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칭찬 볶음밥’보다 나은 가족신문 만들기

2011. 8. 10. 13:5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즘 우리애가 너무 말을 안 해요. 친구들과는 수다쟁이가 되면서…”
“그럴 땐 칭찬 볶음밥! 이야~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맛이죠?”

요즘 인기연예인 이승기씨가 출연한 모 식품회사의 CF 문구입니다. ‘칭찬 볶음밥’이라는 요리로 대화의 장을 마련해 아이와 부모가 친해진다는 내용인데요. 광고에서도 나왔지만 요즘 아이들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보다 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 가족끼리 마주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이러다 보니 함께 공유할 만한 화젯거리가 없어 더욱 더 대화가 줄어드는 형편인데요. 

그렇다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가족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기 <민지네 신문>이라는 가족신문을 통해 무려 11년 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이야기를 나눠온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신문이란 말 그대로 가정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사를 기록하고, 가족을 취재하며 서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가자는 취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인데요. 매주 어떤 소재를 다룰지 기획회의를 하고, 이러다 보면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할 기회가 늘어 가족 간에 돈독한 정이 쌓인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럼 가족신문을 만들면서 이 가정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민지네 신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종이 한 장으로 때우려 했던 결혼기념일 선물이 10년 넘게 이어져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본인소개와 함께 <민지네 신문>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민지네 가족 신문의 기사를 모으고 독촉하는 역할을 맡았던 엄마 뺑먹순(필명)입니다. <민지네 신문>은 1993년 5월 18일 화요일에 최초 발행된 우리 네 식구의 일상이 기록된 가족신문 입니다. 1993년 첫 발행 이후 2004년 4월 1일 220호까지 발행되었고, 그 후 몇 년을 쉬다가 2008년 우리 부부 둘이서 221호와 222호를 발행한 이후 잠정 중단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집을 떠나 있게 되고부터는 신문발행이 쉽지 않아 쉬고 있는 중이지만, 민지나 승환이가 결혼해서 엄마 아빠가 되면 다시 이어나가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민지네 신문>이라는 가족신문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지네 신문>은 우리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무슨 선물이 좋을까?’를 궁리하던 남편과 아들 승환이가 처음 만들어 낸 합작품입니다. 평소 선물을 사러 가는 것도, 비싼 선물을 바치는 것도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었으니 종이 한 장으로 때울 수 있는 좋은 선물이었던 셈이지요 ^^  A4용지로 딱 한 부 만들었던 것인데 기발하고 깜찍한 발상에 반해 계속 만들자고 제의해 어느덧 이백 번 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1997년 종이신문 발간 100회 기념으로 만들어진 홈페이지>

 

어떻게 보면 정해진 기간마다 소재를 찾고, 기사를 쓰며 가족신문을 만든다는 일은 조금 귀찮은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가족신문을 지속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장점을 꼽아주신다면요?


처음부터 재미로 만들었고, 만들다 보니 그에 따라 이런저런 즐거움들이 생겨나 그 재미에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시작을 했으니 계속 만들게 된 것일 테고요. 최고의 장점이라면 신문이 우리에게 준 기쁨 때문이었겠지요.



주변의 관심이 오래도록 발행하게 만든 원동력
 


일반신문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사나 내용을 1면에 실어 ‘특종’을 보도하곤 하는데요. 긴 시간 동안 가족신문을 만들어 오면서, <민지네 신문>에서 가장 ‘특종’으로 꼽을 수 있는 사건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글쎄요. 그때나 지금이나 워낙 평범한 사람들이다 보니 특종이랄 것은 없는데, 그래도 뭐하나 꼽으라면 아이들 둘이 미국에 갔다 온 것일까요.
 
 

<민지네 신문 175호에 실린 ‘미국여행’편>


 

10년 넘게 운영하다 보면 소재의 고갈, 마감시간 넘기기 등 매너리즘에 빠질 뻔했던 시기도 있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족신문이고, 평범한 일상들을 펴내는 것이다 보니 소재의 고갈은 없다고 봐야지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끊임 없이 소재를 제공해 주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두런두런’ 코너의 경우 자연스레 보여지는 것들을 소재로 삼았으니 기사거리가 모자라지는 않았고, 각자 한 코너씩 글을 써내기만 하면 되었으니 큰 부담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우리가 어느 정도 신문을 발행하고 나서부터는 주변이나 언론 등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생겨나서 그분들의 격려와 관심이 힘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신문발행이 며칠씩 늦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신문의 독자들 대부분이 우편으로 신문을 받아보게 되는 터라 발행일에서 하루 이틀 늦어지는 것은 다들 그러려니 하셨어요. 한 달에 두 번 발행을 원칙으로 했는데 그걸 어긴 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민지네 신문> 홈페이지를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질 만하면 어딘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온다거나 해서 우리가족을 긴장(?)시켰으니 신문 발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정서적 효과가 가장 커
 


<민지네 신문>은 아이들이 장성한 후 현재는 발행을 잠정적으로 중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신문 만들기가 글짓기 실력이나 학업 등 아이들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지네 신문> 기사를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남들보다 글 쓰는 능력이 탁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까지는 글짓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을 잘 쓴다기보다는 글쓰기에 겁을 먹지 않는 것이 좋았지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소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서적인 효과가 컸고 학교생활이나 사춘기 시절 등에서 별 문제점 없이 자라준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도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간의 대화가 많아지고, 추억의 기록이 된다는 장점 때문에 가족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금부터 가족신문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에게 경험자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지금에 와서 보니 가족신문은 기록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예뻤던 그 순간의 기록 말입니다. 다만 그것이 사진이나 영화가 아니고 기사란 것이 다르지만 어찌 보면 글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나간 시절을 마음을 열어서 본다는. 그러기에 가족신문은 추억을 담아둔 종이가 되는 것이지요. 그저 욕심 없이 만들다 보면 가족의 역사가 됩니다.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들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진 보물단지가 되는 거지요. 바쁜 일상에서 일 년에 한 번씩만 만들더라도 그것들이 모여지면 의미가 클 것 입니다.


<’민지네 신문’을 만든 민지 아버지, 어머니, 민지, 동생 승환이>

 

결국 가족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가족끼리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든다는 것, 그보다 앞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민지네 신문>에 실린 가정의 일상사는, 서툰 글이나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가며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관심했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 지금부터라도 한번 담아보시는 게 어떠세요? ^^

*민지네 신문 바로가기(
http://www.minj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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