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30. 18: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읽는 존재
송화준, 책읽는 지하철 대표 기획자
봄, 떠올리면 향긋하지만, 한편으론 왠지 우울해집니다. 세상은 완연한 봄인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 그 냉기가 더 짙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사계절 중, 우울증이 가장 심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기가 봄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나 홀로 냉방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 그래서 봄이면 따뜻한 글이 그리운가 봅니다. 세상에 맞춰 내 마음 덥히려고. 세 권의 온기를 선물합니다.
윤세영 에세이, 『당신은 나의 봄입니다』
제목부터 이미 먹고 들어가는 책이죠?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일간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엮었습니다. 읽다 보면 ‘사람’이 봄이고, 희망이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에 비친 일상이 참 따뜻합니다.
“꽃을 핑계 삼아 그리운 사람을 청하는 멋을 부려보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과 마주하며 차를 우리면 어느 해 봄보다 향기로울 것 같다. 그리고 화살처럼 빠른 세월 속 짧은 봄날이어도 마냥 아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 p.207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좋은 인연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진정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늘 봄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고 싶다.” - p.171
에피소드마다 2~3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냥 펼쳐지는 대로 가볍게 눈길을 던져보세요. 누가 아나요? 어쩌면 당신 마음에 작은 봄싹이 싹틀지.
규영 소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젊은 작가, 규영의 데뷔 소설입니다. 2030대라면 공감할 법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서른둘 동갑내기 여자 사람, ‘우영’과 ‘구월’입니다. 소설은 두 여자의 대화를 따라 흡입력있게 전개됩니다. ‘어쩌다' 마케터로 살고 있는 우영은 여섯 번째 퇴사를 고민하고 있고,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인 구월은 소개팅을 백 번이나 넘게 해놓고도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바로 우리가 맨날 하는 그 고민, 일과 사랑이죠!
"몇 살이야?"
"세 살 위."
"뭐 하는 사람인데?”
“엔지니어."
엔지니어 되게 많네. 구월이 소개팅한 엔지니어만 모아도 작은 회사는 차릴 듯.
- 소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중에서 -
작가의 가벼우면서도 위트 있는 문체는 우울함에 빠지지 않고 피식피식 웃게 하고, 어느새 읽는 이를 위로합니다.
오빠가 나와 영 딴판으로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며 신망을 쌓았다. 오빠가 내 여섯 번째 퇴사를 어찌 볼지 궁금했다. 오빠의 조언이라면 꾸지람이라도 들을 수 있으니.
“우영아,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그것도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며 절실히 깨달은 게 있는데….."
“응, 말해봐."
“…. 우리가 결코 신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신은 회사에 다니라고 인간을 만든 것 같진 않아."
오빠는 푹 자라며 방 불을 꺼주었다. 하지만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 소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중에서 -
그렇게 조금씩 빠져들어 둘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릅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의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야.’ 한마디 힘차게 외치고, 이어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가고 싶어집니다. 그런 소설입니다.
김유정 소설, 『봄봄』 그리고 『동백꽃』
독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현실을 더 풍성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소설을 읽고 그 배경지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되겠죠. 저는 지금 이 글을 춘천에서 쓰고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으로 추천할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가 있는 춘천 실레마을(경춘선 김유정 역 일대)입니다. <봄봄>과 <동백꽃>은 김유정이 연희전문학교를 그만두고 내려와 야학을 할 때 그의 눈에 비췬 어려운 주민들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푼 소설입니다. 깊어진 지병과 시련의 상처를 간직한 ‘청년 김유정’의 좌절을 승화한 작품들이지요. 개인적으로 교과서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느이 집에 이런 거 없지?”라고 외치던 점순이의 당찬 한 마디, 다들 기억하시죠? 김유정의 단편집도 봄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펴들기에 좋은 선택입니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소설 <동백꽃> 중에서-
▲ 김유정 생가 지붕 옆으로 핀 꽃
지금 밖에는 점순이가 ‘나'를 넘어뜨렸을 때, 맡았던 ‘알싸한’ 노란 동백꽃 향기로 그득합니다. 봄은 온 세상이 책인 시절입니다. 길가에 핀 잡초 꽃에서도 시를 만날 수 있지요. 돌아오는 주말에는 가볍게 책 들고 봄나들이 어떨까요?
이 중 한 권의 책이라도, 한 구절의 글귀라도 당신의 마음에 작게나마 봄 기운을 불어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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