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재난을 줄이기 위한 기술

2015. 9. 10.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출처_경인일보


세월호 이후 또 다시 국민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1시간이 지난 후 해경이 아닌 지나가던 어선이 우연히 발견해 어부가 구조했다는 것으로 보아 정부의 대처는 이번에도 세월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거 같습니다. 돌고래호 선장이 선장으로서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그나마 세월호와 다른 점인 거 같습니다. 


우리의 기억력은 생각만큼 좋지 않습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귀에서 윙소리가 들릴 정도로 슬픈 일이 있어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길에 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고,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기쁜 일이 생겨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별 일처럼 생각되며 쿨해지기 십상입니다. 좋던 싫던 충격적인 일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치부하는 메커니즘 때문에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반복되는 실수를 없애는 방법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선언적, 추상적 시스템이 아니라 기술적 지원을 통한 절차적, 실용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자동차 사고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고는 영국에서 발생했습니다. 1834년 영국의 귀족 스코트 러셀이 만든 증기 버스가 승객 21명을 태우고 가다가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증기 압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보일러가 폭발해 2명이 사망한 것입니다. 마부 협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살인 기계인 자동차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권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양한 법안과 원칙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입니다. 붉은 깃발법에 따르면 자동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자동차에 3명이 탑승해야 합니다. 시외 기준 6.4㎞ 이하로 달려야 했으며, 시내에서는 3.2㎞로 제한 받았습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3명 중 한 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 전방 55M 앞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깃발 혹은 붉은 등을 가지고 소리치면서 뛰어 다녀야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자동차가 지나갔으니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후방에서 소리 치면서 뛰어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붉은 깃발법이 교통 사고를 줄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누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동차의 발전만 더디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도로를 안전하게 만든 것은 정부에서 만든 제도가 아니라 기술 발달을 통한 신호등의 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호등을 활용한 체계적인 교통 시스템을 통해서 우리의 안전을 도모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_tunblr, ⓒ the oddment emporium


신호등처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뜯어 고치거나 안전에 대한 경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술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현대판 신호등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IT 업계에서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으로 재난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5조 ~ 2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비하며 LTE로 구축하는 세계 최초의 재난망 구축에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기지국이 파괴되어도 통신을 할 수 있는 망으로, 군, 경찰, 소방관, 지자체, 의료 기관 등 재난 관련 공무원들이 전용 장비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통신망입니다. 세월호와 돌고래호 같은 긴급한 사태가 발생 했을 경우 유관 부처끼리 정보를 주고 받아 신속한 구조를 할 수 있어 해상 안전을 높이는데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 국가에서 사용하는 통신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기관별 통신망이 호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기관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사용해 소속이 다르면 서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서로 다른 통신 방식을 사용해 반대편에서 들어 오던 바로 앞의 열차에 연락을 할 수 없어 불이 난 열차보다 불이 옮겨 붙은 열차에서 더 많은 인명 피해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유력 기술로 검토 했던 기술이 테트라(TETRA)로, 미국 모토로라에서 관련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국가 핵심 시스템 장비를 해외 업체에게 의존 할 수 없다는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추진이 지지부진 하다가 세월호 참사가 생겼습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개요 / 출처_전자신문


세월호 참사 이후 더 이상 똑같은 실수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가 국민적 명령 수준으로 강해졌습니다. 뒤늦은 후회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안전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고 기술적 보안 조치를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와 돌고래호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LTE 전국망을 상용화 해 본 경험을 활용하면 앞으로 해외 진출도 가능 할 수 있다는 경제적 논리까지 맞물려 빠르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히, 테트라가 오래된 기술로 동영상을 전송하기 어려운데 비해, LTE는 이미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고화질 동영상도 무리 없게 주고 받을 수 있어 해상 재난 상황 같은 위급 상황 때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은 통신망일 뿐입니다. 사고가 터졌을 경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숙련도에 따라 누구는 사전에 숙지한 매뉴얼에 따라 잘 대처하고 누구는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안 됩니다. 재난에 대처하는 모든 사람들이 숙련도와 무관하게 동일한 수준으로 재난에 대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방법은 숙련도가 낮은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사전에 파악해 실수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더 나아가 실수를 저질러도 재난 대처에는 문제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FPS(fool proof system)이라고 합니다. FPS는 원래 공장 시스템에서부터 시작한 용어입니다. 공장에서 작업 숙련도가 낮은 사람들이 사고로 자꾸 다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손실이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개발된 시스템을 총칭합니다. 작업자가 실수로 작동중인 기계에 손을 넣어 다치는 사고를 막는 기능이 대표적입니다. IT도 다양한 영역에서 FPS를 도입하며 숙련도가 낮은 사람도 실수 없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설치시 네트워크 품질을 자동으로 체크 후 부족한 부분과 해결 방법을 알려 주는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재난 발생시 우왕좌왕하며 귀중한 인명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과 함께 시스템의 지시를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대응 할 수 있는 FPS 구축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