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앞둔 대학생이 말한 신문읽기의 중요성

2011. 8. 3. 13:2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신문이라는 자신감 갖고”

수요일 오후 3시.
강의가 시작하기까지 10분 정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에는 빈자리 하나 없이 이미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앉을 자리가 부족해 뒤에 서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신문으로 국제사회 읽기’ 첫 수업 강의실의 풍경이다. 80명 정원이었지만 강의실에 들어선 학생들은 이미 그 수를 넘었었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의 관심 속에 교양과목 ‘신문으로 국제사회 읽기’ 수업은 시작되었다. 


‘신문으로 국제사회 읽기’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대학 신문읽기 강좌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강의다. 이 강의는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종이신문과 멀어지고 있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신문매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물론 신문기사를 통해 격변하는 국제사회의 동향을 파악하고 글로벌 마인드와 폭넓은 세계관을 형성시켜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 날 그 날 우리가 가져 온 신문이 바로 강의에 필요한 교재이자 강의 주제가 되었다. 신문매체의 속성과 지면 구성방법, 거미줄 같은 세상에 대한 이해, 국제 보도를 통한 국제정치 트렌드와 그 속에 비친 한국의 지도 등 신문을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 시야와 안목을 넓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언론 현장에 계시는 분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대학생들의 신문읽기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역사적인 현상에 있을 때 울림이 있다.”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 안병찬 선생님께서는 직접 겪으신 경험을 토대로 국제문제와 국제보도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서방국가에 의해 세뇌되어진 우리의 국제적인 시각에 대한 문제점을 알려주셨고, 글로벌한 인재가 되길 원하면서도 지구촌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꼬집어 비판하셨다. 표현의 자유는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깊이 와 닿았다. 우리의 윤리의식이 변하지 않는데 아무리 법으로 강요하고 규제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한국의 역사와 삶 속에 함께 있었던 선배 저널리스트들의 삶과 고민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흥미도 생기게 되었다.


“요즘 희망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안병찬 선생님과 달리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고 계신 前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자 지금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으로 계시는 손석춘 선생님께서는 ‘침략’과 ‘공격’의 단어를 가지고 신문 보도 속의 미국과 한국 관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와 더불어 하늘을 찌르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막내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해 눈시울을 붉히던 택시기사님과의 대화도 들려주셨다. '요즘 희망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 택시기사님께서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라고 답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더 이상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희망을 품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외부 강사님들의 특강 내용과 한 학기 동안 진행된 강의의 핵심은 ‘신문읽기’, 특히 스트레이트 뉴스뿐만 아니라 사설, 칼럼 등도 놓치지 말고 읽으라는 것이었다. 한 설문조사에서 ‘요즘 대학생들이 왜 신문 읽기를 어려워하는가?’라는 문항이 있었는데 나는 솔직하게 ‘스크랩 등 무언가 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들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신문을 읽자고 하면 그냥 막연히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사회이슈에 대해 토론을 한다거나 스크랩을 해야 하는 등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아 부담스럽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아마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논술이나 면접 준비로 타의에 의해 신문을 접하게 된 우리들의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한다. 개강과 동시에 한 언론사의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신문을 읽어야겠다는 무언의 압박인 아닌 자연스러운 의무감이 들었다. 이제는 취업 준비 때문에 신문을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문을 보다보니 취업 준비가 자연스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아침 신문을 받아 읽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일종의 사회에 대한 자신감이다. 신문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어떠한 현상에 대해 막연히 ‘아, 그런가 보다.’라는 단편적인 생각만 했다거나 아예 무관심했는데, 신문을 읽으면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부터 진행되는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논리 정연하게 알고 있으니 자연스레 나의 주관적인 관점과 비판적인 시각,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까지 생기게 되었다. 신문은 특정한 사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국제, 스포츠, 사회, 대중예술, 문화, 의학 등 전 분야에 걸친 다양한 정보들로 가득 담고 있다. 1면에 다뤄진 다이아몬드만 볼 것이 아니라 각 장에 숨겨진 크고 작은 진주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신문의 장점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책을 읽으면 마음의 양식이 쌓인다고 한다. 이 표현을 빌려 신문을 읽으면 상식의 양식이 쌓인다고 말하고 싶다. 초록색 창에 검색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지식들이 점점 쌓여가고 그만큼 자신감도 더 쌓여간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글귀를 표시해두곤 한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형광펜을 들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해 표시하거나 옮겨 적어놓기도 한다. 신문이 마냥 딱딱하거나 날카로운 문장들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무렵, 꽃피는 봄이 지나가고 물놀이 할 수 있는 여름이 왔다.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속도도 처음보다는 훨씬 빨라졌고, 한 번씩 사설을 똑같이 따라 써서 생각을 쓰는 논리적 구조도 익히고 있다. 매일 신문을 읽는 습관은 아직 가지지 못했지만 다시 돌아오는 봄에는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나였으면 좋겠다. 

ⓒ다독다독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으로 다음 메인화면에 노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