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된 신문기사 제목
2011. 10. 17. 09:0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고독사(孤獨死)”
그 뜻은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는 굉장히 생소한 단어였다. 고독사 문제는 신문이나 방송 매체에서 가끔씩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이슈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접하기 힘들어 나와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고 여겼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어떤 기사 한 꼭지를 발견하기 전까지.
작년 가을쯤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넘기는데 노인 고독사 문제에 대한 특집 기사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일본과 국내 고독사 사례를 사고 수습 인력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서술한 기사였다.
‘독거노인 지원책이 부족하다.’, ‘지역사회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와 같은 무의미한 외침들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했다. 고독사 현장에서 노인의 주검이 백골 상태가 되기까지 살아생전 관심의 손길을 받지 못했고, 거동이 불편해 온갖 쓰레기와 그릇이 가득했으며, 특유의 역한 냄새는 며칠이 지나도록 가시질 않았다고 한다. 이 특집 기사가 내게 남긴 인상은 너무도 강해 급기야 도봉노인종합복지관에 자원봉사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모금행사를 하고, 그 돈으로 생필품을 구입해서 한 독거노인 할머니를 찾았다. 그런데 신문에서 본 사고 현장과 그 분의 주거 환경이 너무나 비슷해 마음이 아팠다. 쌓인 설거지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나서야 마음의 짐을 덜은 듯했다. 하루 종일 라디오 듣는 일만으로 무료함을 달래셨던 할머니는 그저 사람들과 함께한 그 시간을 진심으로 행복해하셨다.
무심코 보았던 좋은 기사 한 꼭지 덕분에 인식을 바꾸고, 훈훈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신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의 저자 새뮤얼 프리드먼의 ‘도덕적 저널리스트로 남아 있으려면 인간으로서 따뜻한 가슴을 유지하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신문은 다수 사람들의 눈을 틔워주고, 소외된 사람들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등대’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신문은 세상 이야기를 그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신문은 하루하루의 역사 기록을 넘어 사회를 움직이는 심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흔히 지나치는 세상 속 문제들도 신문의 손을 거치면 이슈가 되고 여론이 되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데 신문만한 매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침마다 넓은 지면 위에서 글자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신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신문 한 장 넘길 때의 그 기대감, 나를 변화시키는 작지만 큰 깨달음은 디지털 언론의 홍수 속에서 종이 신문만이 줄 수 있는 묘한 설렘 혹은 매력이랄까. 금세 흘러가버리는 방송 뉴스에도, 언제나 볼 수 있는 인터넷 기사에도 없는 그런 매력 말이다.
신문이 있기에 살맛이 난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1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동상 고등부 수상작 조영훈 님의 ‘활자에 깃든 작지만 커다란 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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