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이것은?

2011. 10. 18. 09:19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아이가 독후감을 씁니다. 머리를 쥐어 싸고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습니다. 독후감 노트엔 달랑 제목만이 쓰여져 있는 상태였죠. 한참을 연필만 만지작거리던 아이는 결국 잔뜩 볼 맨 말투로 얘기를 합니다. “꼭 독후감을 써야해?”


 


아이의 말에 엄마도 아빠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엄마도 아빠도 독후감 숙제에 대해선 그리 탐탁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초등교육에 빠지지 않는 숙제가 독후감을 써오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느낀 점을 적어가야 하는 숙제.

뭐~ 교육당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많은 교육적 효과가 있겠지요. 설사 없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초등학생, 심지어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주어지는 독후감 숙제에 교육적 효과가 없다면 무지하게 짜증나는 일이니 될 수 있다면 효과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가 숙제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숙제하는 내내 찌푸려지는 얼굴과 한참 동안 노트와 씨름한 끝에 완성된 아이의 독후감은 쓴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어떤 책을 읽은 후라도 아이의 독후감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줄거리 몇 줄과 나도 책의 주인공처럼 어떻게 하겠다라는~ 일률적인 결론. 아이의 독후감을 보며 정말 이런 숙제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부모로서 의심이 들곤 하죠.

저희 집 아이는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독후감 숙제가 없다면 책 읽는 게 더 재미있을 텐데……” 라고요. 저도 아이의 말에 동의합니다. 뭐든 숙제가 있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는 일이니 아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셈입니다. 

학년에 맞는 수많은 책을 선정하고, 선정된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읽은 책에 대해선 독후감을 쓰게 하는 우리의 교육은 왠지 책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그렇게 머리 쥐어짜며 쓴 독후감은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하나 달랑 받고는 읽어주는 사람 없이 어디론가 파묻히게 되니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글들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독후감 쓰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얘기를 길게 얘기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님들께 질문을 드리기 위해서죠. 숙제로 하는 독후감도 억울한 아이들에게 숙제가 아닌 독후감을 꼭 쓰게 하시는 부모님들께서는 왜 독후감을 쓰게 하시는지? 꼭 여쭤보고 싶었거든요.


“왜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쩌면 이 질문은 책을 왜 읽느냐? 는 질문과 동일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부모님들께서는 책을 읽으며 독후감용 줄거리를 요약하며 읽으시는지요? 혹시 부모님들께서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을 단 몇 줄로 요약하며 읽어 내려가시는지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책이 주는 느낌을 받아들이며 읽어 내려가곤 합니다. 그건 줄거리와 상관없이 캐릭터가 주는 느낌, 저자가 표현하는 바람, 저자가 표현하는 색깔, 저자가 표현하는 말투 등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그런 느낌들은 뭐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것들이지만 시간이 지난 후라도 어느 순간 생각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바람이 차가워지면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고요. 퇴근길에 보이는 저녁 노을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기도 하지요. 이런 느낌들은 글로 적기에는 너무 벅찬 것들입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저는 아이들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동화책을 읽으며,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책이 주는 느낌을 받아들이겠지요. 줄거리와 상관없이, 교훈과는 전혀 무관하게 책에 등장하는 강아지, 고양이, 꽃, 나비, 해님, 달님들이 주는 느낌을 받아들이며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느낌은 지금 당장 독후감을 쓸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될 수 많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기대하는 표현력보다는 작은 표현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어른들이 의도하는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는 마음그릇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라면서 스스로 그 그릇의 크기를 키울 겁니다. 굳이 독후감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그릇은 커집니다. 

독후감과 상관없이 책의 느낌은 오롯이 아이의 가슴속에 담길테니 말이죠. 책은 글씨 사이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느낌이라는 비밀스러운 힘으로 아이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 느낌을 자신의 가슴 속에 꼭꼭 담아두죠. 그리곤 언젠가 그 느낌들을 활용할 겁니다. 

책 속에 숨어 있던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책 속에 숨어 있던 배려를 보여주기도 하며, 책 속에 숨어 있는 지혜를 뽐내기도 하겠죠. 때로는 책 속에 숨어 있던 감성과 논리로 자신의 책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굳이 글쓰기 훈련이라는 독후감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죠.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이유는 독후감 노트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을 차곡차곡 저장하기 위함이니까요.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책을 읽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교육이,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교육적 활동들이 가끔은 슬픈 사회를 만드는 토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 

600여년 된 오래된 골목길을 낡고 지저분하다는 이유,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볍게 없애버릴 수 있는 행동들이 보여주기 위한 교육의 산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죠. 낡고 지저분한 골목길 구석구석엔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수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죠. 네, 무엇이라 정의하기도 어려운 수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미 없어져 버린 골목길.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그 수많은 것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아이가 책을 덮습니다.
책을 덮은 후 노트를 펼치곤 고민하는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책을 덮었으면 이제 상상을 해야죠. 용의 날개를 붙잡고 하늘을 나는 상상,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키스를 하는 상상, 해골의 왼쪽 눈을 들여다보는 상상. 

그 모든 것들은 노트에 제목, 저자 등을 기록하며 요약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아이의 가슴속엔 영원히 기록될 겁니다.

독후감은 노트에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쓰는 것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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