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0. 13: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zkafe
일본에는 정말 많은 책이 매해 발매가 되고, 많은 인기 작가가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신카이 마코토,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있는데, 그런 작가들의 어떤 책은 단순히 책의 장르를 넘어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일본 작가들의 다양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랫동안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 꽤 많았는데요, 오늘은 그 작가들 중 일본에서 젊은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작가가 있습니다. 그 작가의 소설이 새로 발매될 때마다 매번 여러 일본의 문학상 후보작으로 거론되고는 하는데요. 바로 ‘이사카 코타로’입니다. <사신 치바>라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일본에서만 100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인데요. 이런 작품이 있기에 다른 그의 작품들도 궁금해집니다. 이제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까요?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사신이 넘나든 연결된 과거와 현재
<사신 치바>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르는 게 아니라 각 이야기의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인물 이야기 속에서 이어지는 요소를 읽어볼 수 있다는 게 <사신 치바>가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책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치바는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사신입니다. 치바가 하는 일은 일주일 동안 목숨을 거두어야 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죽음을 주어야 하는 사람에겐 ‘可(옳을가)’를, 아직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보류’를 내리는 일을 합니다. 그가 일을 할 때마다 비가와 ‘내가 일을 하면 언제나 비가 내린다.’라는 문구가 책의 앞에 적혀있습니다.
출처_ yes24
이런 치바 외에도 다른 사신들도 일을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신들이 항상 ‘可(옳을가)’를 결정하고 대상은 일주일 후에 죽습니다. 다른 사신들의 건성으로 하는 관찰을 비판하지만, 치바 역시 대체로 ‘可(옳을가)’라는 판정을 내립니다. 이 작품 속에는 치바가 내린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인물과 시간 사이의 연결고리가 탄탄하여 재미를 더한다는 것입니다. 시간 배경이 다르지만, 과거의 인물이 언급되면서 치바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아니! 이 부분은? 앞에 나왔던 부분이잖아!?’하며 감탄을 하게 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들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꽤 있습니다. 그중에 그의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간 구성과 치밀한 복선이 가득해서 독자에게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도록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입니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 나한테는 더 공포지." 나루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말만 거창하게 하는 정치가가, 나라의 경기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잘리지도 않고 질기게 붙어 있는 걸 보면, 그쪽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야. 칼에 찔려 죽은 시체는 그에 비하면 심플하지."
-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162쪽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는 강도가 강도를 당한다는 설정으로 경쾌한 대화와 함께 치열한 두뇌 싸움까지 그려져 있어서 가벼워 보이지만, 그 속에 사회 문제를 이질감 없이 녹여내서 보는 내내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죠.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현재의 ‘나’와 2년 전의 ‘나’의 시간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교차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독특한 시간 구성에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모든 연결고리와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의 조화가 흩어졌던 조각들을 모아서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물합니다.
특히 보통 생각하기 힘든 요소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부분을 읽다보면, ‘와! 정말 천재인 것 같아!’ 같은 감탄이 나오기도 하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면서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 책과 영화 모두 보시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는 것도 좋겠죠?
대학생의 입을 빌린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이사카 코타로의 <사막>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제목인 <사막>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비유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평범한 대학생과 조금 평범하지 않은 니시지마입니다. 서로 얽히면서 마작 그룹을 형성해 친목을 다지나 작은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추리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냥 문학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이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작품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판’이 정말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니시지마가 던지는 말은 저 자신을 향한 지적이기도 했고, 일본 사회의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니시지마의 몇 가지 말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변과 거리를 두고, 나만 잘살면 된다, 대충 남들만큼만 살면……. 그렇게 사는 걸로 괜찮겠냐는 말이에요. 니체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죽기 살기로 싸우는 칼잡이에게나 배만 부르면 좋아라 하는 돼지에게나 똑같이 거리를 두고 있다면, 그것은 그저 범인(凡人)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요."
- <사막> 20쪽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런 술집에서, 학생들이 맥주를 마시며 어디선가 죽어간 사람들을 두고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같이 마음 아파하며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원조차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적어도 그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은 갖고서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사막> 302쪽
"나한테는 지금이 바로 황금기입니다. 지금 이때뿐이라고요. 과거나 앞으로의 일은 관심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아니, 사람들은 뭐 하는 겁니까.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다든가, 공무원이 되겠다든가, 사법고시에 붙겠다든가 하는데, 그게 다 뭘 위한 겁니까? 말로는 그러면서들, 요즘 보면 개나 소나 빈둥빈둥 할 일 없어 보이는데요, 뭘."
- <사막> 450쪽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학생들의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낮은 이유는 바로 현재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남들만큼만 살면 된다는 인식이 너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막>에서는 이 사실을 냉철하게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식으로 일본 사회의 문제를 잘 비유해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전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작가인 게 아닐까요?
비록 나라의 무대가 다르더라도 한국에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만나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를 뒤좇아 가는 그런 모습을 오래전부터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정치적 상황만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닮아있어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기에 작품을 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_네이버 책 <사막>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겨울을 맞아 꽃을 피우고, 초록의 옷을 입었다가 색동옷으로 갈아입었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보통 이런 겨울이 되면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허한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런 감정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신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고는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우리가 지친 일상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우리가 조금은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사회에 대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소설입니다.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간 배열 구성과 날카로운 지적. 그것이 바로 이사카 월드를 개척한 가장 큰 원동력이니까요. 여러분도 이사카 월드를 한 번 경험해보시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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