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지요

2015.08.27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생활백과


삶과 죽음의 자연스러운 순환 


"어머! 이 집엔 메뚜기가 많네요." 

대문으로 들어서던 손님이 깜짝 놀랍니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발아래서 톡톡!! 메뚜기들이 튀어 오르거든요. 종류도 갖가지예요. 벼메뚜기, 팥중이, 섬서구메뚜기, 방아깨비, 베짱이, 풀무치... 온동네 메뚜기 무리가 다 우리 뜰로 모이는 모양이에요. 메뚜기가 많으니 참개구리들도 늘었어요. 여기서 펄쩍 저기서 펄쩍, 메뚜기 못잖게 바삐 뛰어다닙니다.


운 나쁜 메뚜기가 펄쩍 뛰다 거미줄에 걸렸어요. 순식간에 거미줄을 휘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해놓고 호랑거미는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땅을 갈지 않고 제초제 살충제도 쓰지 않는 우리 밭 흙은 지렁이와 온갖 벌레들의 서식처예요. 땅 위 무성한 풀숲은 각종 곤충들의 번식처고요. 농약을 안 쓰니 벌레를 한 마리 한 마리 손으로 잡아야 해요. 곤충들은 우리 밭의 작물을 갉으며 알을 낳아 종을 잇고, 나는 그 개체의 목숨을 거두며 삶과 죽음이 맞물리는 자연스러운 순환에 한 발을 걸칩니다. 살충제로 단번에 벌레 무리를 섬멸하는 소위 ‘과학 영농’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비효율적인 과정이지요. 


사마귀는 오래 기다렸어요


섬서구메뚜기는 우리 밭에 가장 흔한 곤충입니다. 섬서구메뚜기를 방아깨비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던데, 실제로 보면 방아깨비보다 크기도 작고 생김새도 달라요. 섬서구메뚜기는 다른 메뚜기들에 비해 행동이 굼떠서 사람 손에 쉽게 붙잡힙니다. 배추와 들깻잎을 열심히 먹어치운 후 열정적으로 짝짓기를 하는 녀석들을 손으로 덮쳐 잡으면, 손 안에서 꿈틀대고 발버둥치는 힘이 요란해요. 절정의 순간에 죽음이라니. 가슴속에 꿈틀, 연민이 올라옵니다. 


무잎에서 짝짓기하는 섬서구메뚜기 한 쌍. 수컷이 암컷에 비해 몸집이 작아요. 갈색과 녹색으로 몸 색깔은 달라도 다 같은 섬서구메뚜기입니다.


언젠가,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큰오라버니가 여동생 집이라고 놀러왔다가 배춧잎에 올라앉은 섬서구메뚜기 두 마리를 보고 초등생인 아이에게 묻더군요. “지수야, 이거, 엄마가 아들 업고 있는 거니?” 그러자 아이가 외삼촌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뇨, 짝짓기 하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곤충들의 짝짓기를 수없이 지켜본 아이가 환갑을 바라보는 큰외삼촌의 스승이 되는 순간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집에 오신 손님과 함께 참으아리꽃 위를 잉잉대며 날아다니는 통통한 호박벌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꽃 덩굴에 박제처럼 붙어 꼼짝 않던 암컷 사마귀가 갑자기 빛의 속도로 호박벌을 낚아챘어요.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들 “어어” 하는데, 손님이 반사적으로 손을 날려 사마귀를 툭 쳤습니다. 호박벌을 돕고 싶었던 거죠. 사마귀가 휘청거렸고 그 틈에 호박벌은 날아갔어요. 호박벌한테 일시적으로 감정 이입이 된 우리는 ‘살았구나, 다행이다’ 하는 표정이었는데, 보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마귀는 거기서 오래 기다렸어요. 우린 끼어들면 안 돼요.”


날아라, 배추흰나비


무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8월 하순부터 농부는 김장 농사를 시작합니다. 무성한 고추밭 옆 빈 이랑에 치솟은 풀을 베고 퇴비를 넣어 배추 모종을 심어요. 모종을 심은 다음날, 밭에 나가보니 “이런!” 서너 포기의 모종 밑동이 똑 끊겼네요. 주변 흙을 손가락으로 살살 파보니 거무스레하고 탱글탱글한 애벌레가 나옵니다. 바로 거세미나방 애벌레지요. 이파리 몇 장 뜯어먹는 정도면 참아줄 텐데, 녀석들은 꼭 이렇게 생장점을 싹둑 끊어 놓아요. 어쩔 수 없이 닭장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거세미나방 애벌레는 낮 동안 촉촉한 흙 아래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작물의 연한 밑동을 싹둑 끊어 먹습니다. 건드리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요.


일주일쯤 지나니 배추들도 기를 쓰고 잎을 펼칩니다. 배추가 벌레들을 이길 방법은 딱 하나, 벌레가 먹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자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창 잘 크던 배춧잎에 구멍이 뽕뽕 뚫리기 시작합니다. 구멍 뚫기 대장 벼룩잎벌레 짓이지요. 까만 깨알 같은 벼룩잎벌레는 배춧잎이 살짝 흔들리기만 해도 떼구루루~ 이파리 틈새로 굴러 떨어져버려요. 손톱 끝으로는 잡기가 여간 어렵지요. 쉽게 안 잡히는 법을 어쩌면 그렇게 본능적으로 아는지!


한 달쯤 지나 제법 배추 꼴을 갖춰갈 즈음, 배춧잎에 진초록색 똥이 보입니다. 똥은 애벌레가 있다는 증거지요. 초록잎을 먹고, 초록몸이 되어, 초록똥을 싸고, 초록번데기를 짓지만, 날개 펴고 날아오를 땐 눈부신 흰 빛으로 탈바꿈하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예요. 70포기 남짓한 배추 포기 사이를 앉은걸음으로 이동하며 배춧잎 한 장 한 장 들춰서 애벌레를 잡습니다. 애벌레와의 숨바꼭질에서 술래는 언제나 나예요. 그렇게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면, 웅크린 어깨와 허리, 고관절이 몹시 피로해집니다. 


배추흰나비 애벌레. 배춧잎과 똑같은 보호색으로 몸을 숨기지만, 몸이 자라면서 똥의 양도 많아져 금세 들키고 말아요.


애벌레를 그토록 열심히 잡아냈는데도 용케 살아남아 번데기를 지은 대단한 녀석도 있어요. 이상권의 <애벌레를 위하여>(창비)를 읽은 직후라 차마 닭장에 던지지는 못하고, 두부 용기에 담아 주방 창가에 들여놓았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눈 떠보니,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한 흰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유리창 위를 날고 있었어요. 꾸물거리는 애벌레, 죽은 듯한 번데기에서 하늘을 나는 나비를 상상하는 건 왜 그리 어려울까요. 병아리, 강아지, 새끼고양이, 사람의 아기... 그 어린것들은 귀엽고 안쓰럽다 하면서, 왜 유독 애벌레에게는 가혹하고 성충한텐 너그러울까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훼방꾼이라선가, 생김새에 대한 편견 탓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리창을 열어 공손히 그를 보내주었습니다. 


번데기 허물을 찢고 나온 배추흰나비가 주방 유리창에 앉았습니다. 수많은 위험을 이겨내고 마침내 한 마리의 나비로 날아올랐으니, 그의 생애도 이만하면 성공한 셈이겠지요?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변한다


화려한 나비나 외양이 멋진 딱정벌레류는 대개의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하지만 해충이라 불리는 곤충이나 꾸물거리는 애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지요. 낯설어서, 잘 몰라서, 두려워하고 혐오합니다. 대량의 살충제를 뿌려서라도 전멸시키고 싶어 해요. 하지만 벌레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만물의 조화와 신비,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포유류나 인간보다 결코 못하지 않아요. 조안 엘리자베스 록의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민들레)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치유자 레이첼 나오미는 “바라보는 행위가 보는 이를 변화시키고 평생 보는 방식을 바꿔놓는다”고 주장한다. 신비주의 시인 릴케는 이를 “경건한 내면 보기”라고 했다. ‘내면 보기’를 하면 바라보는 사물의 겉모습을 뚫고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날마다 애벌레들과 마주치다보니 아무리 못생기고 털 많은 애벌레라 해도 어떤 빛깔의 어른 곤충으로 탈바꿈할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애벌레의 변태 과정은 ‘미운 오리새끼’의 변신보다도 훨씬 드라마틱해요. 바라보면 알고 싶어지고, 알아가면서 사랑하게 돼요.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보는 방식’이 변하고, 나아가 그 ‘내면 보기’까지 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나뭇가지의 흰 점까지 꼭 닮은 자벌레. 회화나무 이파리를 싹 먹어치우고 태연하게 숨어 있어요.


오디 열매 오른쪽에, 아래로 늘어진 나뭇가지를 자세히 보세요. 뽕나무 가지 같지만 자벌레입니다. 자나방 종류의 애벌레인 자벌레의 눈속임은 놀라워요. 자연 속 ‘숨은 그림 찾기’지요.


국내 최초의 애벌레 도감인 <주머니 속 애벌레 도감>(황소걸음)에는 397종의 애벌레들이 사진과 함께 정리되어 있어요. 저자의 10년 노고가 담긴 귀한 책이지요. 하지만 이 책을 샅샅이 뒤져도 주변 애벌레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여전히 목말라요. 곤충 성충에 대한 정보는 지금까지 꽤 많이 나왔지만, 애벌레 시기의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알에서 깨어나 허물을 몇 차례씩 벗어가며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애벌레의 탈바꿈을 관찰하고 자료화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한국 땅에 서식하는 곤충만도 무려 1만 종이 넘는다니 그 방대함에 기가 질리지만, 그래도 그 분야의 꾸준한 자료 축적이 이어지기를, 그 작업을 좋아하는 곤충학자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