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과 언론사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

2014.11.26 13:02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 AP Photo / Evan Vucci



2009년 4월 2일 오전 11시(미국 동부 시간 기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세계 최대 경제기구인 G20 합의사항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G20 회원국들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1조 달러 가량의 자금을 쾌척했다는 내용이 골자였죠.



 무의미한 1면 톱기사 


CNN을 비롯한 전 세계 유력 매체들은 일제히 고든 총리 발표 장면을 생중계했습니다. 수많은 뉴스 사이트들은 고든 총리 발표 전문을 링크해주면서 다양한 기사들을 쏟아냈는데요, 가디언을 비롯한 전통 언론들도 일제히 블로그 생중계 등을 통해 속보 경쟁에 가세했습니다.


그로부터 16시간가량 지난 다음 날 아침. 미국 가정에 배달된 뉴욕타임스 1면엔 어제 하루 종일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가 톱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그 무렵엔 신문을 받아볼 대다수 독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뉴욕타임스는 그날 아침의 가장 중요한 뉴스 자리에 G20 합의 소식을 그대로 올려놨습니다. 미셸 스티븐스는 최근 출간한 ‘비욘드 뉴스(Beyond News)’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해주면서 뉴욕타임스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뉴스를 어떻게 1면 톱으로 올릴 수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출처_ 로이터



외부에서만 이런 모순된 상황이 보이는 건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를 참여 관찰한 뒤 ‘뉴욕타임스에서 뉴스 만들기(Making News at the New York Times)’란 책을 출간한 니키 우셔도 비슷한 지적을 했는데요, 지난 2010년 5개월 동안 뉴욕타임스를 참여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책에서 니키 우셔는 뉴욕타임스엔 속보를 처리하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종이신문이 지배하는 구세계에선 발생 속보(breaking news)란 내일 보여줄 뉴스를 의미합니다. 반면 온라인 저널리즘이 지배하는 신세계에서 속보란 ‘새로운’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것입니다. 신세계에선 6시간 뒤엔 홈페이지가 완전히 달라져야 하죠. 하지만 종이신문이 나올 무렵이 되면 뉴욕타임스 인터넷 사이트는 종이신문 기사를 소화하느라 다시 후퇴하는데요, 기자들이 오늘 뉴스와 내일 뉴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뉴욕타임스 얘기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디지털 퍼스트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던져줍니다. 하루 단위로 발행되는 종이신문 위주 시스템으론 더 이상 각종 이슈를 제대로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죠. 예전처럼 종이신문 위주로 보도하면서 각종 디지털 플랫폼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으론 더 이상 변화된 뉴스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됐습니다. 올초 공개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의 핵심 키워드가 디지털 퍼스트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동형 뉴스 소비가 대세


한동안 미디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거론되던 디지털 퍼스트가 최근 들어선 국내 언론계를 강타하는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디지털 퍼스트란 종이신문 위주 정책에서 탈피해 실시간 속보가 가능한 인터넷신문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책을 말합니다. 국내에선 파이낸셜뉴스가 최근 CMS(Contents Management System)를 개편하면서 디지털 퍼스트 선언을 한 가운데 한겨레신문도 조만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체질 개선에 착수할 예정이죠. 경향신문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많은 전통 언론사들 역시 디지털 퍼스트 전환 여부를 놓고 면밀한 검토를 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출처_ 퓨리서치센터, 2012.5.9.~6.3.



왜 갑자기 디지털 퍼스트 바람이 부는 걸까요? 뻔한 얘기지만 소비자들의 뉴스 구독 행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침(조간신문)과 저녁(텔레비전 9시 뉴스) 두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것은 이젠 먼 옛날의 전설 같은 얘기가 됐습니다. 지금처럼 하루에 한 번 발행되는 종이신문 위주로 뉴스를 제작할 경우엔 독자들의 달라진 뉴스 소비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할 우려가 많습니다.


이런 진단이 막연한 짐작만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전문 사이트인 쿼츠가 퓨리서치센터를 인용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 변화가 한눈에 들어오는데요[그림1],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06년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뉴스를 체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훨씬 많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수시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월등히 늘어나면서 정기적으로 뉴스 보는 비중을 압도했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물론 추이상으로 보면 2004년 무렵부터 뉴스 소비 변화가 눈에 감지됐습니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마트폰 바람이 가속화된 것이 거대 트렌드 변화에 기름을 부었다고 봐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뉴스 소비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면서 절대 다수가 그때그때 뉴스를 보고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출처_ 한국언론진흥재단, 2013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111쪽 재구성.



국내 미디어 이용 행태를 살펴봐도 이런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 미디어 이용자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종이신문 주 이용 플랫폼이 점차 고정형 인터넷에서 이동형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그림2],

[그림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난해를 기점으로 신문기사의 주된 이용 경로가 이동형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대다수 독자들은 종이신문이란 완결된 상품을 통해 뉴스를 보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관심 있는 뉴스를 확인하는 쪽으로 성향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하루 종일 뉴스를 취합한 뒤 완결된 상품으로 내놓는 아날로그식 뉴스 생산 시스템을 고수할 경우엔 대다수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독자들의 소비 행태 변화를 보면 디지털 퍼스트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 문제란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종이신문 중심 문화 극복해야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퍼스트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하지만 언론사 내부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조금 달라집니다. 여전히 주된 매출은 전통적인 상품, 즉 종이신문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디지털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규모가 전체 매출의 10~20% 남짓한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2014년 2분기 실적을 보면 이런 상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어요. 뉴욕타임스가 지난 2분기에 디지털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매출은 4,200만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이 같은 규모는 같은 기간 뉴욕타임스 전체 매출 4억 달러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여전히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종이신문 매출이 과감한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한데요, 국내 대다수 언론사들 역시 디지털 매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편집국의 종이신문 중심 문화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뉴욕타임스의 G20 정상회담 보도 사례 역시 종이신문 중심 문화가 실시간 뉴스 시대에 얼마나 큰 족쇄가 되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줍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제아무리 이슈가 되더라도 종이신문에 실려야만 그 뉴스를 제대로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디지털 퍼스트는 실현됐다고 보기 힘들죠.



출처_ Snow Fall - The New York Times



편집국의 종이신문 위주 문화가 의제 설정 문제만 옥죄는 건 아닙니다. 기자들의 업무 루틴 역시 철저하게 종이신문 제작 시스템에 맞춰져 있는데요. 굳이 비유하자면 야구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판하는 선발 투수와 비슷한 생활에 익숙해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뉴스 경쟁은 수시로 마운드에 오르는 구원 전문 투수와 비슷하죠. 따라서 종이신문들이 제대로 된 디지털 퍼스트를 완성하기 위해선 기자들의 기본 업무 루틴을 재정비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현재 디지털 퍼스트는 당위와 현실 사이 어느 지점에 어정쩡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 변화를 고려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전면 시행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수익구조나 편집국의 업무 시스템을 고려하게 되면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과제입니다.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한 많은 언론사들의 행보가 생각처럼 빠르지 않은 것도 이런 점 때문이라고 봐야 하죠. 그만큼 쉽지않은 과제란 얘기입니다.



 업무 시스템부터 바꾸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퍼스트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독자들의 시선이 이미 그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어느 정도 유예 기간이 있을 순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경쟁하는 구도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은 뭘까요? 원론적이란 전제를 깔고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5월 공개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는 디지털 퍼스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게중심을 바꾸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죠. 무슨 이야기일까요? 지금처럼 내일 신문을 만드는 관행에서 탈피해 오늘 나온 뉴스로 웹 사이트를 꾸민 뒤 그 기사들을 토대로 내일자 신문을 만드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각 사의 실정에 맞게 업무 시스템을 정비해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앞으로 기자 채용과 교육 역시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면 어느 새 ‘디지털 퍼스트 미디어’로 새롭게 탄생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요?


@다독다독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11월호>에 실린

김익현 /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 겸 국제IT분야 대기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