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보도, 참언론에 성역은 없다

2016.04.11 11:31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JTBC 탐사기획국장


[보도 개요]
1. 제목: 가톨릭의 아동 성추행 은폐
2. 매체(나라): 보스턴글로브(미국)
3. 취재: 월터 로빈슨 등 4명
4. 최초 보도일: 2002년 1월 5일
5. 수상: 2003년도 퓰리처상 대상(http://www.pulitzer. org/winners/6974)

“사제 성추행이라는 은폐된 진실을 꿰뚫는 취재를 보여줬다. 용기 있고 포괄적인 보도로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 영향을 줬다. 그리고 로마가톨릭 교회의 변화를 가져왔다.” 2003년 4월, 미국 퓰리처상 이사회는 찬사를 보내며 대상을 수여했다. 


탐사보도에는 여러 애칭이 있다. 워치독(감시견), 머크레이커(추문추적자) 등이 그것이다. ‘스포트라이트’도 그 반열에 오를 만큼 탐사보도의 대명사로 통한다. 필자가 진행자와 제작 책임자로 있는 JTBC 탐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도 여기에서 가져왔다.



#워터게이트 이후 최고의 보도


‘거악[각주:1]이 은폐하거나 대중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용을 끈질기고 독자적으로 파헤쳐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탐사보도는 대충 이렇게 정의된다. 2002년 스포트라이트의 보도는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이 보도가 나왔을 때 일각에서는 “워터게이트 이후 최고의 보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탐사보도의 정의에 맞춰 보도 내용을 분석해보자. 



첫째, 보도가 ‘거악이 은폐하거나 대중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용’을 탐사했느냐

취재는 2001년 보스턴글로브의 신임 편집국장으로 마틴 배런이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보스턴이 근거지가 아니었던 그에게 ‘이상한 사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한 유명 신부가 아이들을 오랫동안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보스턴에서는 이 사건을 ‘단신 스트레이트’ 정도밖에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한 소아성애자의 돌출 행동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추악한 행위가 수십 년간 자행될 
수 있었을까?” 마틴 배런은 이런 의문을 품고 스포트라이트에 밀착 취재를 지시한다. 신임 국장의 지시에 따라 팀장(에디터)인 월터 로빈슨을 포함해 4명이 탐사를 시작한다. 탐사 대상은 보스턴 가톨릭 대교구였다. 미국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인 보스턴에서 가톨릭 대교구는 대통령보다 탐사하기 힘든 존재였다. 취재가 거듭되면서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보스턴 지역의 절대적인 존재가 성추행 은폐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해낸 것이다.


당시 보스턴 대교구는 이 스캔들을 “한 신부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규정하고 “이미 강력한 재발 방지책을 세워놓았다”고 주장했다. 대중은 이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들의 해명과 달랐다. 이 신부 말고도 수십 명의 사제가 아동을 성추행해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다. 문제의 신부가 성추행을 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대교구는 관할교구를 옮겨주며 추악한 범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둘째, 보도가 ‘끈질기고 독자적인 취재의 산물’이었느냐

보스턴 가톨릭 대교구는 여러 경로를 통해 스포트라이트의 취재를 방해한다. 당연히 관련 자료와 핵심 인물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는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듯, 희미한 단서를 모아 총체적인 진실을 구성해 나간다. 피해 아동과 그 가족, 변호인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다. 최종적으로 가톨릭 내부의 핵심 관계자, ‘디프 스로트[각주:2]에게서 결정적인 증언을 이끌어낸다. 첫 보도인 2002년 1월 5일부터 그해 말까지 수백 건의 기사를 내보낸다. 체계적이고 끈질긴, 독자적인 취재가 아니었다면 진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 보도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었느냐’

보스턴 대교구의 추기경인 버나드 로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다. 2003년 보스턴 대교구는 피해자들에게 8,500만 달러를 배상하는 데 합의한다. 보도의 영향력은 보스턴 지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대교구에서도 사제들이 아동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미국 10여 개의 대교구에서 성추행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주연 배우들이 자신들이 연기한

진짜 스포트라이트 팀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출처: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영화로 탄생한 '스포트라이트'


보도는 미국을 넘어 로마 교황청과 유럽, 러시아 등지로 퍼져 나간다. 2002년 보도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사제들의 성추행 보도가 여전히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2015년 이탈리아 제노바의 한 교구에서는 사제들이 누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유부녀에게 접근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2015년 로마 교황청은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주교들을 조사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첫 보도 이후 13년 만에 스포트라이트의 활약상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영화 평론가 사이에서 “올해의 가장 주목받을 영화”로 꼽혔고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마이클 키튼이 탐사보도 팀장인 월터 로빈슨 역할을 맡았다. 명품 탐사보도의 탄생 과정을 저널리즘 측면에서 음미해보면 어떨까.





[참고 자료]

  •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3월호, p.97



  1. 거악(巨惡) : 크게 행해지는 범죄. [본문으로]
  2. 디프 스토르(deep throat) : 익명의 내부 고발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