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스포츠부가 없는 북한 노동신문 편집국

2011. 8. 24. 13:0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북한에서 기자는 흔히 사상 전선의 맨 앞자리를 지키는 당의 ‘나팔수’로 묘사됩니다. 김정일 가계에 대한 우상화와 대민선전 등 북한 체제 유지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세뇌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며 이에 종사하는 기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사상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북한이 달성하겠다고 10여 년째 목매고 있는 ‘강성대국’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은 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의 목표를 달성한 나라를 의미하는데, 북한은 자신들이 이미 사상강국과 군사강국 목표는 달성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경제를 부흥시켜 이제 경제강국 목표만 달성하면 강성대국은 실현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강성대국 건설 이론은 1998년에 나왔는데 이때도 논란이 있긴 했습니다. 제가 이때는 북한에 살 때였는데 북한 주민들이 “경제나 군사 강국은 말이 되는데, 사상강국이라는 것은 무슨 말장난이냐”고 쉬쉬 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아무튼 강성대국의 정의에 사상강국을 제일 먼저 넣은 것은 북한이 사상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을 중시하는 북한답게 노동신문 편집국의 편제는 좀 독특합니다. 노동신문 편집국에는 모두 15개의 부서가 있습니다. 

편집부, 당역사교양부, 혁명교양부, 당생활부, 대중사업부, 공업부, 농업부, 사회문화부, 과학교육부, 남조선부, 대외협력부, 국제부, 보도부, 사진보도부, 특파기자부입니다. 이중 당역사교양부, 혁명교양부, 당생활부, 대중사업부 4개 부가 한국 언론사의 정치부에 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북한이 사상 선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 언론사에는 사회부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장 많은 기자들이 배속돼 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신문이 따로 있고 방송사에서도 스포츠 보도는 메인 뉴스에서 따로 분리할 정도로 스포츠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노동신문에는 사회부, 문화부, 스포츠부가 따로 없습니다. 무려 15개의 부서 중에 사회문화부 한 개 부서가 사회, 문화, 스포츠를 다 같이 다룹니다. 북한의 다른 언론사도 실태는 이와 비슷합니다. 이는 노동신문의 지면 구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6개 면을 발행하는 노동신문의 면별 구성은 이렇습니다.

1면은 김정일의 동정, 우상화 교육, 김정일을 흠모한다는 외국의 여론, 사설 등이 실립니다. 2면은 혁명전통교양과 계급교양 자료, 당일꾼들의 활동소식, 3면 역시 김정일 우상화 교육과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충신들의 스토리를 담습니다. 그리고 4면에 가서 전국 행정, 경제 일꾼들의 이야기나 미담기사, 노동통신원들이 보내온 기사, 문화공연소식과 체육소식 등이 간단히 실립니다. 스포츠의 경우 국제경기에 나가 패배한 소식은 거의 실리지 않습니다. 5면은 남조선면이며 6면은 국제면입니다.

노동신문에서 가장 핵심부서는 한국 언론의 논설실에 해당하는 논평원실입니다. 여기에는 사상적으로 가장 잘 준비돼 있고 필력이 좋은 기자들이 뽑힙니다. 인민기자, 공훈기자, 1급 기자 등 최우수 기자들이 소속돼 있습니다. 물론 한국 언론의 논설실도 우수한 고참기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선 북한과 비슷합니다.

북한 논평원실에서는 당정책에 관한 정론, 논설, 사설 등을 쓰는데, 이는 노동신문에서 김정일이 가장 주목하는 지면입니다. 노동신문 1면에 실리는 많은 정론이나 사설에 검은 테가 둘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김정일이 이 정론을 미리 읽어보고 비준해주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로 이런 정론은 전국적으로 학습해야 합니다.

논평원실이 인기가 좋은 것은 정론을 잘 쓰는 기자는 김정일의 눈에 들어 노동당 간부 등으로 승진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북한 신문의 기사는 물론 논평에도 논평원의 이름이 뒤에 달립니다. 하루 사설 2~3개가 꼭꼭 나가는 한국 신문들과 달리 노동신문에는 일년에 자기 논평 한두 개도 못 내는 논평원도 많습니다. 이러니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단어 하나 선택에 한달 고민한 논평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논평원보다 더 중시되는 기자도 있습니다. 바로 김정일의 현지시찰 등에 동행하는 기자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정치부에 소속된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기자를 북한에선 ‘1호 기자’라고 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특파원은 선망의 대상인데, 외국에 나가보는 것 자체가 특혜인 북한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아프리카 및 중동지역에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 특파원을 내보냅니다. 특파원을 기자 중에서 공모하는 한국과는 달리 북한에서 특파원은 실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웬만한 백그라운드가 없다면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것이 편안합니다. 일단 해외에 나간 특파원은 호시탐탐 달러를 모을 수 있는 기회를 혈안이 돼 찾습니다. 자신을 뽑아준 윗선의 입을 충분히 벌어지게 만들어야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더 오래 해외에 체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자들은 매일 아침 자기 담당 분야에서 기사거리가 되는 것을 발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상부(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신문과 방송에 지령을 내리고 부서장들이 이에 맞게 기자들에게 지시를 주는 식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를테면 6.25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이 다가오면 “이번 주는 반미주간으로 하라”는 지시가 떨어집니다. 그러면 신문사 간부들은 다시 기자들에게 반미사상을 고취시키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쓰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수령 결사옹위의 주’ ‘사회주의 애국주의 고취 기간’ 등의 캠페인이 1년 내내 이어집니다. 북한 신문을 자세히 보면 요즘은 어떤 주제에 역점을 두고 신문을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북한 언론사만큼 김일성, 김정일의 소위 ‘교시, 말씀’이 적힌 판이 복도와 사무실 등 도처에 많이 걸려있는 곳도 보기 드뭅니다. 북한에서 ‘교시’는 김일성이 한 말을 의미하고 ‘말씀’은 김정일이 한 말을 지칭합니다. 그중에는 눈길을 끄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당의 영원한 동조자, 방조자, 조언자가 되라”, “열 걸음 걷고 싶어도 당에서 한걸음 가라고 하면 한걸음 가야 합니다”, “기자들은 숨도 제 맘대로 쉬어서는 안 됩니다”와 같이 다른 데서 보기 힘든 ‘말씀’이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기자는 노동당에서 시키는 대로 철저히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라는 지시입니다.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언론인의 중요한 덕목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양심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선 ‘기자=노동당 선전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남북 언론인의 만남’과 같은 이벤트들이 있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는 ‘남한 언론인과 북한 노동당 선전일꾼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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