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g의 종이에 담겨 있는 하루의 드라마, 종이신문
2011. 10. 7. 09:2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종이신문은 ‘생각의 과녁’을 찌르는 창
“신문, 신문 어디 있어요?“
아침에 아내가 다급하게 묻는다. 아이 학교 갈 채비를 돕는 중. 아내가 원하는 정보는 ‘날씨’다. 아이 옷차림에 꼭 필요하다. 만약 신문이 없었다면 ‘촌음’을 다투는 아이를 현관에 세워둔 채 우리는 컴퓨터를 켰을 것이며, 부팅 시간을 인내했어야 할 것이다.
결혼하기 전엔 날씨 정보가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아니 옷차림을 위해 신문이 필요하다는 점도 몰랐다. 신문의 중요성이 꼭 그렇다. 활용하는 이에겐 매우 소중하지만, 그렇지 않는 이에겐 그저 폐지나 다름없는 종이 짝일 뿐이다.
신문을 읽지 않는 시대이다. 글쓰기 강의를 하다 수강생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종이신문을 안 본다고 답한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볼 수 있다는 점과 경제적 부담, 의제설정과 논조에 대한 견해차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신문은 그 모든 약점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통 신문의 가장 큰 장점은 지식과 정보 습득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은 인터넷만으로도 대충 알 수 있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뜨는 뉴스를 클릭하면 중요한 이슈를 알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창’이란 규정만으로 신문의 진가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협소하다.
신문은 밥상이다. 이런 화두를 던지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누군가 이미 읊은 명제다. 신문을 정기 구독하는 이들은 이에 공감할 것이다. 밥상의 특징은 매일 꾸준히 내 앞에 온다는 점이다.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찬의 가지 수는 적지만 고루 영양을 취할 수 있다. 완전식단이다. 정갈하고,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다.
반면 인터넷은 ‘뷔페식’이다. 그곳엔 많은 기사가 있다. 인터넷신문도 그렇다. 그러나 많다고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뉴스 선택의 폭이 넓지만 실제론 좁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을지 모르나, 먹을 게 별로 없기도 하다. 다양하지만 거칠다. 한마디로 개인별 맞춤 식단이 아니다. 특히 매일 일정시간 꾸준히, 종합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일은 어렵다. 폭식하면 탈이 나고, 굶으면 영양 결핍이 생긴다.
종이신문이란 밥상은 누군가가 공들인 ‘작품’이다. 반찬이 널려 있는 상황과 상으로 차린 경우는 크게 다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취재 기자는 시장에서 ‘뉴스’라는 찬거리를 봐오는데 그 수가 매우 많다. 예를 들면 사회면이란 밥상엔 5개 안팎의 기사가 실리지만, 후보 물망에 오른 기사는 적어도 열 배는 많다.
신문은 취재에서 편집, 교정까지 당대 고급 인력이 매일 수백 개의 기사를 필터링 하고, 맛깔스럽게 차려내는 작품이다. 그 과정은 예술에 가깝다. 인터넷을 클릭하는 일이 골재나 철강과 같은 ‘재료’를 구하는 행위라면, 종이신문 읽기는 ‘건축물’을 구매하는 행위와 같다. 건축은 단순한 재료의 결합이 아닌, 크고 작은 아이디어와 치밀하고 종합적인 설계의 과정이다. 따라서 집을 구경하는 일과 재료를 보는 일은 엄청난 차이다.
이는 직관과 연결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는 더욱 ‘직관의 시대’다. 책 <제7의 감각>은 섬광처럼 떠오르는 직관이 두 가지 요소가 합해져서 낳는다고 말한다. 그 한 예로 피카소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품으로 알려진 ‘아바뇽의 처녀들‘은 마티스의 그림 ’인생의 행복’과 아프리카 미술품이란 두 요소가 결합되어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요소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숙성된 완성품이어야 한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대학 때 두 개의 낱말카드를 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역시 그 낱말은 완제품이었다. 즉, 나무와 금 같은 재료가 아니라, 라디오와 자동차 같은 제품이었다.
정보의 홍수시대엔 직관력이 중요하다. 배를 몰고 목적지에 가기 위해선 기상, 연료, 거리, 물자, 인력과 같은 변수를 종합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직관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입력한다 해서 생기지 않는다. 정보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분류,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영감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문은 놀랍게도 ‘창(槍)’이다. 무딘 생각의 과녁을 찌른다. 예컨대 제목은 편집자의 땀에 젖은 아이디어다. 레이아웃은 한편의 그림이다. 기획기사는 말 그대로 기획력의 산물이다. 칼럼은 종합적 사고능력을 길러준다. 어디 기사 부분만 그런가. 하단에 나오는 광고는 창의력의 산 교과서다.
반면에 인터넷으로는 편집된 제목과 지면을 볼 수 없고, 어떤 뉴스가 기획기사인지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신문광고를 보기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인터넷 신문과 종이신문에서 얻는 정보의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다.
매일 아침 날씨 정보를 전해주며 하루를 시작한 신문은 가끔 다 먹은 자장면 덮개가 되어 장렬히 최후를 마친다. 그 일상을 떠올리다 보면 또 하나의 영감을 얻는다.
‘신문은 한 편의 드라마다. 비극이 있고 희극이 있다. 갈등과 화해가 있고, 꿈과 액션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책과 영화, 연극이 있다. 황혼에 지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늘 새로운 얼굴이 떠오른다. 약 200g 정도의 종이 지면에 우리 인생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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