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기억에 남는 신문기사는?

2012. 4. 18. 10:31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신문이요? 학점 잘 받는데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은데...게다가 트위터가 훨씬 빠르잖아요. 다음날 아침에 신문 배달될 때까지 뭐하러 기다려요.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도 있는데”

 

공감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요즘 지하철에서도 신문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전철역 입구에서 무료로 배부되는 무가지(無價紙)를 집어드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죠. 스마트폰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신문만이 ‘뉴스(News)’, 새로운 사실을 제공하던 시대가 아니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보는 실시간 인터넷 기사,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습니다. 간편하고 빠른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에겐 더욱 매력적이죠.

 

하지만 여러분, 오늘 읽은 기사들 중에 기억에 깊이 남은 것이 있으신가요? 좋았던 표현이나 문구는요?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신문을 가까이 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쉽게 휘발돼 버립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나 기사를 골라 보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만큼 정보의 편식이 심해진다는 문제가 있죠. ‘보고 싶은 것만 본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요. 또 빠른 전달을 중시하다보니 검증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글들이 ‘사실’로 둔갑해 떠돌기도 합니다.

 

 

'사다리가 사라진다'

 

저는 2010년 7월 조선일보가 ‘사다리가 사라진다’라는 제목으로 총 7회에 걸쳐 보도한 기획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명품’ 기사가 무엇인지, ‘활자매체의 위기’라는 21C에 종이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가능성을 보여준 기사였습니다.

 

 

 

 

▲ 조선일보가 2010년 7월 5일부터 13일까지 7회에 걸쳐 연재한 '사다리가 사라진다' 기획시리즈.

 

 

 

내용은 간단합니다. 계층 상승을 가능하게 해주는 각종 제도들을 ‘사다리’에 빗대 왜 우리사회에서 사다리가 사라지는지, 양극화 심화 현상의 원인을 짚어보고 해결책에 대해 논의한 것인데요.

 

사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해결해야 한다.” 머리로 다 아는 얘기입니다. 다만 늘 방치돼있고 곪아 있는 부분이죠.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서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조선일보는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주택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40대 중반(45세 미만)까지 ‘내집에 사는’ 사람은 점차 줄고(1985년 60.4%→2005년 53.8%), ‘셋집 사는’ 사람은 늘었다(전세 20.1%→25%, 월세 16.2%→18.2%)」

「사다리 타보지도 못한 2030…졸업 후 2년 지나서 비정규직을 포함한 1년 계약 이상의 ‘최소한의 일자리’를 구한 경우 64%, 졸업 후 4년 지난 경우에는 69%에 불과」

「개천에서 용 안 난다…대졸 부모와 고졸 부모, 자녀 수능점수 20점 차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은 통계들이었습니다. 양극화 문제의 핵심을 한 눈에 보여주는 압축적인 제목도 좋았습니다.

 

4명의 기자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은 석달간 국민연급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 고려대 등 20여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각종 기초 통계를 새롭게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단편적 통계를 가공해 새로운 통계를 만든 것입니다.

 

 

신문이 추구하는 진정한 '뉴스(News)', 새로운 것

 

신문은 말 그대로 어젠 없었던 ‘새로운’ 사실을 보도하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아는 ‘현상’(예를들어 ‘양극화’ 문제)을 깊이있게 파고들어 전혀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 보도하기도 하죠. 이런게 신문이 추구하는 진정한 ‘뉴스(News)', 새로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이 시리즈에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중산층이 붕괴된 상황에서 교육과 고용, 주거 등이 한꺼번에 흔들리면서 빈곤이 악순환되는 과정을 생생한 사례를 들어 보여줬습니다.

 

해물탕집 주방장으로 3남2녀를 키운 박공순(가명‧71) 할머니는 칠십 평생 가장 추웠던 겨울로 둘째 아들(44)이 대학에 합격하던 해를 꼽았다. 등록금 마감날 할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포기하라’고 했다. 도저히 학비를 댈 엄두가 안 났다. “아들이 나 보는 데서 대학 합격증을 짝짝 찢어버립디다. 콧물이 얼어붙게 추운 날인디, 속에 불이 나는가 옷도 안 챙겨입고 휙 뛰쳐나가데요.” 아들은 지금 부천에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두 아이를 키운다. 직업 군인으로 7년간 복무한 뒤 퇴직금으로 중국집을 차렸다가 외환위기 때 망한 탓이다.

 

이 부분을 읽는 단 5초만에 3대에 걸친 가난의 대물림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마음 속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죠. 어렵고 복잡한 학자들의 말보다 때로는 이렇게 신문에 나오는 짧은 사례들이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4명의 기자들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은 열심히 땀 흘리고 발품을 팔았다지요.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여성재단 등과 협력해 우리 사회의 약자 2만8000여명의 삶을 실태조사한 결과, 양극화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달에 1만5000원 하는 신문 구독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상-원인-해결책으로 전개되는 기사의 완결성 덕분에 마치 한 권의 전문서적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선일보는 2010년 7월 보도된 ‘사다리가 사라진다’ 시리즈의 후속편으로 같은해 10월 ‘사다리를 세우자’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총 9차례 연속으로 보도했습니다. 그 무렵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인기를 얻고, ‘무상급식’ 공약 등을 둘러싼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논란 등이 같이 맞물리며 이 ‘사다리’ 시리즈는 생각할거리들을 많이 던져주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더 종이신문은 진가를 발휘할 것

 

신문은 우리가 무엇을, 어떤 부분을 더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는지를 짚어줍니다. 때문에 하루에 30분만 신문읽는 데에 투자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족집게’ 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깊이있는 분석기사, 30~4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들이 쓰는 칼럼과 사설은 한 권의 책과 맞먹는 감동을 선물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이신문이 가진 콘텐츠와 편집의 힘이며 불확실한 정보가 넘쳐날 수록 신문은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

 

대입 논술을 준비하며 신문을 열심히 봤던 학생들도 대학에 입학하면 신문을 읽지 않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학점 따기에 매달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꾸준히 신문을 읽는 것이야말로 평생의 자산이 될 지식과 교양,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