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6. 17:30ㆍ수업 현장
지난 호에 이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해 9월 주최한 전국 초‧중‧고‧대학생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체험 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글의 주인공은 대학부 금상 수상자 이호준 학생이다. |
이호준(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자물리학과)
내가 처음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은 것은 초등학생 때, ‘사설읽기’ 활동을 통해서였다. 이 활동은 조례시간을 활용해서 한자쓰기, 영어교육과 함께 진행됐는데 별도의 교사 지도는 없었다. 때문에, 당시 내가 한 사설읽기는 미디어교육이라기보다 단순히 글 읽기, 어휘 파악하기, 시사 상식 쌓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13 충청남도교육청 사설읽기 워크북
언론의 정파성, 미디어교육 실행 어렵게 만들어
현재 한국의 언론은 매우 강한 정파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사설은 그 정파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다. 따라서 지금껏 책에 쓰인 내용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교재가 보여주는 언론사의 의제에 동조하게 된다. 언론에 대한 비판적 수용은 교사의 교육이 필수로 동반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실행이 쉽지 않다고 항변하는 교사들의 말 역시 이해가 간다. 교사가 언론사의 사설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은연 중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판적 사고를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난 후에는 ‘학급신문 만들기’와 ‘신문 스크랩’이 사설읽기와 같이 구색이라도 갖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전부였다. 한번은 사회 과목 시간에 미디어 리터러시 활동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분석하는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 수업을 진행한 교사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았고, 수업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김낭기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은 『신문과 방송』 8월 호에서 “미디어교육을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디어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무엇인지부터 사회적 공감대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현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열악한 환경과 사회적 공감의 부재 속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신문사는 독일과 달리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에서 기사편집을 하지 않는다. 또한, 핀란드처럼 미디어교육을 하는 교육자들 간 네트워크가 잘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곳 역시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민주언론시민연합’과 같이 일부 언론 관련 기관 및 단체에 그친다.
사유의 과정을 통해 언론관 정립하기
나는 대학에 입학한 후, 대학언론협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설립된 외대언론협동조합의 독립 언론 ‘외대알리’에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외대언론협동조합의 강유나 전 이사장은 신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파성과 관계없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했다. 특히 신문 스크랩 후 역제안서를 작성하는 활동은 기사의 핵심을 파악하는 동시에 기사에서 부족한 것, 논리적인 구성에 어긋나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었다. 기자를 꿈꾸지 않는 학생이라도 이 과정을 통해 논리적 오류를 발견하고 추가 취재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은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고등학생에게 시행하기에는 적절할 것이다.
필자가 활동한 '외대알리'의 과제 보고서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다음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교육 역시 외대언론협동조합에서 받은 교육의 일환이다. ‘나는 학생 기자다.’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언론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내가 생각하는 외대알리가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할 목표는?’, ‘기자는 ○○다.’, ‘나는 ○○한 우리학교 언론인이 되고 싶다.’ 등 다양한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외대알리가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할 목표는?’이라는 질문은 학내 독립 언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론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겪었다면 언론의 자유와 공정한 방송을 위해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이 질문에 언론의 최종 목표는 광고가 아니라 시민의 알 권리여야 한다고 답했다. 언론사에게 금전적인 부분도 물론 중요하지만, 금전적인 이유로 보도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가 궁극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정직하지 못한 언론은 살아남지 못하고 진정으로 뜻이 있는 언론에 후원이나 기부를 하는 등 생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건강한 언론사회지형을 형성해야 한다.
‘기자는 ○○다.’라는 질문은 자신의 언론관과 언론윤리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나는 ‘기자는 삐딱한 전문시민이다.’라고 답했다. 기자란 일상에 바쁜 시민들을 대신하여 사회를 삐딱하게 봐주는 ‘전문시민’이라고 생각했다. 시민이라는 단어는 모두를 평등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때문에 오직 시민만 생각하는 언론은 불편부당하다. 비록 현실 속 언론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학생사회에서 이러한 것을 지켜나가야 우리 세대가 기성 언론의 데스크에 앉았을 때, 남들에게 창피한 보도는 하지 않게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어떤 교육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해보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계획을 세워 실제로 취재해보면 기사에서 어떤 부분이 빠졌는지, 어떤 부분을 왜곡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학급 신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안 된다. 예를 들어, 초‧중학생은 간단한 학교주변 우범지역 취재를, 고등학생은 학교의 흡연 실태, 대입 관련 학교의 부조리함을 취재할 수 있어야한다.
학생 사회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기성세대의 뒷받침도 철저히 보장되어야한다. 언론계는 정파성을 넘어 학생들의 교육에 힘써야 한다. 정부 역시 이러한 언론계의 노력에 금전적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 수업 시수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필수로 포함해야 하며, 미디어교육 담당 교사를 확충해야 한다.
미디어교육에 힘을 아끼지 말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더 나은 언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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