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 07: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동아일보(1961.04.01)
해마다 만우절이 돌아오면 학창시절의 추억이 생각나곤 한다. 통째로 옆반 학생들과 교실을 바꿔서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교실 뒷쪽을 향해 돌아 앉아 있기도 하고, 분필가루 잔뜩 묻힌 칠판지우개를 떨어뜨리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은 생쥐를 교탁에 올려놓은 적도 있었다. (짓궂은 장난에 죄송할 따름)
최근에는 만우절 소동이 예전처럼 심한 것 같진 않지만, 만우절을 둘러싼 해프닝은 우리 모두를 봄날의 행복한 바보로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길고도 긴 겨울을 이겨내고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계절에, 우리 모두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든 것처럼 웃어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라고 해야 할까?
서양인들은 4월 1일을 만우절(April Fools’ Day)이라고 하며, 이 날에 여러 가지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 듯한 <거짓말>로 타인을 속이거나 헛걸음을 치게 하는 풍습이 있다. 이 날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의 바보(April fool)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날을 사월 바보의 날(April Fools’ Day)이라고 한다.
1934년 미국의 「에이푸릴풀」 노리장치를 소개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만우절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근현대 신문자료를 살펴보면 만우절이 최초로 보도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 6면이다. 희뿌염한 사진이라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지만, “미국의 「에이푸릴풀」 노리장치”라는 제목으로 거대한 로봇 형상을 싣고 있다. 설명을 요즘 말로 풀어보면 “미국의 만우절 놀이를 성황리에 치르고자 만들어놓은 큰 장치”라는 뜻이다.
출처_동아일보(1934.03.23)
1939년 4월의 메모, 끝자락을 만우절이 장식해
1939년 4월 1일의 동아일보 기사에는 4월의 메모라는 제목 아래 갖가지 의미와 소식을 전하면서 마지막으로 만우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 있다. "끝으로 한 가지는 4월달에는 서양풍속에 소위 에이프릴 풀(April fool) 만우절이라 하야 동무들간에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여러가지로 실없는 장난을 하는 일이 잇는데 이날에만 어떤 실없는 일과 쓸데없는 장난편지를 하야도 허물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불과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4년 전의 기사는 외국의 신기한 문화를 소개하는 수준인 것에 비해 1939년에는 이미 만우절 행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행처럼 번져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_동아일보(1939.04.01)
만우절의 유래에 대한 집중분석, 인도와 희랍신화, 성경까지
만우절이 다시 지면에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인 195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3면이다. “「만우절」의 유래 ; 인도와 희랍 신화에서 발단「봄의 女神」이 母神 골려준 데서”라는 제목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장난이 많이 유행되고 있지만, 4월 1일 ‘만우절’에는 악의없는 거짓말을 하여 남을 골려주어 서로 웃고 즐기는 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되어 있다. 점잖은 숙녀에게 “여보세요. 당신의 속치마가 밖에 나왔습니다.”라고 하면 “어머나 이런 창피한 일이...”하고 깜짝 놀랐다가도 “에이프릴 풀(만우절 장난입니다)“ 하면 서로 손뼉을 치고 웃는 따위의 조그마한 장난이 이날만은 특별히 용서받고 또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만우절의 유래는 인도와 유럽 신화에서 발단이 되었으며, 봄의 여신인 페르세포네(이 기사에서는 프로스페니아라고 되어 있는데, 최근 표기법에 의하면 페르세포네가 맞다)가 자신의 남편인 플루토(하데스)와 함께 엄마 여신인 데메테르(케레스)를 골려준 데서 비롯되어 춘분 즈음에 정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노아의 방주와의 연관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옛날 신문이 내려쓰기라 읽기가 어렵더라도 한번 시도해보시기를^^
출처_동아일보(1959.03.31)
초유의 만우절 방송사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드립니다
1960년 4월 2일자 동아일보는 아주 재미있는 만우절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제목은 “거짓말 방송 소동 대구서 만우절 아침에”로 시작되는 기사인데, 내용인 즉슨 대구방송국에서 아침 7시 45분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3일간에 걸쳐 선착순으로 한 대씩 선사한다”고 거짓말 방송을 한 결과 방송이 끝난 3분후부터 경북고교생을 비롯하여 상이용사 등 약 200여명이 방송국에 몰려들어 라디오를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는 것. 만우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택시값이라도 내놓으라고 항의하였다고.
출처_동아일보(1960.04.02)
만우절 특집만평,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사만화가 퍼레이드
1959년 4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만우절 특집만평이 실렸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사만화가들의 재치가 번뜩이는 만우절 만평이다. 만평을 통해 자유당 말기였던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출처_동아일보(1959.04.01)
* 사족 하나 : 좌측 하단에 보너스로 들어간 해외연예토픽뉴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떠 있다. 휴양지에서 결혼? 이라는 제목이다. 나머지 기사를 읽어보면 불세출의 에리자베스 데이러 양과 에디 핏샤 군이 휴양지에 도착하여 1주일에 500불 하는 호화 호텔에서 지냈는데 핏샤 군은 결혼에 대해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에리자베스 데이러 양은 우리가 잘 아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디 핏샤 군은 미국의 팝가수 에디 피셔. 에디 피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네번째 남편으로 이 보도가 있은 이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결혼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테일러가 리처드 버튼과 로마에서의 영화 촬영 기간에 사랑에 빠지면서 5년 만에 파탄났고 피셔는 이후 재기하지 못하다가 2010년 사망했다. 옛날 신문 읽는 재미 쏠쏠하다. 찢어진 스포츠신문도 이어붙이면 이야기가 된다. 오늘의 백년간뉴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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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정미 (시인, 출판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했다. 월간 현대시에서 신인추천문학상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교보문고에서 12년간 근무하면서 다양한 콘텐츠 환경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상명대학교 사학과 역사콘텐츠 전공 박사과정에서 수학중이다. 주요 관심사는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으로서, 역사콘텐츠를 공부하는 목적 역시 분열과 단절을 극복할 정체성과 원형을 역사 속에서 찾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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