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사람들만의 신문을 해석하는 방법
2011. 10. 19. 09:26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퍼즐 맞추듯이 읽어야 하는 노동신문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판단해 볼 때 북한 신문은 철저히 노동당 선전선동기관지로 김일성 부자 우상화 관련 기사가 꽉 차있는 재미없는 신문입니다. 어떠한 비판성 기사도 허용되지 않을 뿐더러 사건, 사고, 범죄, 재해, 여론조사 등을 담은 기사 역시 철저히 배제됩니다.
실제로 노동신문 편집만큼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한 신문도 찾아보기 힘들고 대다수의 기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해서 지루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실정이니 신문 역시 북한 주민들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라는 추론이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북한 주민들은 정말 신문을 열심히 챙겨 읽습니다. 물론 읽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신문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 역시 국가에서 배정해 주기 때문에 일정한 사회적 직책이 없으면 신문을 볼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서 신문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신문 밖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앙방송도 있지만 지방에선 겨우 하루 몇 시간 동안만 전기가 오고 늘 정전돼 살기 때문에 TV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TV에서 전해주는 뉴스는 겨우 30분 정도인데 이것도 김정일 동정보도 등에 할애하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실상 신문밖에 없습니다.
신문 외에 읽을거리도 많지 않습니다. 잡지도 거의 없고, 몇 개 안되는 잡지도 발행부수가 매우 적어 일반 주민들은 구경하기 힘듭니다. 김 부자 관련 서적을 제외하면 북한 내에서 발행되는 문예작품 역시 거의 없습니다. 이런 북에서 살면 활자를 본다는 그 자체가 반가울 뿐입니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책도 없고, 거기에 한국처럼 술 마시고 놀 장소도 거의 없고, 노래방도 없고, 여가생활도 발달돼 있지 않다 보니 독서는 북에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김정일 동정을 보도하는 노동신문의 1~3면은 재미가 없지만 국내소식을 전하는 4면과 남조선면인 5면, 국제면인 6면은 그래도 매일 다른 소식이 전해집니다.
제가 북에서 살 때의 개인적인 경험을 한마디로 요약해 말씀드리면 신문을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북한주민들은 5면과 6면만큼은 정말 자세히 뜯어봅니다. 물론 남조선 관련 보도는 철저히 ‘통일방안 선전, 남조선 당국 및 자본가,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비난, 남조선 사회의 어두운 점 부각을 통한 사회주의 우월성 선전’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합니다. 국제면도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를 폭로, 반미 연대성의 공고화, 북한의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을 집중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도 이 정도는 압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외부 세계를 상상해 봅니다.
실례로 이라크 전쟁을 실례로 든다면 이런 식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 신문은 “이라크 군대가 미 제국주의군대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고, 비행기 2대를 격추하고 미사일 5기를 요격했다”고 보도합니다. 철저히 미국과 대응하는 이라크군에 초점을 맞추어 씁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은 “아, 이라크에서 전쟁이 벌어졌구나. 그런데 숱한 비행기가 뜰텐데 고작 2대밖에 격추 못 시켰다니, 이건 게임 자체가 안 되는 전쟁이구나. 곧 미국이 이기겠군”하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얼마 안돼 이라크군의 전과가 점점 줄더니 이라크전에 관한 기사가 노동신문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면 주민들은 “이라크가 지는구나”하고 판단합니다. 한참 뒤 “이라크 애국자들이 바그다드에서 미군 기지를 폭탄테러 한다”는 내용이 실리면 주민들은 “이라크가 이젠 미군의 통치를 받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한국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례로 노동신문에선 “남조선 괴뢰집단이 장군님을 찬양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들씌워 애국청년에게 1년 형을 선고했다”는 식의 비난기사가 많이 실립니다.
그러면 주민들은 “아, 우리는 남조선 대통령을 찬양하면 바로 총살일텐데 저긴 고작 1년이라니, 참 좋은 사회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989년 대학생 임수경이 평양에 왔다가 돌아갔을 때 북한 신문들은 ‘애국청년에게 징역 5년을 선포한 남조선 파쇼도당의 만행’을 연일 규탄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우리 중 누가 서울에 가서 저러고 돌아오면 본인은 물론 8촌까지 멸족될텐데. 진짜 파쇼는 우리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외부세계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은 노동신문에 쓰인 내용보다 훨씬 더 진실에 근접해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신문도 퍼즐을 맞추어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읽어보면 나름 정말 재미있습니다.
늘 이런 식으로 신문을 읽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행간에서 숨은 뜻을 찾아내는 능력은 정말 잘 발달돼 있습니다. 당국이 말해주지 않아도 신문을 거꾸로 읽어가면서 웬만큼 다 압니다. 북한 선전당국도 이런 것을 이제는 많이 의식하고 있습니다. 임수경 방북 때만 해도 ‘너무 과하게’ 남조선 독재정권을 비난했다 역효과를 냈는데 이제는 나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런 실수를 거의 저지르지 않습니다.
올해 들어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쟈스민 혁명이 벌어져 전 세계 언론이 연일 여기에 초점을 맞출 때도 북한 신문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전 같으면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미제 앞잡이 정권을 몰아내고 내고 자주 독립을 쟁취하고 있다”고 호도해서 선전했을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이런 선전도 없이 조용합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아, 이제는 북한도 어떻게 쓰던지 사람들이 다 반대로 해석해버리니 그냥 침묵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임을 알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쓰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이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나름 입맛대로 포장해 보도하는 순간 그때는 북한 주민들이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상황을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죠.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마치 북한을 지켜보고 남긴 명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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