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과 마오쩌둥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들

2011. 8. 4. 14:0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취업 준비생이던 2006년 어느 날. 면접을 하루 앞두고 준비를 한다면서 면접 예상 문제를 훑어보던 중이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은?”이라는 질문에 답을 하던 제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근데, 왜 꼭 책을 읽어야 해?”

우리는 이 문제로 한 시간 가량은 실랑이를 벌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친구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었고, 친구 역시 저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때 저는 독서의 힘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읽는 책이라고는 1년에 두세권이 고작이었고, 그것도 베스트셀러 위주의 독서였으니 사실 독서라고도 말 할 수 없는 창피한 수준이었어요. 그런 제가 1년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생각을 고르며, 글을 써내려감으로써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친구와 독서의 효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런 일이 있었었냐며 별걸 다 기억하냐는 듯 웃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어쩌면 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끊임없이 옮겨다니며 읽어댔던 것 같은데요.

그리고 며칠 전 한 후배가 저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읽으면 뭐가 좋을까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책 읽는 사람은 힘이 세거든. 아무도 책 읽는 사람은 이기지 못해.”


클레오파트라, 힘 센 그녀가 사랑한 책

세기의 미녀, 엄청난 카리스마, 팜므파탈의 원조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 그녀를 떠올리면 우리는 제일 먼저 화려한 외모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지략가로 더 유명했답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클레오파트라의 힘이 '책'에서 나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 <클레오파트라>에는 책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증명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요. 로마 카이사르는 기원전 48년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에 상륙하여 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를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곧장 그는 왕국의 복잡한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되죠.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자 정적이 되어버린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당시 항구에 정박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수십 척의 배에 불을 지릅니다.

그런데 이 불이 점점 번지더니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아끼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옮겨 붙은 것이에요. 불에 제일 취약하다는 책들이 가득한 공간에 불이 붙었으니 손 써볼 틈도 없이 수만 권의 책들이 재로 변했죠.

“감히 나의 위대한 도서관을 불태우다니! 아무리 야만인이라도 인간의 지성을 태울 순 없다” 도서관이 불 탔다는 보고를 받고 흥분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에게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녀가 도서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 볼 수 있는 대목이죠.

어려서부터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들을 읽어오고 위대한 사상가들과의 만남을 가졌던 클레오파트라의 도서관에 대한 애정은 권력욕 못지않게 컸던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상심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안토니우스’의 이야기인데요. 카이사르가 죽은 후 클레오파트라의 남편이 된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지상 최고의 결혼 선물을 준비합니다.

바로 로마의 정복지인 시리아 지역에 있는 페르가몬도서관의 20만 장서를 통째로 배에 싣고 와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죠. 카이사르의 실수로 수많은 장서를 잃어 상심한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달래줌과 동시에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아이디어였습니다.

팜므파탈의 상징으로만 여기지는 클레오파트가 이토록 책을 사랑했다는 건 조금은 의외였는데요. 세상을 지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린 그녀의 힘은 단순 외모가 아닌 그녀의 책 사랑에 있었나 봅니다.

20만 장서를 선물해준다고 좋아할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누군가가 20만 장서로 프러포즈를 한다면, 대부분의 여자는 ‘글쎄? 이 남자, 너무 비현실적인 사람 아니야?’라는 걱정부터 앞서며 오히려 따 놓았던 점수까지 깎아 먹을 것 같습니다.


권력자도 두려워 한 책 읽는 사람들, 책의 학살 


예로부터 정복자들이 가장 두려워 한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습니다. 한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의 문화가 빼곡히 담겨 있는 곳이 도서관이었고, 그들의 전통이 보존되어 있으며 미래가 준비되어 있는 책들로 빼곡한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정복자들이 권력을 쟁탈한 뒤에는 대량의 책 학살 정책을 펼쳤습니다. ‘분서갱유’라는 말을 만든 진시황이 그 대표격입니다. 진나라를 통일한 시황제는 한 경전이 왕조를 비판하는 데 쓰이고 있다며 그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살라버리라고 관리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백성들의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나라를 통합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죠. 

책 학살은 비단 고대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는 그야말로 책의 파괴라는 전염병이 도는 시기였죠. ‘책의 학살(libricide)’이라는 말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드물게 쓰이는 용어이며 단순히 ‘책’을 ‘죽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정의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20세기에 대규모로 저질러진 정부가 승인한 책과 도서관의 파괴를 말합니다.

독일에서는 나치가, 쿠웨이트에서는 이라크가, 티베트에서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량의 책의 학살을 저질렀다고해요.

마오의 ‘문화혁명’ 역시 대량의 책 학살 운동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정당성을 찾아야 했던 마오가 택한 길은 옛것을 부정하며 자신의 혁명의 정당성을 찾는 것이었죠. 마오는 참된 혁명이란 ‘오래된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옛 것을 모두 부정했습니다.

지식인을 처단했으며 사서는 물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변질자의 딱지를 붙였죠. 전통의 뿌리가 깊고 그 사상적 공감대가 넓었던 중국이었지만 마오의 이 책 학살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예술과 전통을 파괴했으며, 스스로가 자신들의 책을 들고 나와 불 태웠고 자신들의 손으로 도서관을 파괴했습니다.

1958년, 공개되지 않았던 한 공산당 간부 회의에서 마오는 이런 말도 서슴지 않고 했다고 합니다.  “진시황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그는 460명의 학자를 처형했다. 그러나 우리는 4만 6000명을 처형했다.”

루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가들은 작가들을 혐오한다. 작가들은 반대의 씨앗을 뿌리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예술가와 작가들이 자신의 질서정연한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고발하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정치가들, 권력자들은 똑똑한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자기들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고, 그들의 치부를 자꾸만 헤집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들은 책 읽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유할 줄 알고,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느낄 수 있으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은 책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들의 힘은 무력과 탄압으로도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해질 뿐이죠.


책 읽는 사람은 힘이 세다

일본 최고의 교육 심리학자인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력》이라는 책에서 독서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걸 떠나 독서를 했던 인생 선배로서, 독서는 자신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는데요.


독서로 길러진 사고력이 무언가를 생각할 때 큰 힘이 되었으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독서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스스로가 독서 경험으로 많은 것들을 누렸고 독서로 얻은 힘을 남다르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말하는 건 자신만이 힘을 누리겠다는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이죠.

짧은 독서 경력이지만 사이토 다카시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후배가 느닷없이 독서의 효용을 물어왔을 때, 사이토 다카시의 말이 떠올랐던 것도 아마 독서의 “힘”이 생각났기 때문일 거예요. 

삶이 풍부해 진다는 것,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의 이면이 보인다는 것, 몰랐던 감정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말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상대를 설득할 때 그 근거가 풍부해진다는 것, 그동안 몰랐던 수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는 것,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 발언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이전에는 몰랐던 독서의 효용이었습니다.

한 권의 책, 거기서 만난 하나의 문장으로 세상의 온갖 좋은 것, 사소한 것, 심오한 것들이 시작되었음을 저는 배웠습니다. 그 한 문장이 저를 다른 책으로 이끌고 다시 그 책이 훨씬 더 많은 책으로 이끄는 시발점이 되었죠. 그렇게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점차 저만의 세계를 넓혀가며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책 읽는 사람은 모두 힘이 센 사람들이었습니다. 눈 먼 국립도서관 관장 ‘보르헤스’는 비록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책 읽는 모습이 가장 멋진 M선배는 언제나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저와 언쟁을 벌였던 그 친구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지적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많은 돈을 가진 사람, 무한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두려운 사람은 책 읽는 사람이에요. 그들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