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중 요리사는 모두 남자였다!

2015.10.1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이미지출처-YTN

 

아무리 높고 높으신 임금님이라 해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법. 게다가 왕조시대 임금이 밥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있는 것은 나라의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임금님 쯤 되면 나라 안에서 가장 훌륭한 밥상을 받았을 것도 같지요. 그런데 과연 누가 그런 음식들을 만들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라상궁!’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어떤 유명한 드라마 덕분이지요. <대장금> 이미지와 달리 실상은 달라도 많이 달랐습니다. 조선시대 세종 때, 명나라가 요리를 잘 하는 여인들을 공녀로 바치라고 요구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오히려 당황해서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궁중 요리를 만드는 것은 다 남자로 여자가 아는 바가 아닌데?"


그렇지요, 이 때만 해도 임금님이 먹을 밥은 오로지 남자들이 만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을 뽑아 속성으로 요리를 가르쳐서 중국으로 보냈으니, 이들을 집찬비(執饌婢)라고 했습니다. 나라의 일이다보니 속성으로 가르쳤다곤 하지만, 제대로 손에 익는데 자그마치 3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당시 궁중요리의 복잡하고 까다로움을 가늠해볼만 하지요.


그럼 수라상궁이 아닌 누가 임금님의 식사를 책임졌느냐, 라고 하면 그게 바로 조선시대의 쉐프 숙수(熟手)입니다. 어디서 한 번 쯤은 들어본 이름이지요? 바로 허영만 씨의 만화 식객에서 등장하며 이것은 이후 드라마, 영화로도 만들어집니다. <만화 식객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선조 때 그려진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를 보면 연회장이 차려진 한 구석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솥의 불을 때거나 음식을 썰거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남자들이지요. 이들의 신분은 중인이거나 노비로 천대를 받았지만, 음식을 인연으로 높으신 분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임금님들의 쉐프


조선이 건국되고나서 얼마 뒤, 태조 이성계는 장군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며 밥을 해줬던 이인수(李仁壽)를 중추원 자리에 꽂아줍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거세게 반대합니다. 이인수의 신분도 천하고 오로지 요리하는 법만 아는데 그런 높은 벼슬을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성계는 그는 요리만 할 뿐이라며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인수는 무려 태조의 온천 여행에까지 따라가기까지 했는데, 그만큼 태조의 입맛을 환히 알았던 탓일 겁니다.

 

세종에게도 그만을 위한 전용 쉐프가 있었습니다. 이교(李皎)는 의안대군 이화의 아들이었으니 명색이 종실 출신이었는데, 그는 원래부터 요리를 무척 잘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역사상 대놓고 요리를 잘한다, 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무척 드물지요. 세종 16년, 그는 마침 충청도의 병마도절제사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중국에서 사신이 찾아오는 일이 벌어지자, "사신을 접대하는 큰 잔치가 있는데 상감마마 앞에서 요리할 사람이 없다!" 는 이유로 이교는 원래의 임기인 2년도 다 못 채우고 밥하러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분을 생각하면 직접 요리를 했으리라 믿어지진 않지만, 이렇듯 나라의 큰일에 부를 정도였으니 보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 먹는’ 편식왕 세종 앞에서 요리를 할 정도라면 그만큼 훌륭한 솜씨를 가졌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이렇게 높은 신분이면서도 요리를 잘한 이교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였고, 대부분의 숙수들은 신분은 낮았고 일은 몹시 고되었습니다. 임금님은 하루에 다섯 번 밥을 먹으니 그걸 차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고, 큰 연회가 있을 때 출장뷔페 일을 하거나, 혹은 높은 관리나 권세가 집에 불려가서 음식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숙수들이 일 안 하려고 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손끝에서 빚어져 나온 요리들은 조선시대의 요리의 역사를 빛낸 명작들이었지요.

 



화려함과 복잡함의 극, 궁중요리

조선시대의 궁중요리, 하면 신선로니 이것저것 떠오르겠지만 숙수와 그가 만든 요리를 직접 기록한 것은 바로 《수문사설(諛聞事說)》입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역관 이표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원래 역관이었습니다. 역관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외교관으로 신분은 중인에 불과했습니다만, 무역을 독점하여 떼돈을 벌어 오히려 양반보다 더 부자이곤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신분 때문에 높은 관리가 될 수 없었으니, 그 한을 돈을 펑펑 쓰며 풀어댔으니 그 중 한 방법이 식도락이었습니다요. 그래서 《수문사설》에는 외국의 각종 먹거리 - 가마보곶(가마보꼬)등은 물론이거니와 숙수들의 이름 및 그들의 요리 레시피도 함께 실려있습니다. 사옹원의 권탑석(權榻石)은 닭고기와 꿩고기로 만든 만두인 황자계혼돈(黄雌鷄餛飩)을 만들었고, 숙수 박이미(朴二尾)는 동아에 갖은 재료를 넣어 찐 동과증(冬瓜烝)을 만들었다지요. 

황자계혼돈 / 출처_문화콘텐츠닷컴

그 중 황자계혼돈의 레시피를 소개하자면, 먼저 노란 암탉 두 마리와 꿩을 삶아 고기를 발라내고, 송이버섯이랑 파, 마늘을 진흙처럼 곱게 다져서 기름과 간장으로 볶은 뒤, 주걱으로 눌러 기름을 짜내고 파, 생강, 마늘을 넣어 맛을 냅니다. 그리고 밀가루를 10차례(!) 쳐서 가장 고운 가루를 물로 반죽하고 종이처럼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듭니다. 여기에 양념한 고기를 소로 넣고 만두를 빚고, 닭과 꿩 육수에 만두를 익혀낸 뒤 국물 반 사발에 만두를 넣고 초장과 파, 마늘을 섞어 먹습니다. 이렇듯 재료가 많고 만들기 복잡한데다가, 얇은 만두피가 쉽게 풀어지기에 만들어 바로 먹어야 했던 까다로운 음식이었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식으로 부리는 사치는 언제나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궁중요리들의 세계를 공부하면서 훌륭한 수랏상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하니, 그것이 바로 맛있는 음식이 가진 진정한 힘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숙수와 궁중요리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꼭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