에는 성냥갑, 퓌순의 담배꽁초(총 4213개가 되었다), 소금 통, 커피 잔, 머리핀, 슬리퍼 등으로 더욱 다양화 되고요. 그리고 30년 뒤에 케말은 그 모든 것들로 박물관을 세울 것을 결심합니다. 퓌순에 대한 30년의 역사를 담은 순수 박물관을 말이죠.
대부분의 평범한 남자들은 케말처럼 퓌순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케말이 달랐던 건 비겁했던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그렇게 평생 그녀의 물건을 수집하는 걸로 속죄했기 때문이죠. 이 생에서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퓌순은 행복했을 것이라 믿는 것도 바로 그의 속죄의 방식 때문입니다.
그냥, 내 곁에 살아주면 안 되나요? - 『미 비포 유』
지금은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를 잃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토록 고집부리며 좋았던 것들, 좋을 수도 있는 것들을 보지 않으려 작정하고 끝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으려 한다는 생각을 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날짜가 무슨 바위에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무조건 강행하려는 그가 믿어지지 않았다. 백만 가지 소리 없는 항변이 머릿속에서 덜컹거렸다. 어째서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거예요? 어째서 나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어째서 나한테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한테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그랬다면 달랐을까요? _ 479쪽 중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영국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루이자라는 웨이트리스로 온 집안을 먹여 살리는 억척스러운(?) 여성입니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늘 밝고 긍정적이라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하는 매력을 가진 여자였죠.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일자리를 찾던 중 사지마비환자의 간병인 자리를 얻게 됩니다. 딱 6개월 동안만, 그저 환자 옆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그림 같은 성으로 지어진 어마어마한 부잣집이었습니다. 사지마비환자인 윌트레이너는 한때는 수려한 외모에 한때는 엄청나게 잘 나가던 금융맨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사고로 모든 꿈이 날아가버렸고 휠체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며 세상을 원망하는 까칠한 남자로 변했습니다.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집 여자, 환자와 간병인이 만나 처음에는 서로를 싫어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었던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준다는 아주 진부하고도 단순한 플롯이 바로 이 책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책의 결말은 완전하게 다른 로맨스 소설입니다. 뻔하지 않은 결말과, 충격적인 소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출처_ yes24
윌이 선택한 것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락사였습니다. 루이자를 사랑하기에, 그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자신이 가는 마지막 길에 그녀가 함께 해줄 것을 청합니다.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보다는 나빠질 가능성이 크고, 그녀에게도 짐이 되는 것은 싫었기 때문에 그는 스위스(디그니타스 병원)로 향하죠. 그리고 끝까지 그 방법을 반대하던 루이자도 끝내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 스위스로 향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며 이 책은 끝나버립니다(아마도 그래서 제목이 me before you가 아닌가 싶습니다. 너보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선택이니깐).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결말이지만 그가 스위스행을 택했기 때문에 이 책은 의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건 윌트레이너이기에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선택을 내리기까지 본인도, 주변 가족과 친구들도, 그리고 루이자 역시 노력했기에, 그 노력의 과정이 이 책의 2/3가 넘는 분량 속에서 그려졌기에 윌의 선택은 더욱 존중받아야 마땅하게 느껴집니다. 펑펑 울고 싶은 날엔 이 소설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오래된 연인들을 위하여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은 서른아홉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입니다. 그녀는 아직 미혼이지만 로제라는 오래된 연인이 있었죠. 로제는 비록 이혼 경력이 있었지만 둘은 마음이 잘 맞았고 서로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로제는 주말이면 폴을 찾아와 둘만의 달콤한 주말을 보내고 돌아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둘에게도 권태가 찾아옵니다. 여자의 직감이란 무서운 것이죠. 폴은 로제의 태도가 예전같이 않음을 눈치챕니다. 출장을 핑계로 주말에 도시를 떠나있고, 연락도 뜸해져만 갔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시몽이라는 젊은 청년이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열살 가까이 어린데다 지나칠 정도로 잘 생겼고, 부잣집 도련님에 피끓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폴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젊은이의 패기로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 펼치기 시작합니다. 밤새워 쓴 편지 보내기,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 간절한 눈빛으로 데이트 신청하기 등등 그녀에게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격정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그녀에게 구애하죠.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아이를 보듯 했지만 시몽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콘서트 티켓을 보내오자, 그 쪽지를 받은 폴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떨림을 느껴본지가 너무 오래된 탓이었겠죠.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구절이 그녀를 미소짓게 한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는가?
_ 56쪽 중에서
이 소설의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바로 시몽이 보낸 쪽지 속에 담긴 대사입니다.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말이고, 어찌 보면 생판 모르는 남자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말인데도 폴은 이 쪽지 하나로 잃어버렸던 설레임을 되찾게 됩니다. 오래된 연인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낯섬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떨림,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양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청년, 폴은 그만 무너져내립니다.
사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해가는 사랑을 지켜보는 것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것, 또 다시 사랑은 찾아오지만 이미 이 사랑도 변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복잡한 심정이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입니다. 호기심이 익숙함으로, 떨림이 편안함으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당연한 진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숙제일 것입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곁에 누군가 함께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것은 따뜻하게 나눌 마음이 필요해서겠죠? 그런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가슴 저릿한 소설을 읽어보며 한 주를 보내보시면 어떨까요?
ⓒ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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