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왜 잘 노는 놈이 성공할까?

2011. 8. 31. 09:5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2005년 7월에 낸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6년이 지난 올해 6월까지 24쇄를 찍었다. 세월이 꽤 지났는데도 꾸준히 잘 팔린다는 얘기다. 이른바 스테디셀러다. 강단뿐만 아니라 신문과 방송, 민•관 강연회 등에도 자주 등장해 지금도 ‘잘 노는’ 그는 책 제목대로, 그래서 성공한 사람임이 분명해 보인다. 책이 잘 팔리는 것은 지은이 자신의 성공이 책 제목이 제시한 명제가 참이라는 걸 입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성공이란 게 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남긴 피해의식이다.”(61쪽)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책>


지은이가 말하는 성공이란 바로 재미와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다. 그것도 거창한 그 무엇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자그마하고 소소한 것들에서 느끼는 재미와 행복이다. 그것이 또한 인생 최대의 목적이다. 이보다 중요한 그 무엇은 없다.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며, 인생 실패의 시작이요 그 끝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나?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공부 잘 하고, 좋은 직장 다니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펑펑 돈 잘 벌고, 명가 자제와 결혼하고, 그럴듯한 저택에 살면서 외견상 떵떵거린다 한들, 그 인생들은 모조리 실패다. 

잘 사는 나라들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9년 통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가장 성공했다는 대한민국 구성원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전체 노인 중 중위소득 미만에 속하는 노인의 비율)은 45%로 OECD 국가들 중 단연 1위다. 노인학대도 2005~10년 사이에 50% 이상 증가해, 국가인권위 조사로는 세 명 중 한 명 이상(37.8%)이 학대를 받고 있다. 미국•캐나다•영국은 5~10% 수준이다. 그래선지 한국 노인들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60.4명으로 OECD 평균의 8배가 넘는다. 노인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 자살률도 한국이 10만명당 24.7명으로 세계 최고다.

그렇다면 저 화려한 경제적 성취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금 60•70대 노령자들은 바로 한국 경제기적의 주역들이 아닌가? 그 주역들 다수가 은퇴 뒤 도착한 여생의 기착지가 결국 가난과 학대와 소외와 자살의 동토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들이 꿈꾸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추구해온 미래의 그 무엇이 결국 이것이었나. 이건 성공이 아니라 명백히 실패다.

불행하게도,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계속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는 책 쓸 때 지은이를 충동질했던 문제의식이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한국인들의 삶은 별로 행복해지지 않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많은 독자들이 사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지은이의 한국사회 문제 진단과 처방이 그만큼 정확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면 성공적인 삶의 척도라 할 재미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잘 놀면 된다. 제대로 놀면 된다. 그게 이 책이 내놓은 답이다. 잘 노는 게 최고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면,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단다. 그러면 어떻게 놀아야 잘 놀고 제대로 노는 것인가?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바로 이런 얘기, 재미와 휴식과 놀이에 관한 심리학적 설명이며, 지은이 자신이 “현실 속에서 느끼는 나 자신의 문제점들을 심리학 이론과 연관시켜 솔직하게 풀어낸 것들”이다.

그러나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 논다는 게 생각처럼 간단하고 쉬운 게 아니다. 도대체 논다는 건 뭐며, 인간은 왜 노는가? 여기서부터 “독일(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도록 13년간 심리학을 공부한”지은이의 장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말하는 ‘노는 이야기’는 그저 웃기고 재미난 얘기가 아니다. 

고전적 놀이이론들과 그것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20세기 중반 이후의 심리학과 교육학 분야 연구성과들을 일별한 뒤 지은이는 놀이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비실재적이다. 둘째, 내적 동기에서 출발한다. 셋째,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넷째, 놀이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 다섯째, 놀이의 특징은 즐거움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풀어헤치는 더 많은 얘기가 펼쳐지지만, 이렇게 놀듯이 살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출간한 것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 40시간 근무제가 실시되기 시작한 지 딱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제 거의 전면화한 주 40시간 근무제는 서구가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에 걸쳐 이룩한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한국은 이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 여가시간 확대라는 사상 초유의 혁명을 불과 50년 만에 이뤄냈다. 이제 산업시대를 특징 지었던 자본•노동•시간의 투입만으로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는 지식기반사회, 지식정보화 시대가 시작됐다. 삶의 조건과 환경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창의적이어야 성공한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이 전환기의 특성을 유럽에서 연마한 문화심리학이라는 무기로 쉽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창의성도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예전에 있었던 것들이 다른 맥락에 놓일 때 창의성이 실현된다.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꽃피운 ‘낯설게 하기’가 바로 창의성이다. 그런데 이걸 해낼 수 있으려면 관성적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노는 놈’들이다. 놀아본 자들만이 창의적일 수 있으며, 더 잘 노는 자들이 더 창의적이다.

잘 놀려면 내가 남의 처지가 돼 이해하는 ‘타인 관점 획득’이 필요하며, 다른 존재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사회적 관점 획득’이 필수적이다. 이런 ‘마음의 이론’에 따르면 그런 관점은 놀이를 통해 획득된다. 즉 놀 줄 모르면 남의 생각도 다른 사회도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런 토대 위에선 창의성이 발양될 수 없다. 제대로 놀려면 ‘정서공유’가 일어나야 하고 ‘상호주관성’이 발동되고 의사소통이 이뤄지며, 서로가 주인임을 인정하는 ’상호인정’이 이뤄져야 한다.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고 도구적 이성만이 활개를 치는 것은 그게 안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논다는 건 곧 그게 된다는 얘기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담고 있는 재치있고 톡톡 튀는 재미난 얘기들이 그저 ‘놀고 있는’차원이 아니라 심오할 수 있는 건 이런 지적 연마를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눈을 통하면 학벌과 출세주의 등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고질적인 한국사회 문제점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확 다가온다. 그야말로 ‘낯설게 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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