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부자 관계를 묻다

2015. 9. 25.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사도'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훌륭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또? 입니다. 필자가 아주 어렸던 시절에 보았던 사극 드라마에서부터 각종 영화 소설 심지어 만화까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다뤄졌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이야기가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데, 각 작품에서 그려지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때론 집권세력인 노론에게 밉보인 희생자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북벌을 꿈꾸는 개혁자이기도 했습니다. 혹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해친 살인마이기도 하며,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불행한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들어오게 됩니다. "어느 게 진짜입니까?" 처음에는 각종 사료들의 예를 들어가며 열과 성을 들여서 이야기해줬지만, 몹시 실망스러워하는 반응이 돌아오더군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정확한 역사가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였거든요.


객관적인 역사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각종 매체에서 나온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모두 다 지어낸 거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돌아가 사도세자의 인터뷰를 따낸다 해도, 그것이 정답이 되지는 않겠지요. 어차피 객관적인 역사란 없습니다. 누구든 자신만의 편견을 가지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역사도 그러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실록은 사관들의 필터링을,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서 객관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 사도세자를 미치광이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런 사료만 보이고, 좌절한 개혁가나 당파의 희생자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것만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니 어디까지가 진짜고 아니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열광해왔기에 이처럼 이 이야기가 거듭 생명력을 얻는 것이겠지요.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비극


어째서일까요? 스물여덟이란 젊은 나이에 죽은 세자에게의 안타까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비참한 죽음을 동정해서일까요. 어느 것이든 이 비극의 가장 큰 축은 아버지인 영조, 그리고 아들인 사도세자 두 사람입니다. 늙은 왕과 젊은 세자, 이들은 피를 나눈 가족이면서도 왕과 신하라는 관계이기도 하지요. 마침내 두 사람 사이의 대립이 벌어지고, 마침내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게 됩니다. 몹시 고전적인 비극이기도 하면서, 또한 전형적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참으로 많은 아버지들이 아들들을 미워하고 죽여 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의 자식인 동시에 라이벌이 되고, 늙은 수컷은 가차 없이 젊은 수컷의 목줄을 물어뜯게 되지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영조와 사도세자 뿐만 아니라 대무신왕과 호동왕자, 인조와 소현세자처럼 부자이면서도 서로 미워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파국에 이른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흔히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합니다만, 이 때에는 오히려 늙은 아버지가 젊은 아들의 생명을 앗아가기에 비극의 색채는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무엇보다도 아들을 죽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명을 주었던 사람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생명뿐이겠습니까? 사랑도 주었겠지요. 영조는 한 때 아들자랑에 여념이 없는 '아빠'였으며, 사도세자는 참으로 영특하고 총명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함께 사랑하며 있을 것 같았는데, 아주 조금 반 발짝씩 떨어져서 걷다보니 어느새 서로의 손이 닿지 않게 되고, 그러다가 어긋나고 틀어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된 겁니다. 



이 시대의 사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익선관을 쓰며 곤룡포를 두르고 있으나,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은 지금 이 순간 어딘가의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도 흔하게 벌어지곤 합니다. 한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예뻐하다가, 자라면서 차츰 기대에 어긋나자 못난 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자식을 갈구는 부모. 그런 부모 앞에서 주눅 들고, 좌절한 끝에 크게 엇나가는 자식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큰 원망과 미움이 마음을 짓누르게 되지요. 그래서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냥 남의 일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저 자신이 못 미더운 '자식'이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민족의 명절인 추석입니다만,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을 뵙는 일을 생각하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한 때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해마지 않는 내 부모님이건만 어째서 속이 이처럼 쓰라려오는 것일까요. 물론 요즘 시대에 뒤주에 들어갈 일은 없겠지만, 가족이란 그저 무한한 사랑이 가득한 관계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몹시 슬프지요.


*사진출처

네이버 사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