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잠만 자던 아이가 공부에 관심 갖게 된 이유

2011. 9. 22. 09:18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민재는 공부를 놓은 지 6년이 넘었습니다. 부모님이 장사를 하다 보니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한 번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는 아무리 비싼 과외 선생님을 붙여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과외비로 집 한 채는 날렸다'고 할 정도로 많은 과외도 받았습니다. 민재는 중학교 3년을 내리 잤습니다. 점심시간에 누군가 깨워주지 않으면 밥을 굶을 정도로 학교에 가면 잠이 잘 온다고 했습니다. 밤늦도록 게임하느라 늘 지쳐 있으니 어련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특별히 지능이 낮거나 둔한 아이는 아닙니다. 네 살 때 천자문을 외울 정도여서 사람들이 천재라고 했던 아이였습니다. 

민재는 기초가 많이 부실했습니다. 어휘력은 물론 이해력이 바닥이었지요. 최근에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언제 책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고 했습니다. 

민재에게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책부터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수준을 높였습니다. 방학이었고 학원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1주일에 나흘씩 저와 만났고 한 달에 적어도 스무 권이 넘는 책들을 읽었습니다. 

두 달쯤 지나자 민재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공부는 아예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아하던 아이가 다시 과외 선생님을 붙여달라고 자청했습니다.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무조건적으로 외우고 머릿속에 강압적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교육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늘 회의를 품던 엄마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아이 모두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으로 내돌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작은 아이는 자신의 특기인 피아노를 제외하고는 아무 학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많이 놀게 했고 많은 체험을 시켰으며 책 읽기에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아기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았던 큰아이에게는 정말 많은 책들을 읽어주었고 몇 권인지도 모를 책들을 사줬습니다.

독서력이 왕성한 아이는 한두 권의 책으로는 성에 안 차했습니다. 한꺼번에 열 권 정도의 책을 사다 주면 사흘은 외출을 하지 않고 책만 팠습니다. 열 권의 책을 세 번씩 되풀이해서 읽은 다음 흡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책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18년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 같은 책을 집중해서 세 번씩 읽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자녀교육에 열성을 다하는 엄마들이 보면 방목이나 다름없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두 아이 모두 성적이 곤두박질 친 적이 없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대학에 진학했으니 저의 교육 방법이 크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 신문을 이용한 NIE 교육도 한 몫 거들었지 싶습니다. 벌써 18년 전 일이니 그때만 해도 신문을 활용한 교육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전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들 성적에 대해 민감한 사람도 아니었지요. 

막연하게 그 방법이 좋을 것 같아 날마다 신문을 오려 붙여 놓고 그 아래 자신의 생각을 쓰게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생각이 어찌나 깊은지 깜짝깜짝 놀랄 때가 참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체험하고 터득한 것들은 저의 확신에 힘을 보탰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은 공부방이나 보습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대체로 성적이 잘 나옵니다. 성적이 들쭉날쭉하지도 않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 혼자 공부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해력은 물론이고 어휘력이나 창의력이 쑥쑥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폭 넓은 배경 지식과 지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 사고력 등이 자신의 성적을 지켜 줍니다.

외워서 하는 공부, 배경 지식이 없는 공부는 금방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는 90점대를 넘던 성적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뚝뚝 떨어진다면 바로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엄마들은 자녀들의 성적이 자꾸 하향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그저 자녀들을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지문이나 제시문이 길어집니다. 책을 읽지 않았던 아이들은 제시문은 물론 지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묻는지도 모르는데 답을 제대로 쓸 리 없지요. 어려운 낱말이기 때문일 거라고요? 아닙니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낱말도 뜻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모르는 낱말이 두셋만 나와도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서울시는 앞으로 300자 - 500자의 긴 서술형 문제를 일정 비율 이상 출제하도록 의무화하고, 고교 작문과 같은 과목은 서술형으로만 평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서술형으로 바뀌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이젠 책을 읽지 않고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 속에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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