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내 삶에 대한 ‘재고조사’

2015. 9. 9. 09:02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새 스마트폰을 마련했을 때 추천받은 앱을 닥치는 대로 깔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기에 깔린 수십 개의 앱 중 매일 손길이 가는 앱은 서너 개에 불과합니다. 그저 깔아두기만 하는 앱들이 스마트폰의 속도를 느리게 하고 내장 메모리의 여유공간을 잡아먹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앱들을 수십 개 깔아둔들 무엇하랴. 영어회화 유료 앱을 구입한지 1년, 단 한 번도 활용 못하고 쿨쿨 잠만 자고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수백 벌 소유한 사람이 세련되게 잘 입을까요. 커다란 옷장에 100벌의 정장이 중구난방으로 걸려있고, 더구나 옷 주인이 개별 의상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수납공간을 스스로 정리할 줄 모른다면 옷은 날개가 아니라 짐일 뿐입니다. 품격 있는 10벌만 갖고도 때와 상황에 맞게 코디네이션할 줄 아는 사람이 훨씬 옷을 잘 입는다고 평가받습니다. 


정리는 왜 필요할까요? 정리는 오늘보다 더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재고조사’입니다. 인생역정의 창고와 영혼의 서랍을 열어본 다음, 버릴 것, 덜어낼 것, 추려낼 것을 솎아내는 구체적인 실천행위입니다. 정리하면 혼란한 정신이 맑아지고 의지가 새롭게 샘솟고 헝클어진 속마음이 가지런해집니다. 정리는 더 이상 나의 인생을 ‘혼돈의 공간’으로 방치하지 않으려는 편집력입니다.


취사선택의 원칙과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의 책장은 책만 보관해주는 개인 도서관 사서인가. 나태해지는 스스로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살아있는 인생참모인가. 책장에 어떤 정리의 원칙을 적용하는 지에 따라 책장 콘텐츠가 바뀝니다. 읽지도 않는 빈껍데기 장서만으로 가득 찬 서가가 향후 나의 지적 성장을 위해 읽어나갈 양질의 교양문고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지혜의 신간이 둥지 틀 수 있게 책장을 비워두세요. 다 읽은 책으로 책장을 채우지 마시길.


자신의 판단력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물건의 운명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합니다. 결국 버리지 못하는 원인은 두 가지.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을지를 즉각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물건의 소유행태가 삶의 가치관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갖고 있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동일한 물음입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추려내는 과감한 판단력이 작동되지 않을 때, 더욱 불필요한 물건을 늘리게 되고, 물리적, 정신적으로 점점 필요 없는 물건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혼돈의 공간에 갇혀 답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꼭 필요한 물건을 찾아내 새삼스럽게 사랑해주는 길과 직결됩니다.


물건을 진정 사랑하는 길


더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이 정리의 힘을 갈구합니다. 정리는 지저분한 방안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걸레질을 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쌓여둔 옷가지를 잘 입는 순서대로 위아래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정리는 버릴 것과 남길 것을 판단한 다음, 청소 차원이 아닌 집안 전체의 레이아웃을 다시 짜는 일입니다.


집주인의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일입니다. 정리의 첫출발은 물건을 버릴지 남길지 결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 물건의 제 위치를 정하는 일입니다. 꼭 필요한 물건에게 꼭 필요한 자리를 부여하는 것, 바로 이것이 물건을 사랑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면 물건은 “주인님, 안녕하세요” 말을 걸어옵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더난출판)를 펴낸 ‘집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는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책에서 집과 주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합니다. 


“나는 정리레슨을 받으러온 고객에게 집과 인사할 것을 강조한다. 가족이나 반려동물에게 말을 걸듯 집에게도 ‘다녀왔습니다’ ‘항상 지켜줘서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면 된다. 이런 인사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집이 대답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래 정리란 사람과 물건과 집의 균형을 잡아주는 행위다. 집은 항상 같은 곳에서 녹초가 되어 돌아온 주인을 위로해주고, 기다리고, 지켜준다. 정리는 항상 자신을 지켜주는 집에 대한 보은이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위즈덤하우스)를 출간한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씨도 공간을 흐름으로 살펴보라고 조언합니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의 공간은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과 같다. ‘순환’이 아닌, ‘흐름’을 만드는 것, 이것이 공간 정리의 핵심이다. 흐름이란, 물건이 들어온 (input) 다음 제대로 나가게(output) 하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하나 들어오면 다른 하나가 반드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