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교수의 ‘3가지 필살기’

2011. 8. 3. 08:5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경복궁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면 비 오는 날 근정전을 찾아야 한다. 빗물이 앞마당에 넓게 깔린 박석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유홍준 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사답사기6>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로 단숨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적 호기심이 있거나 ‘풍류’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빗속의 경복궁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겠는가.
 

<박석의 미학이 아름다운 경복궁 근정전 앞 마당. 사진 김성철 작가>


책엔 저자가 이 ‘박석의 미학’을 알게 된 경위가 나와 있다. 문화재청장에 임명 받아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 당시 관리소장 박연근 씨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소장님, 경복궁은 언제가 가장 아름답습니까?”

“청장님, 비 오는 날 꼭 근정전으로 와 박석 마당을 보십시오. 특히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여기에 와보면 빗물이 박석 이음새를 따라 제 길을 찾아가는 그 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물길은 마냥 구불구불해서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하수구로 급하게 몰리지 않습니다. 옛날 분들의 슬기를 우리는 못 당합니다.” (36~37쪽)


박석은 온돌방 구들장으로 이용하던 건축자재다. 시골에서 자란 이들에겐 낯익은 평범한 돌이다. 누구도 별 주목을 하지 않았던 이 박석으로 인해 경복궁은 아름다움 하나를 더 더하게 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은 ‘인생도처유상수’다. 살다 보면 삶 곳곳에서 상수(고수)를 만난다. 박연근씨는 유홍준 교수가 만난 상수 중 한 명이다. 책 앞머리를 통해 유 교수는 제목을 짓게 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들이었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상수와 하수. 둘의 차이는 학식보다 생각에 있다. 하수는 자신을 상수라고 여긴다. 반면 상수는 자신보다 한 수 높은 이가 있음을 안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상수다. 이미 관련분야에서 고수인 그로부터, 나아가 그가 소개하는 상수로부터 한 수 배울 기회, 바로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유홍준 교수가 한 수 배운 이는 관료나 지식인에서부터 농사꾼까지 다양하다. 난해한 현대 설치미술에 대한 한 촌부의 촌평을 듣고, 미술평론가로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는 대목이나 ‘마늘쫑을 바늘로 빼내는’ 촌부의 지혜에 놀라워한 대목이 그 사례이다.

고수는 저절로 무릎을 치거나 탄성을 자아내는 깨달음을 준다. 유 교수에게 경복궁의 진면목을 깨우쳐준 또 다른 상수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다. 이 부분을 소개하려면 유서 깊은 경복궁의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책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주요 전각의 이름을 맡겼다. 고궁을 방문하면서 건물 이름에 세세한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을 터. 그러나 앞으로는 이 특별한 이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정도전은 건물마다 깊은 뜻을 지어 바쳤다. 그 이름 하나하나가 정말로 당대 인문정신의 소산이라 칭송 받을 만하다. 모든 이름의 뜻에는 고전에서 이끌어온 근거가 있었다.’ (25쪽)


일례로 경복(景福)은 시경의 한 시구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누리리’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정도전은 경복궁의 중심건물에 ‘근정전’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대단하지 않은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왕이나 CEO의 역할에 대해 이처럼 단순 명쾌하게 제시한 글이라니. 특히 ‘편히 쉬는 것 자체가 부지런함이다’라는 부분은 압권이다. 유 교수는 이 대목을 두고 “정도전은 상수 중의 상수”라며 탄복했다.

저자는 ‘한국 문화유산 가이드 계’의 최고수다. 여기엔 바로 이, 숨어있는 상수를 알아보는 감각적인 안목이 한 몫 했다. 더불어 하수에게 ‘한 수를 지도하는’ 소통(글쓰기) 능력이 발군이다. 더구나 상수로부터 배운 수를 활용해 묘수를 빚어내는 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는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책에 그 한 예가 소개되어 있다. 

<보성강변. 산과 들과 강, 마을이 한 컷에 담긴 정겨운 장면>


가을이면 우리 시골들판은 벼가 익어 누렇게 변한다. 서양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언젠가, 그 황금빛 모습이 저자와 동행한 이국의 한 현대미술평론가의 마음을 ‘신기하게’ 물들였다. 저자는 그 순간을 포착해 다음과 같은 촌철살인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논이다.” (155쪽)


이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는 유홍준 교수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곳을 골라 실었다. 그 중 하나가 그의 시골집(외산면 반교리 ‘휴휴당’)이 있는 부여다. 휴식을 위해 지은 부여 땅에서 그는 ‘외압’에 밀려 또다시 현지문화를 소개하는 가이드가 되었다. 책 내용 중 1/3 가까이 할애된 백제 문화유산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송국리 선사유적지와 관촉사 은진미륵(석조미륵보살입상) 부분이다.

먼저 남한 최대의 청동기시대 유적지인 송국리는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믿을 수 없는 사실”이라며 국사교육의 난맥상을 꼬집었다. 중학교 국사에 나오는 청동기시대 사진 도판으로 실린 ‘민무늬토기’와 고등학교 국사에 나오는 ‘비파형동검’이 모두 송국리 출토 유물이라는 것.

은진미륵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 불상에 대한 세간의 선입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학생시절 이 석불에 대해 배운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높이가 18미터에 이르는 우리나라 제일 큰 불상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고려시대 제작된 불상조각으로 석굴암이 만든 신라에 비해 크기만 크고 조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지금도 이런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감동하라는 것인가, 감동하지 말라는 것인가? 사람의 선입견은 무서워서 이런 예비지식을 갖고 석불을 대하면 그 자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얻어들은 지식과 맞추는데 급급하게 된다.’ (404쪽)


그는 만든 목적이나 미적 기준을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은진미륵이 추구한 이상은 일종의 파격미라는 것.

‘석굴암을 만든 분들이 추구한 것은 조화적 이상미요. 완벽한 질서였다. 그래야 중앙정부의 안정된 체제유지와 뜻이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백제 고토라는 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런 숨 막힐 듯 완벽하게 짜인 질서가 아니라 차라리 그 질서를 파괴하는 힘, 괴력과 신통력의 소유자인 부처님이어야 민중도 뭔가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409쪽)

책은 답사기답게 문화유산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먼저 순천 선암사에 가면 두 가지를 봐야 한다. 하나는 꽃과 나무다. 절 인근에는 100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궁궐이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대부분 있어 ‘우리나라 정원수의 표본 전시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1년 열 두 달 꽃이 없는 날이 없는 곳이 바로 선암사다. 이 중 압권은 무우전과 팔상전 담장길에 호젓하게 서 있는 매화다. 

<선암사 무우전 매화. 홍매와 백매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는 곳. 사진 김성철 작가>

다른 하나는 선암사의 독특한 건축미학이다. 특별한 마스터플랜 없이 필요에 따라 증축해 묵은 동네 같은 산사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이와 함께 종교적, 토목공학적, 미학적 뜻이 모두 담겨있다는 삼인당 연못과 우리나라 돌다리 중 명작으로 손꼽히는 승선교(보물 400호)는 가히 환상적이라는 설명이다.

이전 시리즈가 그랬듯,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얻는다. 문화유산을 말할 때, 중국이나 서양의 예를 들어 화려한 외관이나 크기를 동원한다. 그러나 유 교수는 왕궁의 숨은 매력부터 평범한 우리산하의 독특한 개성까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를 종종 외국인의 시각을 통해 확인하게 될 때 짜릿한 뿌듯함을 느끼는데, 책에 나온 다음 글이 그 한 예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해보았지만 지금처럼 산과 들 마을과 강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56쪽)


이 밖에 절묘하게 ‘싸인(sin) 12도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영암사터 돌계단의 곡선 미학이나, 두 가문 사이에 소유권 싸움이 치열했던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당장 마음을 유혹한다. 

<연암사터 쌍사자석등과 무지개 다리. 휘어진 돌계단이 이채롭다>


거듭 말하거니와, 유홍준 교수가 답사를 하며 여러 상수로부터 많은 지식을 얻었다지만, 독자들에겐 그가 ‘상수 중 상수’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상수는 아래의 명언을 남긴, 저자가 시리즈 1권에서 밝힌 조선시대 한 문인이 아닐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디서든 무릎을 치지 않는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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