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7. 08:55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제임스 세인트(James Sant, 1820-1910)의 작품 <동화(The Fairy Tale)>, 출처_위키피디아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story)를 들으면서 자라납니다. 때로는 엄마와 아빠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때로는 실재하지 않는 픽션(fiction)의 동화를 들여줍니다. 집중력이 14분밖에 안 되는 5세 이하의 어린이들도 엄마나 아빠의 동화책 읽기에 엄청난 몰입을 보여주며 글을 깨우치기도 전에 이야기의 맛을 알아버립니다. 그런 아이들의 왕성한 독서량은 엄마와 아빠를 힘들게 만듭니다.
어려서부터 이야기 속에서 자란 우리들은 성장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필요로 합니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우정을 키워나갑니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은 무언가를 공유하고 무언가를 전달합니다. 이 과정을 함께 하지 못하면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버릇은 고단한 회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을 같이 일하고도 퇴직 후에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한 달을 일하고도 평생의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통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해도 서로 재미있어 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가정에서도 가족들끼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장의 전형적인 특징은 서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사춘기 자녀가 힘든 이유는 급격한 성장 변화의 과정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월터 펄(walther Firle, 1859–1929)의 <책을 읽는 소녀들(Walther Firle 'Three Reading Girls)>, 출처_위키피디아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상이 미디어입니다. 고난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직장인들은 대개 식사 후에 곧바로 잠에 들지 않고 드라마에 심취하거나 미드나 영드 또는 일드를 몰아보느라 밤을 새기도 합니다. 또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삶의 고단함을 잊으려고 애를 씁니다. 많은 애독가들은 소설과 책에 몰입하기도 하고 웹툰에 심취하기도 하며 또는 리니지(Lineage)나 와우(WOW) 같은 게임의 세계를 탐험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야기하는 존재이며 이야기를 즐기며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합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는 생활 정보나 취업 정보에서부터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남에게 들은 이야기와 복잡하고 힘든 처지에 대한 하소연과 때로는 대단하고 복잡한 지식과 노하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담고 있는 다양함은 끝이 없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인류가 집단을 형성하여 살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말과 몸짓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었겠지만 동굴 벽화 같은 예술적이며 놀이적인 행위를 통해 표현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마치 지금도 이야기가 말을 통해서 전달되기도 하기만 콘텐츠를 통해 전달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이 경험하는 일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결합한다는 사실입니다. 남자친구가 선물한 반지와 그날 나눈 이야기들, 1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산 노트북, 두세 번 잃어버렸다가 기적과도 같이 다시 찾은 스마트폰, 홀로 유럽을 다니던 자유와 낭만이 담겨 있는 배낭여행 가방, 헤어진 애인과의 가슴아픈 기억이 남은 그 카페, 군대에서 고생할 때 언제나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서툴지만 정성껏 써서 보낸 편지들. 세상에 모든 사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대체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우리들의 일상과 마음을 파고드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동굴 벽화 같은 예술적, 놀이적 행위를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Cueva de las Manos, Río Pinturas). 9천년전 사람들이 손 모양을 찍어 만든 암각화. 출처_위키피디아
호모사피엔스에서 호모나랜스(homo-narrans)로의 진화
호모나랜스(homo-narrans)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라틴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호모나랜스들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신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학자 존 닐(John Niels)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고 설명하며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매스미디어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에서 드러나지 않던 호모나랜스로서의 특징은 온라인과 스마트폰 그리고 SNS의 확산에 따라 디지털 수다쟁이들로서의 활동을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호모나랜스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스마트 디바이스와 디지털 콘텐츠를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이야기꾼들입니다. 과거와 달리 호모나랜스들은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친구 같은 사회적 관계을 형성하여 이를 통해 개개인의 삶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성을 적극화합니다. 특히 스마트폰과 SNS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듣고 읽고 보는 행위가 전혀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제일기획은 2008년 9월 24일, 남녀 600명(15∼44세)을 통해 조사한 보고서를 분석해 호모나랜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첫째, 인터넷 콘텐츠를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하고 둘째, 흥미거리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셋째, 인터넷 카페, 사용 후기, 블로그 등 일반인들이 작성한 “위 미디어(we media)”에 신뢰를 두며, 넷째,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입니다.온라인과 SNS의 발달함에 따라 디지털 수다쟁이들을 전지구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 Yoel Ben-Avraham
이야기의 다양한 형태들
이야기에 담긴 경험과 상상력은 인간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를 창조하고 소통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운영하는 수단입니다. 삶과 생각이 다양한 만큼 이야기의 영역과 형태는 다양합니다. 따라서 지역, 종교, 체제의 특성을 달리하는 수많은 종류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사실을 전하는 이야기와 꾸며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는 일시적으로 떠도는 이야기가 있고 오랜 세월을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형태에 따라 사실적인 이야기를 서사의 형태로 창작한 것과 허구적인 이야기를 상상하여 창작한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경험담과 같은 사실적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전설과 민담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글로 된 경우에도 나날이 자신의 경험을 적는 일기와 편지 형태의 사실적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소설, 희곡, 시나리오와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시청각의 경우에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것이 있는 반면,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허구적인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블로그처럼 사실적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온라인 게임과 같이 허구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 디바이스와 SNS의 세상에서 호모나랜스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의 현실은 사실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고 매우 융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과 메신저를 보더라도 말로 된 것과 글로 쓰여진 것과 영상으로 된 것과 디지털로 된 것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채 전달되고 공유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참 복잡하고 다양하며 흥미진진한 세계입니다.
사진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James_Sant_-_The_Fairy_Tale_-_Google_Art_Project.jpg
▪ https://www.flickr.com/photos/eoskins/7818673168/
▪ http://en.wikipedia.org/wiki/Cueva_de_las_Manos
▪ https://www.flickr.com/photos/epublicist/9733284483/
참고문헌
▪ 한혜원 (2015).『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살림.
▪ John D. Niles, J. D. (2010) Homo Narrans: The Poetics and Anthropology of Oral Literature,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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