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속 우리들의 아버지

2015. 5. 8.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이리와. 아빠랑 놀자.” 

“싫어!” 

“아빠는 하루 종일 우리 딸 보고 싶었는데, 아빠한테 와 봐.” 

“싫어! 엄마한테 딱 달라붙어 있을거야!” 


종종 벌어지는 저희집 부녀간의 대화입니다.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아빠는 딸아이가 다정하게 반겨주기를 기대하는데, 5살 딸아이는 내내 붙어있던 엄마가 더 편한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애들이 다 그렇지, 하고 말았는데 몇 번 반복이 되니 참 난감합니다. 제가 어디로 가든 아이들은 엄마인 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물론 가끔 아빠랑 ‘놀아주기도’ 하지요. 아빠가 싫은 건 아닙니다. 그저 1순위가 아닐 뿐이죠. 억울할 것도 같습니다. 하나뿐인 아내는 아이들에게 빼앗긴지 오래고, 아이들의 1순위는 늘 엄마입니다. 권위는 잃고 역할은 늘었습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가족을 지키는 일은 갈수록 버거워집니다. 이러한 아빠들을 그림책에서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요? 


우리 가족입니다


'우리 가족입니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식당을 하는 이 가족에게, 어느 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아빠는 어린 시절 엄마 없이 힘겹게 살아야 했음에도 두말없이 자신의 어머니를 받아들입니다. 할머니 때문에 일어나는 갖가지 소동에 주인공은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되냐고 묻습니다. 아빠는 대답합니다. “그래도 안돼. 엄마니까” 이 그림책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중 저는 특별히 자식세대과 부모세대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의 무게를 읽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묵묵함과 부지런함으로 가족구성원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강한 힘을 느낍니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일까요?


 출처_예스24



아빠 해마 이야기


'아빠 해마 이야기'는 무척 독특한 책입니다. 보통 물고기들은 엄마가 알을 낳고 아빠가 수정을 시킨 다음 알들이 스스로 부화하게 내버려 둔다지요? 그런데 가시고기, 틸라피아, 해마 같은 몇몇 물고기들은 아빠가 그 알을 정성껏 돌본다고 합니다. 엄마해마가 낳은 알을 배 주머니에 넣은 아빠해마는 “바닷속을 동동동동” 돌아다니며 다양한 물고기들을 만납니다. 모두 아빠가 알을 돌보는 독특한 물고기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끼해마들이 아빠 배 밖으로 나옵니다. 그중 한 마리가 다시 돌아오려고 하자, 아빠 해마가 안 된다고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는 널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네 힘으로 살아가야 해.”


이 책은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서도 알려주지만, 고정된 성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 맨 앞의 헌사는 “나의 어머니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라는 것입니다. 작가는 아빠 해마 이야기를 왜 엄마에게 드리고 싶었던 걸까요. 만날 수 없는 외국 작가이니 궁금함으로 남겨 놓겠습니다. 


 출처_예스24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는 그야말로 아버지에 관한 책입니다. 청과물 시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는 산더미 같은 짐도 단숨에 들어 올리는 사람입니다. 힘차게 짐을 나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한편의 무용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가지만 솜바지 아저씨는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새가 울고 웃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합니다. 이상하게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맺힙니다. 아마 작가도 이 문장을 울며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쌓인 엄청난, 엄청난 양의 고구마 상자. 그걸 옮기다 아버지는 다쳐버리고 맙니다. 아버지가 다치게 되는 장면을 작가는 무척 상징적이고 환상적으로 그립니다. 한번 찬찬히 음미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출처_교보문고


제가 이글을 쓰고 있는 새벽, 남편은 일어나 출근준비를 합니다. 

새벽을 밝히며 길을 나서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의 아름다운 문장을 바치고 싶습니다. 


“달이 구름에 가려 무척 어두운 새벽 두툼한 솜바지를 입고 홀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어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사람만이 지닌 눈빛으로 늘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묵묵한 사람, 바로 솜바지 아저씨였지. 

구름이 물러가고 커다란 달이 다시 돌아온 아저씨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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