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준이 말하는 ‘읽기’란?

2011. 9. 21. 13:02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전국적인 답사 신드롬을 일으켰던 인문학 대표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신 분들 많으시죠? 우리가 몰랐던 문화유산의 숨은 재미와 감동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책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얼마 전 인기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재치있는 입담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는 올해 더 큰 감동을 담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6권을 새로 펴냈습니다. 미술평론가로서 ‘문화재청장’도 역임했던 그는 우리나라 미술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애정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를 만나 우리나라 문화유산과 인문학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얼마 전 출연하신 ‘무릎팍도사’의 반응이 아직까지도 뜨겁습니다. 아마 안철수 원장 이후 최대의 센세이션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학자로서 쉽지 않으셨을텐데 출연을 결심하신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섭외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저도 거절을 했어요. 방송사 측에서는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저명인사들을 섭외하는 중이었는데 제가 책도 많이 내고 그러니 출연 요청을 하더라구요. 하지만 교수 입장으로 연예 프로그램에 나가면 우리나라의 통상적인 관념으로는 학자가 품위 없다는 소리를 듣기 쉬워서 타의든 자의든 그런 시선들 때문에 거절을 했었죠.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쨌든 제 책을 읽은 독자가 적지도 않고, 그 프로그램을 보니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어차피 제가 대중에게 노출돼 있으니 저의 얘기를 정확히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이전에 청장으로 일할 때 언론에서 일방적으로만 저에 대한 비판만 해온 것도 있고 해서, 그런 점에 대해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에 방송국에 가서 이야기해보니 예상과 다르게 강호동씨가 질문하는 것이 무언가를 꼬집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잘 아는 문화재 이야기를 하니 아주 경청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1인 토크쇼 같은 분위기가 돼서 만족했고요. 제가 권위적인 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덕분에 즐거운 추억이 됐습니다. 


아직까지 문화재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친숙하다기 ‘잘 보존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외의 대상이 되는 느낌입니다. 반면 유럽의 경우를 보면 문화재란 ‘일상에 스며들어야 할 것’이라는 상충되는 시각이 존재하는데요. 이런 점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지금은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나름의 노력도 많이 하고 있어요. 사람의 손이 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유럽의 경우처럼 문화재가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사람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은 접근을 금지하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옥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람이 살아야 보존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보존이 안돼요. 예전에는 한옥을 그저 보존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인식했지만 지금은 많이 바뀐 것 같아서 그런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실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방송에서 한번 말씀하셨지만, ‘경복궁 만찬’과 같은, 당시로 보면 파격적인 모습도 보이곤 하셨는데요.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 몇 가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북악산 개방과 같은 경우가 있겠네요. 서울에 북악산이 있음으로 해서 천연 공원이 있는 건데 우리나라에 공원이 없다고 하는 것이 그 이전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었어요. 이전에 서울시에서 6%뿐인 서울시 녹지율을 10%로 올린다는 공약을 했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저에게도 서울시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가 농담식으로 “서울이 왜 녹지가 6%뿐이냐”고 반박했었어요. 북한산이 있고 관악산이 있고 서울에만 해도 이름있는 산이 많이 있는데 말이 되냐는 소리였죠.

사실 서울의 녹지율은 ‘26%’에요. 캐나다 벤쿠버 다음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녹지를 계산할 때 특정 공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녹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남산만 보더라도 만약 뉴욕에 남산과 같은 곳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도시에 그런 산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서울시는 도시와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도시입니다. 

하지만 자연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는거죠. 이전에 북악산을 막았을 때 그것이 휴전선 근처에 있고 개방이 안됐기에 사람들이 인식을 못했던 거예요. 제가 청장에 취임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북악산을 개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모두 자기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조롭게 개방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안타까웠죠.

그리고 청와대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개방을 할 수도 없어서 제가 “그럼 서울 성곽을 개방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었죠. 우선 성곽이 개방되면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와 자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다행스럽게도 서울 성곽이 개방된 거예요. 

그렇게 서울 성곽과 북악산이 개방이 되면서 서울 시민들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것을 좀 더 가까운 존재로 바꿨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온 • 오프라인 통한 융통성 있는 정보이용이 중요


교수님의 전공이신 미술사학은 인문학의 정점을 찍고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오늘날 인문학이 처한 상황은 암울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인문학을 선택했던 당시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현재 인문학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에는 사실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았어요. 인문학이 멸시당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이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없었죠. 이렇게 위기가 올 줄 몰랐던 거예요. 

40년 정도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갑자기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위기였기에 이제서야 그 문제가 수면 위에 드러난 거죠.

앞으로 40년 후에는 더할지도 몰라요. 왜냐면 지금 젊은이들의 관심과 취향이 의과대 법과대, 그 쪽으로 쏠리고 있잖아요. 제가 한창 공부하던 당시에는 그래도 공과대학과 상과대학에 관심이 많았죠. 

그 사람들이 사실 지금 같은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역군이 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법대와 의대는 생산이 아니고 복지를 위한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정신적인 가치가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지금보다 앞으로 40년 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사회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부모세대, 학교, 사회,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본인도 잘못입니다. 결국 모두가 잘못이지만, 저는 그 점에 있어서 사실 본인의 문제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결국 자기의 길을 찾고 꿈을 찾는 것은 자기 자신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요즘 세대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9월 한달 동안 이어지는 <리더스 콘서트>의 마지막 강연을 맡아주셨는데요. 젊은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인 만큼 이 시대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 조금만 말씀해 주신다면요?


콘서트의 취지 자체가 ‘책을 읽고 신문을 읽자’, ‘온라인 시대이지만 오프라인을 버리지 말자’가 주제인데요. 그렇다고 온라인은 좋지 않고 오프라인이 좋다는 것은 아니죠. 온라인은 온라인 대로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죠. 각각의 편의를 누려야 해요. 


신문을 두고 얘기하면 온라인으로 보는 신문은 그 기사에 대한 변별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거죠. 모두 똑같은 크기의 기사들입니다. 어떤 기사가 중요한 기사인지 쉽게 알 수 없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본 기사가 중요한 기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요.

하지만 종이신문을 펼치면 편집이나 사진, 제목에 의해 기사의 중요도가 걸러지게 되죠.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나보다 더 전문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분류가 된 거예요. 물론 거기에도 신문사의 시각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걸러내면 되는 거예요.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어느 것이 중요한지 알고 그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청춘들이 되라고 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자기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 강연의 주제를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정의해 주셨는데요. 말씀하신대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발달한 이 시대에도 도대체 왜 읽어야 할까요? 정말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의 읽기문화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전에는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거나 메일을 보내는 것들 모두 지금은 쉽게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글을 쓸 때면 항상 제 전용 원고지와 만년필이 아니면 절대 쓰지 못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직접 제작해 사용했던 600자 유홍준 원고지>


유홍준 원고지라고 제가 직접 600자 원고지를 만들어 거기에만 썼죠. 원고지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지금은 컴퓨터로 쓰고 있지만 원고지가 익숙할 때만 해도 적응이 안됐었죠. 

이처럼 시대는 변해가고 있어요. 이전에 쓰던 매체들, 특히 종이매체는 점점 밀려나고 모든 것이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고 있죠. 이런 시대 속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종이로 된 것을 읽어야 하나’입니다. 

생활 습성이 우리를 자극도 하지만 방해도 해요. 텔레비전이 나오기 전 라디오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사고가 더 깊었다고 합니다. 상상력도 풍부해질 수 있었고요.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모자란 부분을 생각으로 보완을 했으니까요.

옛날 매체들이 갖고 있던 장점은 잊혀지고, 새로운 매체가 주는 편리함만 받아들이다 보면 결국은 본인에게 또는 사회에 손해가 되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깊이 있는 정보를 받아들이라고 책을 읽으라고, 신문을 읽으라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닙니다. 왜 그런 매체가 사라지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지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많이 보여주고 증명해야 해요.

제 주변의 이야기 하나를 예로 들자면 아시는 분들은 잘 알고 있는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답사를 다니면서 연구 논문을 쓰곤 했었는데 당시 개성에 살면서 미륵사까지 가려면 하루종일 걸렸죠. 그 불편한 시절에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다니고 글을 많이 썼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 비결은 우리와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는 미륵사에 가면 거기서 잘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자는 동안에 미륵사와 대화를 했습니다. 지금과는 집중하는 방법이 달랐던 거죠. 교통이 불편하고 정보가 적던 시절에 오히려 더 깊은 정보를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현대사회에서의 문제는 어떤 목표물을 말하면 그것만 얘기하고 그 과정은 무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답사기 책에서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답사를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담았던 부분이라더군요. 

디지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디지털로 이용해야 하는 것은 디지털로, 아날로그로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날로그로 해야 하죠. 시대에 적응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에 맞춰 융통성 있게 정보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가 편리하다고 지금까지 써오던 것들을 버리면 안되겠죠. 특히 책이나 신문 같은 기존 매체는 지금의 정보 사회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깊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인문학의 중요성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문학을 어렵고, 단지 교양을 쌓기 위한 학문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면서 사색의 기회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인데요. 

그래서 많은 명사들이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생각으로 보완하니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는 유 교수의 말처럼 요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시각적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매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읽기. 그 읽기가 왜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지 이번 유홍준 교수의 <리더스 콘서트>강연을 통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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