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뀐 계기

2011. 10. 10. 09:0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내 안경이 어디 갔지?” 

오늘 아침에도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나신 증조할아버지께서 당신 안경을 찾으시려고 분주히 움직이신다. “또 신문 보시려고요? 눈도 안 좋으시면서 그냥 텔레비전 보시지.” 나의 말에 웃음으로 답하신 할아버지는 끝내 안경을 발견하시고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신다. 텔레비전 뉴스를 틀면 아나운서가 오늘의 사건, 사고들을 요약해서 말해주는데, 굳이 매일 아침 신문을 보시는 할아버지를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께서 다 읽으신 신문을 치우는데, 오피니언 코너에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과도한 저축이 때론 독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는데,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부모님께는 물론 학교에서도 저축을 해야 ‘착한 어린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쓴 사람의 
“경기가 안 좋을 때, 저축을 과도하게 하면 기업들이 생산을 줄이고, 결국에는 많은 실업자가 생겨난다.”라는 주장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글 쓴 사람의 생각과 절충하여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신문하면 커다란 회색 빛깔의 종이 위에 깨알같이 쓰여 있는 글씨 때문에 마치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날 본 내 생애 첫 신문은 나와 같은 초등학생들도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글들을 많이 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또 글을 읽어가면서 자기만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래서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좀 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그 동안의 신문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었다.

그날 이후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텔레비전을 켜는 대신 할아버지를 따라 신문을 읽었다. 처음에는 내가 관심 있는 스포츠와 중간중간 오피니언과 칼럼을 읽었다. 그러다가 “경제면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사회면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하며 하나씩 읽는 범위를 늘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모든 분야의 신문 기사를 두루 읽게 되었다.

언젠가 신문을 읽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정치면을 읽고 나서 경제면 그리고 사회면을 읽다가 정치, 경제, 사회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경제가 위축되면 소비보다는 저축을 하게 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소비를 권장하는 정책을 펼친다.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매일마다 사건 사고들을 분야별로 기사화하여 모은 신문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나 또한 세상을 보는 눈이 전보다 한층 더 넓어진 것 같아 자부심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언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집 대문 앞에는 매일 신문이 놓여있다. 몇몇 사람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한가롭게 신문을 보느냐?”라고 말한다. 그들 말대로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빨리 먹은 밥이 체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주변에 있는 온갖 정보들을 다 소화하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신문을 읽음으로써 얻은 정보들을 자기만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나름대로의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기를 필요가 있다. 할아버지의 안경이 할아버지의 눈이 되었듯이, 신문이 사람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길 바란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1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동상 고등부 수상작 전웅진 님의 ‘신문, 세상을 바라보는 눈’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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