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말하는 과학자’ 최재천 교수의 통섭형 인재란?

2011. 9. 15. 08:59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애플 CEO로 전세계적 유명인사인 ‘스티브 잡스’는 IT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이곳에 인문학을 담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인터넷 세상 속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고, 전자기기들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요즘 인문학이란 시대에 뒤쳐지는 학문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많은 명사들은 다시 한번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문학은 모든 학문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인문학의 매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최재천 교수입니다.

그는 인문학이란 어느 분야에서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인문학을 통한 ‘통섭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들도 인문학이 왜 꼭 필요한 학문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는데요. 정확하게 에코과학이라는 것은 어떤 학문인가요?




에코과학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신조어에요. ‘생명과학부’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어서 ‘생태과학부’라고 지어볼까 했는데 우리 주변에서 너무 생태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뭐 아파트를 지을 때도 생태라는 말이 나오고.

그 말을 쓰는 분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쓴다기 보다는 그게 유행이 되어서 막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칫 생태과학부라고 하면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아서 에코과학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생태’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생태를 생각했는데요. 이 말은 자연이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해요. 동물이나 식물들도 잘 살아야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잘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태계에는 자연뿐만 아니라 기계문명도 다 들어있기 때문에 굉장히 종합적이고 통섭적인 접근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에코과학이란 전통적인 생물학에서 정치, 경제, 법학 등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최근 발간한 저서 <과학자의 서재>에서는 “과학자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과 조각가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인문학적 감성을 가지라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우리가 자꾸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분리해서 이야기하는데요. 물론 접근 방법이 굉장히 다른 학문임에는 틀림없지만 따로 다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사실 자연과학은 인문학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은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순수학문이니까요. 하지만 어느새 자연과학은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만 하는 학문인 것처럼 됐죠. 그러는 동안 우리사회에서는 과학과 기술이라고 말하던 것이 갑자기 '과학기술'이라는 말로 바뀌었어요.

그러다 보니 과학은 기술의 형용사가 되어버렸죠. ‘과학을 하려면 기술을 해야 한다더라’라는 인식이 생기게 됐어요. 이상한 역사를 거치며 학문의 성격이 변해버린 거예요. 자연과학은 인문학과 함께하면서 삶의 본질, 자연 현상의 본질을 찾는 연구가 필요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자연과학자가 갖고 있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시인이나 문인, 조각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것이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데 그러지 못해서 참 안타깝네요.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일찍 중퇴했지만 청강을 통해 많은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 본인의 전공과 거리가 먼 타이포그래피나 인문고전 수업들이 인상에 남았고, 이런 경험들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형 인재’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요즘 기업인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기는데요. 강의를 할 때면 저는 그런 말을 합니다. “우리 기업도 다 잘 만들고, 참 잘하는데 왜 꼭 ‘스티브 잡스’가 등장해서 뭔가를 보여주면 전세계가 열광하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야 할까요?” 그런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어 냈을 때 “여기에 인문학을 담았다”는 말을 했어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면서 여러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겠죠.

그리고 만약 그가 개발의 중심에 서서 모든 제품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면 과연 지금의 잡스와 같은 모습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한 발짝 물러나서 약간 비판적인 시선으로 항상 다가갔어요.

‘스티브 잡스’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같은 사람이 제가 생각하는 통섭형 인재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너무 없잖아요.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 이런 말도 합니다. “이 정도 조직에 왔으면 제 눈에 아무리 없어도 대여섯명은 잡스나 카메론 감독 같은 분이 보여야 하는데 딱히 보이지 않네요…”라구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라는 것은 말이 안되죠. 우리 사회와 조직의 곳곳에 이런 인재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불을 못 넘었을 때가 언제부터였을까요? 아마 10년도 넘었겠죠. 우리가 전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민 중 하나이고 머리도 좋은데 왜 2만불을 넘지 못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지금 우리는 그냥 숙제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티브 잡스가 무언가를 만들면 그가 던진 숙제를 우린 그저 따라서 해요. 그렇게 숙제만 해서 그나마 지금의 2만불 시대가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지금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 돌파구는 뭘까요? 이제 우리에게 숙제만 잘하는 인재들로 꽉 찬 현실로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사회의 곳곳에 통섭형 인재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인재들이 없기에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과 사회 분위기, 사회제도가 인재의 출현에 호의적이지 못한 환경이라는 점이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잡스와 같은 인재가 살아가기 힘든 지금의 사회를 빨리 바꿔야 할 필요가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서 우리 사회가 더 업그레이드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항상 따라만 가서는 절대 발전할 수 없는 거잖아요.





어쩌면 교수님이 재직하고 계신 이곳 대학 강단이야말로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통섭형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수님의 수업방식이나 평가방식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너무 미약하네요. 저는 살면서 큰 시험을 실패한 경험들이 있어서 시험이란 정말 지겹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들고요.

대학교수 생활을 하면서 저는 시험으로 평가하질 않았어요. 사실 시험을 안보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많은 거겠죠. 사지선다형으로 문제를 내서 점수를 낸다면 얼마나 확실한 방법이겠어요. 

또 논술식으로 하면 계속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정답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철학으로 오랫동안 고집 하다보니 노하우가 생기더라구요. 한가지로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열가지가 넘는 방법으로 평가를 하는 거예요. 논문뿐만 아니라 평소 태도,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등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점수는 내야 하니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답니다. 정말 잘했는데 상대평가라서 어쩔 수 없이 낮은 점수를 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워낙 복합적으로 평가를 하니 학생들이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그게 점수를 주려고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구요. 학생들과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해보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저만의 방식을 고집했어요. 그렇게 수업을 하니 처음 200명 정도가 수강을 했지만 나중에는 40명 정도만 남더라고요. 어렵고 힘들어서 도망가는 학생들도 많이 있지만 그런 수업방식을 견뎌야 해요. 도전이 필요하죠.

요즘에는 기껏 4년 동안 대학생들이 하는 일이 학점 관리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공부를 해야지, 학점 관리를 한다는 것은 한숨만 나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 이런 말들도 해요.

사람을 뽑을 때 성적표를 심층 분석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미국 대학의 경우 면접을 앞두고 성적표를 볼 때, 미술이나 과학을 공부할 학생을 뽑을 때만 해도 다른 기초 지식에서 얼마나 성과를 갖고 있느냐를 먼저 봅니다. 우리처럼 총점만 보고 평가하지 않아요. 총점으로 기준을 마련한다면 그것은 점수를 얻는 과정과 노력, 그 사람의 가치관을 무시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 대학 성적표를 보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벼락치기로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 대다수이면,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단기적인 성과만 바라보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통섭형 인재’가 되려면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자라나도록 주변 환경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참 열심히 하잖아요. 아이들의 소질을 일찍 개발하려고 많은 것을 하고요.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 좋긴 해요. 문제는 저학년 때는 그렇게 하다가 고학년으로 가면 오로지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점이 우리의 문제이죠.

아이들 교육을 위해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책 읽기 아닐까요? 제 인생을 돌아봐도 결국 책이 저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었을 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책이 저를 이끌었더라구요.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생각이 듭니다.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아들의 경우를 말하고 싶어요. 아들을 키우면서 책 읽는 버릇을 들이게 만들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잘했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제 아들은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만 따라서 하는 아이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상하게 시험은 잘 보더라구요. 시험을 잘 봤다고 저한테 말을 할 때 어떻게 점수가 잘 나왔냐고 물어보면 항상 하는 말이 ‘다 책에 있었다’고 해요.

이런 공부가 최고라는 말은 아니지만 입시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주변에선 부러워해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 아이는 책을 너무 읽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책을 잘 읽냐고 부러워하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집에 책이 없다는 거예요.

부모는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강요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책보다 재미있는 텔레비전이 거실에 떡하니 있고 집에 책이 없는데 책을 왜 읽지 않을까 고민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닐까요?

저는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니 강요를 하지 않아도 제 아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었어요. 책 읽는 가정을 만들어야 책을 읽습니다. 책을 통해 가족끼리 공통된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의도하지 않아도 토론이 돼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 신문도 읽고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도 하게 됐어요. 이런 공부가 정말 필요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내시면서 ‘글 잘 쓰는 과학자’라는 말로도 평가받고 계시죠. 우리는 보통 과학자와 글쓰기 실력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외국의 경우 과학자들은 글을 잘 쓴답니다. 왜 그럴까요? 과학은 어려운 학문인데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쓰려면 당연히 글을 잘 써야겠죠.

과학은 읽는 사람이 전혀 모르는 것을 설명해야 하잖아요. 말이 일단 돼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데 그걸 알아듣게 설명하려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글쓰기 교육을 요즘 강조하는데 우리의 글쓰기 교육 현실을 보면 주로 유명한 소설을 바탕으로 글쓰기 교육을 시키더라고요. 사실 아이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통해 대문호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중에 사회에서 좀 더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고,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거죠. 하다못해 요즘의 트위터만 보더라도 그 140자 안에 함축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줄여서 정확하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에요.

이른바 ‘테크니컬 라이팅’, 기술적인 글쓰기를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문학적인 글쓰기만 가르치는 것 같아요. 깔끔하고 정확하게 쓰는 과학적 글쓰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거기에 흥미로움이 생기면 금상첨화겠죠.

과학자가 정말 좋은 발견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결과가 나와도 아무도 알아줄 수 없죠. 그래서 얼마나 글쓰기가 중요하겠어요.

과학자가 글 잘 쓴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나라 분위기가 그렇게 몰아가는 거죠. 그나마 저의 글이 다른 사람들이 좋게 받아들여서 과학자가 글도 쓴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인식되는 거죠.

사실 그런 인식 때문에 제가 호사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단순히 글을 못쓰는 기준에서만 살짝 넘어섰을 뿐이에요.



최근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발달과 함께 종이신문이나 책과 같은 활자매체와 멀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인스턴트식 정보습득’을 초래하는 단점도 가지고 있는데요.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그래도 활자매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강연 준비를 하다가 제 나름대로 정리한 말이 하나 생겼어요. “이 세상 모든 일의 끝에는 글쓰기가 있더라”라는 말로 저는 강연을 시작합니다. 학자는 논문을 잘 써야하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들은 회사에 들어가면 기안을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잘 써야 해요.

인간은 무엇이든 언어로 표현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언어란 정말 중요하잖아요. 어떤 매체로 바뀌든 결국은 활자가 남습니다.

또한 글쓰기의 다른 형태는 말하기입니다. 말 못하는 리더는 없어요. 일단 말을 잘해야 사람들이 감동받을 수 있잖아요. 말하기도 글쓰기의 연장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해요.

앉아서 잘 정리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말도 잘 할 수 있는거예요. 이렇게 따져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글쓰기 아니겠어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화려한 글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겠다 이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는 기본으로서 글을 잘 쓴다는 것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처음에 말했듯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은 것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어요. 자신이 듣고 읽던 것을 글로 쓰는 것이지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기가 읽고 알게 된 것을 얼마나 깔끔하게 쓰냐의 차이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우리는 인문학적 소양이 뭔지 잘 몰라요. 인문학적 소양은 다양한 책 읽기와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문학의 골격은 다양한 책 읽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또 그것을 자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이 아닐까요? 이 정도는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과학자라니 처음에는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 인문학이란 특정 분야의 사람들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남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닌 남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인문학에서 나온다는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우리도 인문학의 향기가 넘치는 사회가 된다면, 전세계를 이끌 수 있는 인재가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