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배딱지, 죽간 그리고 코덱스

2015. 4. 2.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성서 코덱스는 주로 중세 수도원에서 제작되어 보급되었다. 출처_Wikimedia


 거북이 배딱지에서 발견된 갑골문자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보다 앞서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도 비교적 일찍이 많은 원시적 미디어들이 제작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기원전의 유물들은 많지 않지만 문학 자료나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늦어도 BC 1300년경에는 문자가 기록된 미디어들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갑골문자(甲骨文字)는 중국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뜻합니다. 거북이 배딱지[龜甲]나 동물의 견갑골[獸骨]에 남겨져 있어서 갑골문자라고 불렸습니다. 이 거북이 배딱지가 발견되면서 전설로 알려졌던 중국 고대의 상(商) 나라가 실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경에서 기원전 1046년경에 있었던 중국 최초의 왕조로서 ‘은나라’라고도 부릅니다. 은나라가 유명한 것은 마지막 주왕(紂王)과 무희 달기(妲己)에 대한 전설 때문입니다. 주왕은 달기를 몹시 총애하여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주왕과 달기는 술을 채운 연못에 고기를 걸어둔 숲을 만들어서 날마다 알몸의 남녀들이 서로 뒤쫓게 하며 밤을 즐겼다고 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을 생겨나게 한 인물들입니다.



거북이 배딱지에 기록된 갑골문자. 출처_Wikipedia(원저작자 : User Kowloonese on en.wikipedia)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거북이 배딱지에 기록된 내용이 제사, 풍우, 전렵(田獵), 농경, 군사, 사명(使命), 질병, 복점 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종교적인 목적이나 행정적인 이유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갑골문자는 상형문자로서 한자의 초기 문자 형태에 해당합니다. 발굴된 뼈의 연대는 대부분 기원전 1200년에서 기원전 1050년에 해당합니다. 고대시대에는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은 그 사회의 계급구조와 관련 있으면서도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죽간


지금의 책과 모양과 비슷한 형태로서 죽간(竹簡)을 들 수 있습니다. 종이가 널리 사용되기 전에는 대나무, 이파리, 가죽의 조각들을 끈으로 엮어 만들어 내용을 작성하는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그중에서 대나무를 엮은 뒤 그 위에 글씨를 쓰는 것을 죽간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죽간으로 이루어진 편지를 죽찰(竹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무게가 무거워서 이동이 불편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대나무 죽간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죽간은 BC 213년 진시황에 의해 불태워진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진나라 시황제는 사상통제하기 위한 작업으로 농업을 다룬 책 등을 제외한 모든 서적들을 불태우고 수백 명의 유학자들을 생매장합니다. 당시 불태운 서적들은 대나무로 만든 기록 수단인 죽간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죽간이 전해진 것은 중국 고대의 책들을 계속해서 베끼어 써 왔기 때문입니다. 


낱개의 온갖 물건에 글자와 그림을 새기거나 쓴 것을 가지고 책이라고 할 수는 없죠. 체계적으로 엮어져야 비로소 책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한자 “冊”이란 글자가 바로 엮어진 책의 형태를 보고 만든 상형문자(象形文字)인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자병법』이 쓰인 죽간(竹簡) 출처 _Wikimedia(원저작자 : vlasta2, bluefootedbooby on flickr.com)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양피지(羊皮紙. parchment)와 코덱스


양피지는 주로 양, 염소, 송아지 등 동물의 가죽을 가공, 처리하여 만든 서사(書寫)의 재료입니다. BC 2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도시 페르가뭄(Pergamum. 지금의 터키 베르가마)에서 양피지가 발명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양피지의 명칭이 이 도시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짐승의 가죽이 필기 재료로 쓰인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가죽을 보다 철저하게 세척하고 늘이고 문지르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필사지의 양면 사용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두루마리 사본이 철을 한 책자인 코덱스로 대체되기에 이릅니다.


두루마리(scroll)를 대신하여 새롭게 등장한 코덱스(codex)는 책의 형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두루마리는 파피루스 시절부터 기록된 재료들을 보관하는 오래된 방식이었습니다.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길게 이어서 문서를 돌돌 말아서 보관하던 방식으로 양쪽 끝에 두 개의 마름대를 만들어 말고 풀 때 용이하게 만든 것이 두루마리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종이가 개발된 이후에도 책이 제본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됩니다.


출처_wikimedia


하지만 코덱스는 지금 개념의 종이책과 비슷한 형태로, 낱장을 묶어서 표지로 싼 것입니다. 중세 동양의 책들도 그런 의미에서는 코덱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나무 토막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로마의 발명품으로 두루마리를 대체했으며, 유라시아 문화에서 책 형태로 나온 최초의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요즘 종이책은 거의 모두가 코덱스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은 고전시대 후기부터 중세에 나온 필사본을 가리키는 용어로만 사용합니다.


각 낱장을 길게 연결하던 종래의 방식과는 달리 코덱스는 각 낱장들의 한쪽 가장자리 부분을 함께 묶어 만들었는데, 두루마리에 비해 많은 이점이 있었습니다. 각 낱장별로 묶여 있어 보고자 하는 내용을 즉시 찾을 수 있고, 두루마리처럼 펼쳤다 말았다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며, 하나의 책에 더 많은 양을 묶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낱장의 양면을 모두 이용할 수 있어 더 많은 내용을 수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덱스의 재료로 주로 양이나 송아지 가죽이 사용되었습니다. 양피지(羊皮紙)는 양의 가죽을 씻어 늘인 다음 석회로 처리하고 건조하여 표백해서 만들었습니다. 송아지나 새끼염소의 가죽 또는 사산되었거나 갓 태어난 송아지나 양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는 벨럼(vellum)이라고 불렸는데, 이 말의 사용이 확대되어 모든 최고급 양피지를 일컫는 데 쓰이게 되었습니다. AD 6세기에 대부분의 초기 사본들에 사용되었던 벨럼은 질이 좋았습니다. 이후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상당한 양의 불량품이 시장에 나왔으나 서유럽에서 많은 필사본이 만들어졌던 12세기까지는 부드럽고 유연한 벨럼이 유행합니다.


종이 개발 이전에 중세 유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코덱스. 출처_Wikimedia



성서 코덱스


그리스도교는 고대 후기와 중세시대에 책을 만드는 활동이 지속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세기 동안 경전을 경외시해 온 유대교에 뿌리를 두었던 까닭에 그리스도교 역시 구약성서, 신약성서 같은 경전을 중시했으며, 상대적으로 손상되지 않는 재료에 기록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파피루스보다 튼튼한 벨럼지나 양피지 코덱스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15세기경부터는 종이에 씌어진 원본들도 흔해졌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도들은 성서를 인용할 때 여러 경전을 찾아 비교 연구를 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런 면에서 많은 양의 경전을 펼칠 수 있는 코덱스가 더 편리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전세계 포교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수많은 성서 코덱스가 계속 제작되었으며 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300년 동안 수천㎞ 떨어진 지역에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성서 코덱스는 주로 중세 수도원에서 제작되어 보급되었습니다.


성서 코덱스는 주로 중세 수도원에서 제작되어 보급되었다. 출처_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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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그림 출처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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