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차 주부인 엄마가 지식인으로 보이게 된 이유는?
2011. 9. 26. 09:1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엄마에겐 꿈이 있습니다. 그건 아무나 쉽게 외면할 수 있을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었고 누구나 이룰 수 있을 만큼 쉬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공부’이지요. 하지만 공부를 좋아하고, 늘 공부하는 17년차 주부인 엄마는 집에서 설거지를 해야 했고, 빨래도 해야 했으며, 밥도 차려야 했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매일 새벽녘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 한 부는 하루를 열어주는 따스한 햇살 같은 존재입니다. 새벽 공기를 담은 신선한 신문을 가슴에 꼭 안고 자리에 앉으신 엄마는 6시간 동안 신문 속 모든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셨습니다. 빨간 펜, 문구용 칼, 30센티미터 자, 수첩을 가지런히 올려둔 식탁은 엄마의 책상이었으며 우리 가족 지식의 샘물이었지요.
학교에 갔다 오면 책상 위에 놓인 수북한 신문 스크랩 더미를 읽느라 옷을 갈아입는 것도, 가방을 내려놓는 것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과학, 사회, 책 등 제가 관심을 가질 만한 모든 주제들이 작은 회색 종잇조각에 담겨 있었습니다. 엄마의 정성과 그 지식들을 버릴 수가 없어 책상 앞에 붙여 놓는 습관이 생겼어요.
처음엔 책상 앞 텅 빈 벽면을 채우는 수준이었지만 곧 침대, 화장대, 피아노 심지어 화장실 휴지걸이에도 신문이 붙게 되었지요. 지금은 ‘양동안 교수가 보는 좌익•우익 용어의 변천’이 두루마리 휴지와 자리를 함께하고 있네요.
6시간 신문 정독의 위력은 엄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다가 ‘연파광고’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한 아빠와 나, 동생은 다 같이 “연파광고가 뭐야?”하고 TV 속 기자에게 되물었답니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엄마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답이 흘러나왔지요.
“연파광고란 먹을 것, 약, 화장품 같은 걸 선전하는 광고야. 특이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하지.”
그 순간의 기분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요? 집이라는 상자에 갇혀 우리가 입을 속옷을 빨고, 먹을 밥을 짓고, 바닥을 청소해왔던 엄마가 달라보였습니다. 우리들의 엄마이기 전에 한 여자였고, 사회인이었으며, 지식인이었지요.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뭘 놀라고 그래? 신문에서 봤어.”
우리들의 놀란 표정에 머쓱해진 엄마가 중얼거리셨어요. 그때 아빠가 크게 외치십니다.
“자네, 주부 퀴즈왕 나가소!”
“맞아요, 맞아.” 동생과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힘을 줬어요.
엄마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안 돼. 아직 실력이 부족해.”
지금도 엄마는 신문을 읽고 계세요. 줄 긋는 소리, 종이 자르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가 삼박자를 이루어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내네요. 신문을 통해 꿈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주부예요. 모두 우리 엄마를 응원해주세요, 파이팅!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1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동상 고등부 수상작 편정인 님의 ‘엄마에겐 꿈이 있습니다’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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