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사진의 진위를 가리는 ‘마타리 꽃’

2011. 8. 5. 09:0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우리 속담에 ‘마타리 꽃은 가을을 알려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타리 꽃은 벼가 누런 색으로 익어갈 무렵 피기 시작해 찬 서리가 내릴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한창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어 계절을 알려주는 지표 꽃으로 불립니다.

갑자기 왠 마타리 꽃 타령이냐고요. 최근 북한이 조작한 수해 사진을 내보냈다는 뉴스를 보고 마타리 꽃을 통한 사진의 진위 감별법이 생각나서입니다.

북한에서는 언론매체를 통한 왜곡과 조작이 일상화 돼있습니다. 북한의 저널리즘은 현실을 왜곡하는 상징과 조작의 세계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서방세계에서 저널리즘을 놓고 ‘현실을 투영하는 말과 글의 세계’로 정의되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통상 조선중앙 TV와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매체들은 소위 ‘1호사진’(최고 지도자 사진)으로 불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촬영한 날짜를 대부분 공개하지 않습니다. ‘최고사령관 동지 초청행사의 비밀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며 신변안전 문제를 들어 시찰 일정 자체를 보안에 부치는 게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출처:서울신문>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군 부대를 다녀간 사실이 일주일은 물론 한 달이 지난 다음에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흔하다고 합니다. 또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등이 나도는 경우 이런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건강한 모습이 찍힌 사진을 노동신문에 내보내기도 합니다.

여름에 실린 김정일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사진은 배경의 초목 상태 등을 관찰해 보면 봄, 심지어 지난해 가을에 찍은 것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보 당국은 조경 전문가들을 동원해 사진 배경에 나오는 식물들을 분석한 후 촬영 시기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만약 김 위원장이 찍힌 사진에서 여름 꽃인 노란 달맞이꽃이라도 발견되면 여름 사진이 맞겠지요.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면 우리나라 산천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달맞이꽃이 지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을의 지표 꽃인 마타리 꽃이라도 보인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보도사진은 사실 속의 진실을 한눈에 보여줘야 하는데 이처럼 북한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거짓말도 백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것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언론을 사실보도 보다는 선전선동 도구로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도 남한 정보당국은 북한 언론매체에 나오는 기사나 사진의 내용을 요모조모로 뜯어봅니다. 북한이 기본적으로 외부로 유출되는 정보가 제한된 사회이다 보니 언론매체의 보도 내용은 북한 사회를 분석하는 나름대로 데이터 역할을 합니다. 체계적 분석을 하면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 언론이 상징과 조작을 위해 동원되는 독재정권의 올록볼록한 ‘왜곡 거울’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야 합니다.

거꾸로 북한의 정보 당국 역시 남한 언론매체의 보도 내용을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분석한다고 합니다. 남북회담을 하다보면 북측 대표가 남한 언론보도 내용을 들먹이며 남측을 비판하는 경우가 곧잘 있습니다. 지난번 남북군사회담에서 북측은 남측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을 트집잡아 판을 깨기도 했습니다.


<이미지출처:서울신문>


그렇지만 북쪽도 남쪽 언론매체의 보도 내용을 통해 과연 정확한 ‘팩트’가 무엇인지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정보가 제한되는 북한과는 달리 남한에서는 각종 언론매체들이 기사를 마구 쏟아내고 있어 기사 정보의 홍수를 이루고 있어서지요. 여기에다 북한이 남한사회 인터넷 세계의 블로그까지 분석하고 나섰다면 정보 과잉이 주는 스트레스는 꽤 클 것 같습니다.

사실 블로그가 언론매체인지는 정의를 내리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최근 파워블로거들이 특정상품을 소개하면서 기업체들한테 돈을 받아 물의를 일으킨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로서는 블로그를 개설한 지 1년도 채 안되는 처지라 뭐라 말하기가 더욱 힘듭니다.

팩트를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블로그도 언론 매체의 영역으로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사 중심이 되면 경계가 애매모호해집니다.

직업이 신문 기자이다 보니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이것저것 조심스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블로그의 속성이 편하게 자연스럽게 글을 써나가야 한다는 것인데 솔직히 그렇지 못합니다. 본인의 블로그가 신문사 홈페이지와 링크돼 있다 보니 기사를 쓰는 것처럼 블로그 글을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뒤늦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짤방’이란 용어도 알았습니다. 혹시라도 방문객이 블로그 글을 읽다가 지루하다며 마우스를 클릭할까봐 블로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소녀시대 사진을 넣는다든지 또는 야한 사진을 넣는 소위 ‘짤림 방지’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것은 신문기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블로그라 하더라도 일종의 조작으로 여겨집니다. 넓게 보면 겨울 사진에 마타리 꽃이 등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힘은 그만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큽니다. 가령 청와대 핵심관계자라는 소스가 붙으면 다른 정보 보다 훨씬 파워풀합니다. 마찬가지로 활자로 찍혀 나오는 신문은 신뢰의 레버리지 효과가 높습니다. 잉크 냄새 나는 활자는 일종의 ‘증거’입니다.

간단한 예를 보더라도 신문 기사는 언제든지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온라인의 기사와는 다릅니다. 온라인 기사는 ‘바로잡습니다’라는 코너를 운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고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쇄매체는 잘못된 보도를 할 경우 반드시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내용을 정정해야 합니다. 일종의 증거를 남겨야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쉽게 고칠 수 있는 온라인 기사보다 그 절차가 복잡한 신문은 분명히 신뢰의 레버리지 효과가 강합니다. 레버리지 효과면에서 신문 기사는 온라인 기사를 능가한다는 얘기입니다.

알찬 ‘지식창고’ 역할을 하는 좋은 신문은 또 온라인에서처럼 방문객을 유도하기 위한 피싱 제목을 달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당장 사이비 언론 취급을 받기 때문이지요.

아직까지도 “인터넷에 그렇게 나왔어” 보다는 “신문에 그렇게 나왔어”가 힘이 셉니다. 이는 잉크 냄새나는 ‘신뢰’라는 지렛대가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도 독자들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씁니다. 진정한 신문에서는 겨울 사진에 마타리 꽃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짤방’도 없습니다.

게다가 100%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읽더라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읽는 것과 종이를 펼쳐 읽는 것은 인간의 뇌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틀립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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