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 너머에 고양이가 산다

2015.09.16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출처_헤럴드경제


퇴근길에 저도 모르게 어떤 분에게 말을 건 적이 있습니다. “고양이 키우시나 봐요.” 어떻게 아셨냐고 되묻는 그 분께 저는 그 분의 가디건에서 막 떼어낸 고양이 털을 보여 드렸습니다. 까만 가디건에 묻은 노랗고 빳빳한 긴 털. 그 분과 저는 서로 멋쩍은 미소를 주고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스마트폰으로 SNS 어플에 접속했습니다.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많은 SNS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고양이 사진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고, 주먹만하던 애가 많이 컸다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 새, 때로는 카멜레온까지 저의 SNS 이웃들은 수많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진들과 함께 올라온 짧은 글에 답글을 남기기도 합니다. 제가 외우고 있는 SNS 이웃들의 반려동물 이름만 열 개가 넘습니다. 커크, 캡틴, 보리, 솔이, 오래, 할머니, 란포, 천정이… 어떤 반려동물들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어떤 반려동물들은 이제 막 새 가족과 적응하느라 바쁩니다.


이웃집은 아니지만 이웃집 고양이들 


처음 시작은 친구의 스마트폰 바탕화면이었습니다. 새까만 고양이가 배를 내놓고 뒤집어져 있는 바탕화면을 보고 저는 다른 사진은 없냐고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친구는 자기 페이스북 계정을 열어 사진을 보여주더니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이건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이건 자는 거, 이건 밥상 위에 올라오려고 애쓰는 거. 저는 당장 친구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고 그때부터 저의 타임라인에는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SNS상의 사람들이 올리는 반려동물 사진은 마냥 예쁘고 귀여운 사진만은 아닙니다. 이번 기사를 쓰면서 ‘여러분의 반려동물이 자는 모습을 올려주세요’ 라고 SNS에 썼더니 다음날 너댓 마리의 반려동물들이 ‘괴상망측하게’ 자는 모습이 답글로 도착해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척추동물이 이런 자세로 잘 수 있단 말입니까. ‘저기, 진짜로 이렇게 자는 겁니까?’ 라는 제 질문에 ‘더 이상한 모습도 많지만 저희 집 애들의 품위를 위해서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래, 그 ‘괴상망측’ 한 모습들과 일반적인 모습들 중 주인의 허락을 받은 몇 개의 사진을 모아 보았습니다. 사진 게제를 허락해 주신 현일이, 낙원이, 오래 등 여러 고양이들의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너의 랜선집사가 되어줄게 


이렇게 털 한 올 만지지 못하고 필자처럼 화면 너머로 고양이를 보고만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랜선 집사’ 라고 부릅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스스로 ‘내가 동물을 키우는 건지 동물의 집사가 된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말에 빗대어, 랜선으로 연결된 사이니까 ‘랜선 집사’인 겁니다. 


‘닌텐독스’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닌텐도 게임기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게임입니다. 밥을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애정도를 높이며 우리는 한 동물의 주인이 됩니다. 스마트폰 앱 게임인 ‘네코아츠메’ 역시 집에 찾아오는 고양이들과 애정도를 키우는 게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전자동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랜선 집사’가 되는 걸까요? 필자는 그 원인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의 대리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아지 인형을 안고 잠드는 것과 진짜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의 차이를 SNS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독립한 청년들은 쉽게 애완동물을 키울 여건을 갖출 수 없습니다. 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입주 조건에 못 박아 놓은 원룸, 주인이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있을 동물에 대한 미안함, 재정적 부담.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진짜 반려동물’을 들일 수 없게 합니다. 그러나 SNS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주인에게 혼나고 말썽피우고 먹고 자는 반려동물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SNS상의 소통을 통해 우리는 반려동물의 주인과 친해지고, 어느덧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온기와 생명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랜선 집사’가 됩니다.  


네코아츠메


랜선을 통해 나누는 애정을 넘어서


열 마리가 넘는 ‘랜선 반려동물’의 이름을 외우게 되는 동안 필자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길가에서 혼자 천연덕스럽게 털을 고르는 고양이에게 미소를 짓게 되었고, 예전에는 다 비슷해 보이던 개의 품종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꼭 필자만 그렇게 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액정 너머의 반려동물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랜선 집사들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고양이를 보고 ‘예쁘다’ ‘우습다’고 하는 것만을 넘어 랜선 집사들은 때때로 길고양이나 다른 고양이들에게 정말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다는 게시물을 리트윗 하거나 공유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고, 길고양이를 돕는 단체들에게 작은 마음이나마 성금을 보냅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길고양이에게 어육 소시지를 사다가 뜯어서 던져주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소한 도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의 ‘랜선 반려동물’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늘도 우리는 변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