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31.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Wikipedia
언뜻 보아서 소년은 5살 전후일 것 같습니다. 1833년 9월 뉴욕에서 20대부터 인쇄업을 해온 벤자민 데이(Benjamin Day)는 길거리에서 1센트를 받고 파는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춘다"라는 모토를 가진 『선』(The Sun)이라는 신문입니다. 당시에 1센트 신문을 “페니 프레스(penny press)”라고 불렀습니다. 4개월 만에 『선』은 하루에 5000부씩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1834년 11월 『선』은 날마다 1만부를 발행했고, 1836년에는 연간 2만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부수도 3만 부로 늘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한두 개 신문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최고의 보급률을 가진 신문되었습니다. 1840년 미국 전체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1,631종이었으며 10년 후인 1850년 통계에 따르면 일간과 주간 신문의 총수는 2,302종으로 1주일에 500만부를 인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출처_Wikipedia
『선』(The Sun)은 가두 판매 소년들에게 100부에 선불로 지급하면 60센트, 후불이면 75센트에 신문을 넘겼다고 합니다. 이에 소년들은 점차 선불을 선택했고 소년들은 예약자에게 신문을 배달해 주고 1주에 6센트를 받았습니다. 이 소년은 100부를 처음에 받아서 팔기 시작했을 텐데, 사진으로 보아서는 이제 20부도 채 남지 않은 듯 하네요. 소년의 미소에는 선불로 낸 금액 이상의 신문 부수를 모두 판 데 대한 뿌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출처_Wikipedia
미국의 산업혁명과 대중 신문의 출현
하지만 1830년에서 1900년에 이르는 시기는 미국이 남북전쟁을 끝내고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던 때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경쟁으로 내몰린 어린 소년들에게 현실은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피곤함의 자취가 역력하게 남아있는 어린 아이의 사진으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이 눈부신 약진을 이루면서, 기업들의 독점화 현상이 나타났고 산업이 발달한 결과 각지에 공업도시가 발달했습니다. 따라서 지방의 농업 인구들이 도시 노동자로 급속하게 유입됐습니다. 이후 빈부격차로 인해 슬럼가 등지에서 범죄 발생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으며 노동자들의 활동 범위도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역사학자들은 1840년 미국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 게 가장 높은 독자층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 벤자민 데이(Benjamin Day), 출처_Wikipedia
1825년에서 1875년에 이르는 시기에 출판이 신문의 뒤를 이어 산업화되면서 다양한 시장을 겨냥하는 대형 회사들이 나타납니다. 신문과 마찬가지로 인쇄 기술의 변화가 산업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운송과 통신이 용이해진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38년 1월 새무얼 모스(Samuel Morse)가 전기식 통신으로 최초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성공합니다. 처음에 전기식 통신은 신문에 이용되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여 신문사들 간에 뉴스 교환이 이루어지고 지리적으로 먼 곳의 소식을 통신을 통해 빠르게 신문이 담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겁니다. “뉴스(news)가 뉴스(news)인 동안에 읽게 한다”라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패턴이 탄생하는 과정입니다. 페니 프레스가 성공할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에는 산업혁명의 기술인 증기기관 인쇄기의 개발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용되던 구텐베르크식 인쇄기로는 시간당 125장밖에 인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851년에 증기기관 인쇄기는 시간당 1만 8,000부를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 1880년대 사용되던 증기기관에 의해 6개의 실린더를 작동시키던 윤전 인쇄기 출처_Wikipedia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춘다
신문에는 두 가지 수익 모델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기업인들이 자신이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을 널리 알리고자 신문에 광고를 싣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 독자들이 구독과 구매를 통해 신문 발행 부수를 늘려준다는 것입니다. 절대 다수의 서민 독자들이 신문을 읽기 때문에 광고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신문사 입장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한다는 것은 사업 자체를 접는다는 뜻입니다. 벤자민 데이가 페니 프레스를 통해 이룬 혁신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던 것입니다.
1센트를 지금 환율로 계산하자면 얼마일까요.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 75센트였고 보통 신문 한부에 6센트이상이었으니 서민들을 독자로 할 수 없었겠지요. 일당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인 것입니다. 최근 일용직 아르바이트 일당이 4만4천원 정도 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자면 신문 한부에 4,400원 정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1센트 신문이라면 600원 정도 하는 금액입니다.
당시 신문사들이 상업 신문과 페니 프레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배경이 됩니다. 벤자민 데이는 기묘한 범죄 뉴스와 흥미를 다룬 뉴스를 적절히 섞고 가격을 1센트로 낮추어 독자를 증가시킵니다. 신문이 상업적 목적을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값싸고 대중적인 신문을 만들겠다는 벤자민 데이의 전략은 뉴욕과 다른 대도시로 확산됩니다. 처음에 페니프레스를 비웃던 이들에 의해 필라델피아의 『퍼블릭 레저』(Public Ledger)와 『볼티모어 선』(Baltimore Sun)이 발행됩니다. 페니 프레스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기능공, 노동자 같은 서민층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증가하는 신문 판매 부수 덕분에 신문 편집인들은 정치인을 비롯한 투자자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고 신문사들이 절대 다수인 서민들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지닌 뉴스를 다루는 중요한 분기점이 마련됩니다.
그리고 그 분기점을 폭발시킨 것은 바로 뉴욕의 신문 배달부 소년들이었던 것입니다. 『선』(The Sun)의 모토인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춘다"처럼요.
ⓒ 다독다독
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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