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새벽귀신이 된 사연
2011. 8. 2. 12:4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오늘 새벽도 여느 때처럼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시간을 보니 4시 29분. ‘정말 새벽귀신이 씌웠나?’ 이렇게 눈을 뜨는 시간. 그 오차 범위가 불과 10분 아래, 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아침은 4시 27분, 그제 아침은 4시 35분, 그 그제 아침은 4시 40분... 하도 신기해서 이렇게 외우고 다닐 정도입니다. 전날 저녁술을 먹었어도, 그리고 늦게 잤어도 다음날 새벽에 눈이 떠지는 시간은 거의 정확합니다.
이렇게 로봇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이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니 거의 살아 온 평생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닙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런 저의 습성을 들은 어느 목사가 한 말이 있습니다.
"그 좋은 습관을 왜 그냥 헛되이(?) 보내세요? 선생님은 새벽기도에 나오셔야 할 맞춤형 인간이세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새벽에 잘 일어나지 못해 새벽기도에 애먹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시계처럼 정확히, 그리고 거뜬하게 일어나니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죠. 하긴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그 목사 말대로 새벽기도를 나갔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겐 행여 들여 먹히지 않을 소리일 뿐이었어요.
할 일이 많습니다. 저의 모든 일과는 이른 새벽, 지금부터 부지런을 떠는 것입니다.
이른 새벽 도둑고양이처럼 현관문을 살짝 엽니다. 틀림없이 그 곳엔 신문 뭉치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겠죠. 하나는 전직 신문사에서 간부를 지냈던 공과로 평생 동안 무가지로 주는 동아일보입니다. 제가 퇴직하고 나서 딱 하나 고마워하는 게 이 제도예요.
또 하나는 벌써 40년 이상을 줄기차게 보는 모 신문입니다. 저 같은 고정 독자가 그리 흔할까요? 상을 줘도 될 만하지 않는가요? ^^;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리고도 한 신문은 최근에 저의 일과 연관이 되어 구독하는 신문입니다.
남편이 신문사 생활 몇 십 년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아내도 거기에 물든 것 같습니다. 좋은 버릇이죠. 한편 기특하기도 합니다. 요즘 주부들, 두 가지 이상의 신문 찬찬히 훑어 읽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하여튼 신문 한 부를 들고 저는 화장실로 직행을 합니다. 화장실의 조그만 공간은 신문 읽기에는 최고로 아늑하고 좋은 공간이죠. 그곳엔 돋보기와 메모지, 그리고 볼펜이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변기에 앉아있는 시간은 장장 한 시간. 빨라야 50분입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생리적인 볼 일도 시원하게 끝나지만 신문의 마지막장 사설까지의 정독이 완전히 끝납니다. 물론 메모장에는 벌써 그림 아이디어 몇 가지가 낙서처럼 그려져 있죠. 이런 덕분에 변비 걱정은 제 사전엔 없습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씩이나 앉아 있으면 혹시 치질로 고생하지 않느냐고, 하긴 옛날에 치질 수술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아직까지 재발할 징후는 보이질 않는답니다.
세 신문을 모두 정독을 하고 난 아내는 양쪽 신문을 식탁 위에 나란히 펼쳐놓습니다. 안 봐도 뻔합니다. 이제부터는 서로 기사를 비교하면서 흥분하죠. 특히 시사문제에 대해선 신경을 곤두세우는데요. 이른 새벽부터 여자 입에서 담기 어려운 욕설도 서슴없이 튀어 나오죠.
정치문제는 언제나 저보다 한 수 위여서 문답식으로 대답하기에는 제가 항상 궁색합니다. 전(前) 대통령이 어떻다는 둥, 여당이... 야당이... 국회가... 북핵이... 오바마가... 좌파... 우파... 아내의 트집은 끝이 없습니다.
옆에 있던 애견들이 깜짝 놀라 도망을 갑니다. 그 때야 비로소 아내는 잠잠해집니다. 제 큰소리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것 같습니다. 아~ 아내의 말에 맞장구 안쳐줘도 되는 날은 정녕 오지 않을 것일까요?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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