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자기 방식대로 이용한 어느 사이비 교주 이야기

2011. 10. 14. 09:12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능동적 VS 완고한 수용자-박범신의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현대 사회에서 사람은 직접적인 접촉과 경험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너무 넓고 사건과 사물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디어라는 매개적 기제를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그런데 사람들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의 내용물,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이용, 소비에 있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그대로 믿기도 하거나 일부 내용을 선택해 소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며 선택해서 소비하기도 하고, 아예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도 하죠. 물론 뉴스의 소비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미디어에 따라, 미디어의 뉴스 형식과 내용, 주제에 따라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앞에서 설명했지만, 소설가 박범신씨의 39번째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문예중앙 펴냄)에서 소설 주인공 ‘나’는 위기를 느끼거나 분노에 빠질 때, 또는 감정이 격해질 때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서 말굽이 돋아나 살인을 저지르는, 그럼에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거듭하다가 신흥종교 명안진종 교주이자 원룸빌딩 ‘샹그리라’ 이사장의 ‘영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기억을 회복한 뒤 이사장의 폭력적인 과거와 현실의 부조리, 그리고 눈먼 안마사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소녀 ‘여린’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사장과 맞서게 된다는 게 커다란 줄거리인데요.

그런데 소설에서 거악으로 나오는 명안진종의 교주이자 원룸빌딩 샹그리라의 이사장이 보여주는 뉴스의 이용, 소비의 모습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의 종교 논리와 부합하는 의학기사를 선택적으로 인용,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죠.

언론이나 일부 사이비의사들이 치료성과를 과도하게 부풀렸다고 말하면서, 그 점을 지적한 권위 있는 의사들의 보고서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이사장이 복사해 나누어준 어떤 텍스트는 유력한 중앙일간지의 의학전문기자이자 의학박사가 쓴 글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언론에 등장했던 암 치료 특종기사 가운데 지금까지 처음 보도된 대로 효능이 입증된 치료는 얼마나 될까요. 안타깝지만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필자를 포함한 기자들에겐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자도 문제지만 자신의 연구결과를 과대 포장해 언론에 흘리는 일부 연구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암의 정복이라는 말은 과장된 보고에 따른 허상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사장이 인용한 기사는 이랬다. 저명한 중앙일간지의 전문기자가 쓴 해설기사였다. 현대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물질로 간주하는 ‘물질론적 관점’으로 세워진 ‘바벨탑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게 이사장의 주장이었다. 이사장은 그러면서 인체는 정신과 결합된 자율적이고 유기적인 특별한 체계라는 사실을 강력히 환기시킨 다음 ‘의학 기술’이 치료의 잔재주를 키워온 건 사실이지만, 현대의학의 ‘물질론적 관점’이야말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범신, 2011, 286~287쪽)



즉 이사장은 암의 치료 성과가 부풀려졌다는 미디어 속의 기사를 기존 의학적인 방식의 암치료 대신, 자신의 교리에 따른 자연적 치료 방법의 대안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죠. 미디어 뉴스 이용, 소비에 있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언론학에서는 수용자, 이용자에 대한 연구는 적지 않게 이뤄져 왔습니다. 초기에는 미디어의 영향력, 중요성 등이 강조되면서 수용자나 이용자는 상대적으로 피동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 이해돼 왔습니다. 실제 미디어와 콘텐츠는 분명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의 순기능 역기능 논의는 바로 미디어 이용자, 수용자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을 근저에 담고 있는 논의이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한 [세계일보] 칼럼(안경업, 2007.3.17)입니다. 


 


또 실제로 아직도 현실에서는 범인들이 신문 기사 등을 보고 범죄를 구상했다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자주 볼 수 있기도 하지요.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10일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모방한 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한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로 김모(39)씨 등 운영자 5명을 구속하고 프로그램 개발자 등 2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이 운영하는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상습 도박을 한 혐의로 이모(34ㆍ무직)씨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 운영자들은 2009년 9월~지난 4월 해외에 서버를 둔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 6개를 개설한 뒤 회원들로부터 경기당 최대 100만원의 베팅금을 받아 최대 300만원까지 배당금을 주는 방식으로 도박장을 운영해 6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경기결과를 적중시킨 회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베팅금의 약 10%를 수수료로 챙겼다. 도박 사이트 프로그램 개발자 박모(44)씨는 서울의 한 미술관 전산실장으로 일하며 밤에 사무실에서 사이트를 개발하고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도박 사이트 홈페이지 5개를 제작해 운영자들에게 290만~490만원에 판매하고 매달 150만~250만원의 관리비를 받는 등 모두 4천여 만원을 챙겼다.

경찰은 도박 사이트 운영자 중 입건된 황모(32)씨는 지난 4월 김제 마늘밭에서 100억대 도박자금이 발견됐다는 보도를 보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 모방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회사원 이모(34)씨는 10개월간 사설 스포츠토토 도박을 하며 저축금 2천만원과 대출받은 6천만원을 모두 탕진해 직장을 그만두는 등 도박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스포츠토토는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2001년부터 ㈜스포츠토토에서만 운영할 수 있으며, 이를 모방한 유사 게임은 모두 불법이다. 적발된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경찰 추적을 피하려고 1개월마다 국내 사무실을 변경하고 대포통장과 대포폰 등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우성, 2011.8.10)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학자들의 연구가 심화되면서 미디어 수용자는 차츰 능동적, 주체적 존재로 이해돼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언론학 등에서 말하는 능동적인 수용성, 또는 능동적인 수용자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이고, 능동적인 수용자 전형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학계 안팎의 논의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텔레비전과 관련해 많은 논의가 있었고, 최근에는 능동적인 성격이 더욱 강조되는 인터넷을 둘러싸고 더욱 활발해지는 양상인 것 같습니다. 

바우어(Bauer, 1964)는 ‘완고한 수용자(obstinate audience)’라는 개념을 이용, 미디어의 콘텐츠에 저항하는 수용자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하고, 루빈(Rubin, 1984)은 텔레비전 시청 형태의 연구를 통해 ‘의례화된 미디어 이용’과 ‘도구화된 미디어 이용’ 형태로 구별하기도 했습니다. 또 비오카(Biocca, 1998)는 수용자의 능동성과 관련, 선택성과 실용성, 의도성, 영향력에 대한 저항, 관여 등 5가지 차원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즉 대체로 수용자가 미디어와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채택해 수용할수록, 실용적인 목적이 많을수록, 의도성이 크면 클수록 수용자의 능동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McQuail, 2000/2002, 460~461쪽 참고).

특히 미디어 효과 연구 차원에서는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는가(what the media do to people)가 아니라 사람이 미디어로 무엇을 하는지(what people do with the media)에 더 주목하면서 미디어의 이용충족 이론으로 분석되기도 합니다. 1940년대 처음으로 제시된 이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면서 미디어와 미디어 내용물을 선택할 때의 동기와 이용 간 관계를 살펴보자는 것이죠. 이용충족 이론은 상호교류적 모델, 충족 추구 및 수용자 능동성 모델, 기대치 모델, 이용 및 의존 모델 등 4가지 모델이 제시되기도 하고요(Bryant & Thompson, 193~208쪽 참고). 

최근 인터넷이나 퍼스널 미디어 등이 우리 생활에서 전면화하면서 능동성 수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용자, 이용자들이 미디어를 전면적으로 활용하거나 아예 미디어 자체가 되는 현상에 대한 연구로 확산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요. 아무튼 수용자 개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인데요.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에서 보여주는 이사장의 뉴스 소비 모습은 단순하게 미디어 텍스트 또는 콘텐츠의 능동적인 이용 수준을 넘어 이용자 수용자 입장에서 뉴스의 의미까지 창출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자신이 설파하고자 하는 내용을 미디어의 뉴스 기사를 통해 보완하고 강화하면서 미디어 뉴스 너머의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매일 신문, 방송, 인터넷, 책, 영화, 음악mp3 등을 접하는 독자 여러분은 미디어와 미디어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 소비하고 있습니까. 수동적 또는 능동적, 아니면 미디어 자체가 되셨습니까?

<참고문헌>
박범신(2011).『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서울: 문예중앙.
안경업(2007.3.17). 설왕설래: 모방범죄. [세계일보], 2007년 3월17일자, 23면. <On-line>, Available: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20070316205212814&p=segye
이우성(2011.8.10). 사설 스포츠토토 운영ㆍ도박 일당 42명 적발. [연합뉴스]. <On-line>, Available: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8/10/0200000000AKR20110810070800061.HTML?did=1179m
Bauer, R. A.(1964). The obstinate audience. American Psychologists, 19, 319-328.
Bryant, J., & Thompson, S. (2005). Fundamentals of Media Effects. 배현석 역(2005). 미디어 효과의 기초. 파주: 한울아카데미.
Rubin, A. M.(1984). Ritualized and instrumental television viewing. Journal of Communication, 34(3), 67-77.
McQuail, D.(2000). Mass communication theory. 4th. Sage publications Ltd. 양승찬 강미은 도준호 역(2002).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 서울: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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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톡통톡2011.10.14 15:49

    저번에도 이 소설에 대한 포스트를 보고 흥미롭다고 느꼈는데, 후속편 격의 글을 또 써주셨네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