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4. 12:03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장은미 연구원의 글입니다.
청년에게 눈 돌린 언론들
2015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헬조선’과 일명 ‘금수저·흙수저’로 얘기되는 ‘수저계급론’은 우리 시대 사회적 불평등과 청년세대의 고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신조어로 이슈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청년’을 담론의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마구 불러내기 시작했다.
언론은 ‘청년’을 2015년 연말과 2016년 새해 화두로 제시했다. 시사인은 지난 12월에 ‘헬조선 다시읽기’를 통해 청년담론을 ‘탈조선, ~충, 노오력, 노답’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내고 청년 당사자들의 언어로 ‘헬조선’의 문제를 자기 성찰적으로 분석했다. 한겨레는 20대 청년 21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더불어 행복한 세상-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이란 제목의 연재를 시작했으며, 한국일보는 새해를 맞아 인터랙티브 형식의 디지털 콘텐츠로 ‘한중일 청년 리포트’를 선보였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청년들이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네 분야에 있어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38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경향신문은 ‘청년 미래 인식 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바탕으로 ‘부들부들 청년’이란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에 참여한 참가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사회상을 질문했더니, 놀랍게도 절반가량이 ‘붕괴와 새로운 시작’(46.4%)을 원했으며, 시리즈는 이 인식 조사를 바탕으로 ‘분노하고 고통받는 자의 입’에서 어떤 얘기들이 나오는가를 연재 중이다.
기성세대의 반성
제목과 조사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이러한 논의들은 언론이 새해 화두를 ‘청년’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조심스럽게 청년에게 ‘다시 말 걸기’를 시도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기성세대들의 기존의 ‘청년에게 말 걸기’가 청년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수단화하거나 1‘타자화’시킴으로써, 청년들에게 외면과 저항을 불러일으켰음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언론에서 청년을 지나치게 과소비하는 방식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던짐으로써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청년 문제의 발화자가 누구냐의 문제로, 청년담론의 의제설정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청년담론의 주체가 만약 청년 당사자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말 걸기’가 청년의 입장에서, 청년의 시선으로, 제대로 발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나타난 청년담론은 주로 정부와 기성세대가 청년의 고통과 문제를 진단하는 방식이었다. 이렇다보니 제대로 된 ‘말 걸기’가 되지 않고, 청년을 타자화 시켜 오히려 청년을 분노케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새해 각 언론사가 연재 혹은 기획으로 제시한 ‘청년’에 대한 논의들은 이러한 청년들의 아우성을 제대로 듣기 위한 노력의 시작으로보인다. 시사인,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모두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그 목소리의 다양한 층위들을 기사로 제시하고 있는 지점들은 문제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청년들이 진정 힘들고 아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세대간 갈등론’은 경계해야
둘째, 지금의 ‘청년 문제’를 사회적 논제로 가져 오고 이에 대한 원인과 진단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실체 없는 세대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없었는가를 질문해봐야 한다.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으로 축약되는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불평등과 불합리가 세대 간 갈등이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세대 간 인식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모두들 청년기를 거치고 있고 거쳤지만, 역사적 조건과 삶의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같은 ‘청년’일 수 없으며, 동질의 ‘20대’로 말해질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지금의 청년의 고민은 지금 청년의 눈으로, 현재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바라봐야지 ‘나의 20대’에 견주어 지금의 20대를 비교·평가할 문제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담론의 중심에 선 ‘청년 문제’에 대한 대안 찾기가 구체적인 청년 문제와 함께 제시되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시사인을 비롯한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는 당사자인 청년들의 문제를 ‘뜬구름 잡듯 언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주거 문제(민달팽이유니온)나 노동(알바노조), 저임금, 빈곤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모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선거철을 맞이하여 정치적 수단으로 ‘급관심’의 대상으로 자신들을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어려움의 구체적인 지점들을 공감하며 함께 고민을 나누기를 원했다.
청년에게 제대로 말 걸기
이미 청년들은 정답이 없는 현실을 알고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탈조선’을 시도하고자 하는 그 조건을 이해하고, ‘거짓 희망’을 끊임없이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더디 가더라도 현실의 작은 것이라도 변화의 가능성을 시도하는 경험들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청년을 불러내고 소비하는 사람이 늘지만 청년의 삶은 나빠졌고 반복된 청년팔이에 청년들은 지쳤다’는 대목은 우리 모두 눈여겨보고 성찰해 봐야 할 지점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말하고 싶지만 고통이나 어려움을 말하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귀 기울여주는 것이지, 함부로 그 목소리의 대변자인 양 자처하고 나서서 그들을 입 닫게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헬조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더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더욱더 지금의 청년들에게 절실한 것은 제대로 된 ‘말 걸기’이다. ‘온정’도 ‘동정’도 ‘질책’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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