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피며 숲을 생각하다

2015.10.28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생활백과


든든한 땔감, 고마운 온기 


가을비 내린 후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바야흐로 화목보일러에 불 지피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막바지 가을걷이로 고단한 몸에 뜨끈한 방바닥은 크나큰 위로지요. 우리집 땔감은 간벌한 숲에서 가져온 잣나무, 참나무, 아까시나무들이에요. 숲의 안쪽엔 간벌만 해놓고 치워내지 못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버려진 채로 눈비에 썩어가는 나무들을 보면 무척 아까워요. 하지만 그걸 가져다가 연료로 쓸 사람은 이 동네에 많지 않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대부분 전기보일러나 기름보일러를 쓰시거든요. 나무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강도 높은 노동이라 연세 드신 어른들로선 엄두를 내기 어려워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젊으니 돈으로 비싼 기름을 사는 대신 땔감 노동으로 겨울의 온기를 얻고 있지요. 개미처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서 인연 닿는 대로 얻어오고 힘닿는 대로 주워오면 1~2년쯤은 너끈히 날 만한 땔감이 모입니다.


하루에 다섯 짐, 어떤 날은 열 짐도 넘게 나뭇짐을 해옵니다. 놀이하듯 신명을 내는 마음이 없다면 땔감 구하는 일은 힘들고 괴로운 노동이 되고 말겠지요.


남편은 지게를 마련해 틈날 때마다 숲으로 들어갑니다. 가까운 곳엔 땔감이 별로 없어서 산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해요. “산속에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 앞산 능선에만 올라가도 절경이 따로 없어. 산 너머엔 버려진 나무들이 얼마나 많다고.” 몸이 축날 정도로 힘든 지게질을 하면서도 남편은 운동이나 놀이를 하듯 말합니다. 이렇게 한 짐씩 지게질로 져 내려온 땔감으로 우리 가족의 생활공간이 덥혀지지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마움입니다. 


소나무나 잣나무는 목질이 무르고 가벼워서 금세 타버리지만, 참나무나 아까시나무는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무거워서 불땀이 좋고 오래 가요. 땔감으로서는 최고지요. 나무는 산에서 가져오자마자 바로 땔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젖은 나무나 생나무는 연기만 많이 날 뿐 열효율이 좋지 않으니 잘 쪼개서 한두 해 말려뒀다가 때는 게 좋습니다. 즉, 올해 마련한 땔감은 내년과 내후년을 위해 미리 비축해두는 겨울 살림이라 할 수 있지요.


큰 통나무는 도끼질만으로는 쪼갤 수가 없어요. 도낏날을 쐐기 삼아 해머로 도끼머리를 여러 차례 반복해 내리치는 방식으로 통나무를 쪼갭니다.


잘 마른 땔감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바라보노라면 눈도 즐겁고 배도 부릅니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든든한 마음이 되지요. 야마오 산세이가 쓴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는 이런 대목이 나와요. "땔감은 아무리 많아도 괜찮다. 우리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땔감은 일종의 재산과 같기 때문에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이 편안하다." 그걸 읽는데 어쩌면 우리 마음과 이리도 똑같은지, 빙긋이 웃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보일러실 근처에 장작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잘 마른 땔감을 보기 좋게 쌓아놓으면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요.


불꽃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간


해질녘, 두툼한 잠바를 걸치고 면장갑 끼고 불 때러 나갑니다. 나무하는 일이 남편의 일이라면 불 지피는 일은 대체로 나의 일이지요. 집 뒤로 돌아가니 쌓아둔 땔감 너머로 뭔가 바스락! 하더니 고라니 한 마리가 겅중겅중 산 쪽으로 달아납니다. 그 바람에 푸드덕, 꽤액--! 놀란 장끼(수꿩)가 소리를 지르며 풀숲에서 날아올라요. 산 밑에 사는 우리에겐 흔한 풍경입니다.


보일러 화구를 열고 마른 콩대를 한아름 화구에 집어넣습니다. 밑불을 놓는 데는 콩대나 깻대처럼 화르륵 잘 타는 불쏘시개가 꼭 필요해요. 그 콩대 위에 잘 마른 나뭇가지들을 대여섯 개 분질러 얹고, 맨 위에다 남편이 그간 몸을 축내가며 모아온 굵은 참나무 땔감들을 올립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나무를 땔감으로 쓸 때 "우리를 용서하라. 우리에겐 그대의 따뜻함이 절실하다."라고 말한대요. 나 역시 땔감을 하나씩 던져 넣으며 그들이 살아온 수십 년 푸른 생애에 눈을 맞추고, 오늘 불과 재와 열로 바뀌어 우리의 체온으로 스며들 존재들에게 목례합니다. 


이제 불을 붙입니다. 오늘의 불길은 구겨진 신문지 한 장으로 시작됩니다. 신문지에 붙은 불길이 콩대로 옮겨 붙고, 그 불이 마른 나뭇가지로 옮으면, 굵은 참나무가 이글이글 불꽃에 휩싸이는 건 시간문제지요.


나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제 몫을 온전히 다합니다. 그의 생애엔 남김이 없어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동화가 아니라 나무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활활활~~~ 타닥 탁 탁... 

작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얼굴에 발간 훈기를 느끼며 불꽃의 춤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이 순간을 나는 사랑해요. 불빛과 소리에 감각이 열리면서 낮 시간에는 듣지 못했던 수많은 소리들이 현재형으로 나를 두드리는 걸 느낍니다. 삐리릿 삐릿- 겨울 새들의 노랫소리, 그에 화답하는 짝들의 날갯짓 소리, 뒷산 숲을 달리는 고라니의 빠른 발소리, 그 발길에 투둑 툭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마른 잎 스치는 소리, 산토끼와 청설모가 제집으로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화르르 타닥 탁 탁, 붉게 휘감기는 뜨거운 불 속에서 나무가 제 몸을 내주는 소리... 


이제 한두 시간 활활 태워주면 난방수 온도는 70~80도를 넘길 거예요. 뜨거워진 난방수가 배관으로 흘러들어 집안을 훈훈하게 덥혀주겠지요. 주위는 어느새 캄캄해지고, 서쪽 하늘에 초승달과 샛별이 맑게 반짝여요. 뜨거운 화구를 닫고 차가운 저녁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후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불쏘시개 잔가지들을 쌓아둔 너머로 초승달과 샛별이 떴어요. 겨울 해는 빨리 떨어집니다. 새들도 잠들었는지 사위가 고요해졌어요.



욕망의 시대에 사라지는 것들


집 뒷산에서 요란한 전기톱 굉음이 종일 울리더니 산비탈 한 면이 휑하니 비어버렸습니다. 참나무와 소나무 푸른 가지들이 드러눕고, 산의 속살이 벌겋게 파헤쳐졌어요. 나무를 소비하며 사는 한 약한 인간이, 한순간에 잘려나가는 숲을 보며 불안한 가슴을 퉁탕거렸습니다.


숲이 사라지는 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한번 없어지면 되돌리기도 어려워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개발은 결국 치명적인 후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개발업자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산이 너무 많아서, 그대로 둬봐야 동네에 보탬도 안 되지." 산이 산으로 보이지 않고, 산이 돈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해 자신의 전 재산으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광활한 토지와 농장을 사들인 후 시민환경운동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하고 세상을 뜬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떠올랐어요. 봄이면 꽃분홍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고, 파릇한 엄나무순과 잔고사리가 무성하게 돋아나는 뒷산을 잃게 된다니, 내게 돈만 있다면 베아트릭스 포터처럼 뒷산을 다 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막무가내 개발의 탐욕과 무지의 폭력성은, 작게는 동네 뒷산을 파헤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국토와 물길을 결딴내는 데까지 이릅니다. 


봄숲의 빛깔은 가을 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워요. 새순이 돋을 무렵의 풋풋한 초록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도 봄물이 차오르게 합니다.



나는 추운 겨울 밤 화덕을 지키는 따뜻한 온기입니다.

나는 당신이 여름 햇살을 피하는 그늘입니다.

당신이 길을 떠돌고 있을 때 내 열매 속 과즙은 당신의 목마름을 가라앉힙니다.

나는 당신이 사는 집 기둥입니다. 문입니다.

당신이 누워 잠드는 평상입니다.

배를 만드는 널빤지입니다.

나는 당신의 괭이자루입니다.

나는 당신이 누워 있던 요람부터 앞으로 눕게 될 관의 널판입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공원의 어느 나무에 붙어 있는 표지판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나무로 불을 때고... 오랜 세월 사람들은 숲에 기대어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갑니다. 수많은 생명들에 의존해 사는 우리의 약함에 대해, 숲을 기르지 않으면서 숲으로부터 가져가는 우리의 이기(利己)에 대해, 그리고 우리 마을 뒷산에서 오랜 세월 나이테를 늘려온 수백 그루 소나무 참나무의 생애에 대해 생각합니다. 태곳적부터 흘러온 강도, 태곳적부터 있었던 산도, 이 욕망의 시대에 오면 허망하게 사라지고 무너집니다. 인간의 탐욕이란 그렇게 독하지요. 무력감으로 마음이 많이 아플 때 헬렌과 스콧 니어링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이 다만 몇 세대 동안만이라도 손에 도끼와 톱만 들고 일하면서 숲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린다면, 메인의 날씨와 흙이 다시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목재를 지천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련만.  

-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조화로운 삶의 지속>(보리) 중에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