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5. 15:23ㆍ포럼
‘미디어 리터러시’는 과연 신조어일까?
‘미디어 리터러시’ 용어의 역사와 개념의 분화·확장
‘사회적 존재’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 능력
최근 들어 자주 사용되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는
현대 소셜 미디어 사회가 만들어낸 신조어가 아니다.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출발했지만,
특히 ‘리터러시’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 변화를
역사적, 학문적으로 살펴보았다.
글 황용석
리터러시는 그 자체가
목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수단적 개념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용어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리터러시인가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진화하는 기술이나
표준화되고 제도화된 틀 안에
리터러시를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학문 분야와 응용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온 용어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와 리터러시(literacy)의 합성어로 여러 형태의 변형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층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기술로서 미디어 형상과 양식은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 확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된 많은 파생어들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특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미디어를 단순한 기술로 이해하는 것은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을 기능주의적 또는 도구주의적 관점으로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미디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체제이자 제도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리터러시 개념의 원형성
모든 미디어는 미시적으로 인간의 지각과 인지, 그리고 행동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회구조와 시스템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미디어와 인간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기능 조작을 넘어서 사회적 참여 행위이며 동시에 제도적 변동을 수반하는 동태적 요인이기도 하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는 기술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정책적 맥락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리터러시’라는 용어의 어원을 추적하면, 사회적 존재로서 요구되는 인간의 다면적 능력을 의미로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터러시는 읽고 쓰는 능력인 문해력을 의미한다(Martin, 2010). 구두 언어를 리터러시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이 개념이 신체 외부의 매개체를 사용해 소통하는 능력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서면 형태로 된 문자로 의사소통한 것은 기원전 3,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구두로 연설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정치와 법률 등 공공적인 사안을 다루는 장소에서 구두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일반화된 양식이었다. 그러나 도시국가가 자리 잡으면서 리터러시가 요구됐다. 아테네인들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점토 석판에 새로운 법 목록 등을 새겼다. 이러한 행위는 시민들이 정부에 참여하는 한 형태로 글쓰기가 자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에서 특정 시민의 추방을 결정하는 투표를 할 때 추방하려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야 했다. 그리스 알파벳으로 간단하게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데 요구되는 최소한의 리터러시였다.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공공문서를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점토 석판 등에 문자로 새겼다. 로마 공화정 정치의 중심을 이룬 고대 로마의 성문법인 12표법은 상아로 된 판에 새겨져 로마 시민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광장에 전시됐으며, 문자 해독을 통해 적시된 법을 따르기를 요구했다. 암흑기인 중세에는 사제나 제한된 사람들만이 리터러시를 갖고 있었다. 시민혁명 이후 근대 교육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글 읽는 능력은 시민의 참정권 행사나 경제적 활동에 필수적인 능력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는 매스미디어인 책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부터 출발한다. 서구에서 시민 국가가 등장하고 교육제도가 마련된 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시민 생활의 기본 능력으로 중요시됐다. 산업혁명을 거쳐 값싼 종이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능력과 문해력의 중요성은 지위와 권리의 표식이 됐다.
이처럼 대중매체 이전 시대에 사용된 리터러시는 단순히 읽고 이해하는 기능적 능력을 넘어서서, 특정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의 기본권이자 참여 조건이며 문화 향유의 전제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즉, 리터러시는 매개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 양식과 더불어 사회의 구조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그 개념이 확장돼 왔음을 알 수 있다.
기술 중심/보호주의적 접근
매스미디어의 등장은 리터러시 개념을 미디어에 종속시키거나 ‘미디어 이용을 위한 리터러시’로 개념 범주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텔레비전과 영화 등 전파기술을 이용한 영상언어가 본격적으로 소비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이 자리 잡았다. 전파의 광범위하고 일방향적 영향력과 영상의 강한 생동감은 미디어의 강력한 효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 텔레비전의 등장은 미디어 기술이 문화와 정치의 우위에 서는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은 보호주의적인 관점을 취한다. ‘비판적 시청 기술’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강력한 영상 메시지를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1960∼70년대 영화의 본격적인 대중화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텔레비전은 상업성과 폭력성, 선정성, 소비지상주의, 광고의 과도한 영향, 정치적 선동주의 등 부정적인 현상을 낳았고 여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비판적 미디어 비평주의가 미디어 리터러시와 결합됐다.
초기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를 이용한 교육(education with media)’과 혼재해서 사용되곤 했다(Buckingham, 2008). ‘미디어에 대한 교육(education about media)’의 관점에서는 비평주의가 결합돼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수용하는 능력 즉, ‘텔레비전 시청 기술(Television Viewing Skill)’ 혹은 ‘수용 기술(Reception Skill)’,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텔레비전 이해 훈련(Television Awareness Training)’ 등과 같은 개념과 혼용해서 사용됐다. ‘영상 미디어가 전달하는 영상을 언어의 개념에서 어떻게 읽고 평가할 것인가’ 즉, 미디어 리터러시의 또 다른 형태로 ‘시각적 해독’으로서의 리터러시(visual literacy), ‘비판적 TV 시청 기술(critical viewing skill)’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이처럼 영상 미디어 시대 리터러시의 보호주의적 시각은 미디어의 절대적 영향력과 원자화된 대중 간의 힘의 불균형이 만든 결과물이었다(황용석, 2016).
디지털 리터러시, with와 about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 기술의 확산과 컴퓨터의 미디어화는 본격적인 상호작용 미디어 환경을 만들었다. 0과 1이라는 부호 체계로 작동하는 디지털 미디어 시스템의 확장은 물질적 도구로서 미디어의 개념을 허물었고 수동적인 소비자로서 수용자의 개념을 이용자로 전환시켰다.
1980년대에는 ‘컴퓨터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1990년대에는 ‘정보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두 용어는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이고 간단한 ‘사용 기술’의 의미를 갖는 기능주의적 정의였다. 정보 리터러시 개념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진작되면서 이 개념은 미디어 리터러시와 접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사서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가 제시한 정보 리터러시의 6단계 모형, SCONUL(Society of College, 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ies)의 ‘7개 개념 기둥 모델(seven pillars model)’, 브루스(Bruce, 1994,2000)에 의해 제안된 ‘정보 문명인(An information literate individual)’ 등 정보기술을 미디어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것의 사회적 활용을 결합하는 개념이 제시됐다(Bawden, 2001). 컴퓨터공학과 교육공학에서는 컴퓨터 리터러시 개념을 교과과정에 결합시키면서,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다루었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비판적 해석 등에 대한 하위 개념을 설계해 나갔다(Shapiro & Hughes, 1996).
이런 학문적 시도를 이어받아 길스터(Gilster, 1997)가 처음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제시했지만, 그 후 10년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갖는 용어의 모호성으로 인해 오히려 학문적 의사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Eshet-Alkalai, 2009). 실제 그가 사용한 개념이 기술 기반의 전자 리터러시(e-literacy)나 컴퓨터 리터러시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 등 혼돈스러운 면이 있었다.
이후 이 개념은 마틴(Martin, 2012), 에셋-알카라이(Eshet-Alkalai, 2009)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층적인 개념 모델로 설계돼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길스터는 2006년에 《디지털 퓨전(Digital fusion)》이라는 저술을 발표하면서 정보가 융합되는 형태 속에서 요구되는 리터러시 개념을 확장해서 해석했다. 바우덴(Bawden, 2001)은 이런 논의를 종합해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도구적인 기술에서부터 비판적 인식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며, 하위 차원으로 디지털 기기에 대한 기본 기술, 디지털 정보에 대한 배경지식, 중심적인 능력들(읽고 이해하기, 창조하고 커뮤니케이션하기, 평가하기, 지식의 재배열, 정보 활용 능력, 수용 능력 등)을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의 진화에 따라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알고리즘 리터러시 등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리터러시가 조합되고 있다. 사실 이런 조합적 용어의 등장은 우리를 다소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리터러시에 대한 기술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 자율적 관점 등 여러 학문적 관점 등이 혼재하는 가운데 이들 각각의 차원을 비교하고 분리하기보다는 여러 개념들의 코디네이션으로 새로운 리터러시 용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터러시의 ‘올바른 목적 설정’ 중요
이 짧은 글에서 여러 관점을 소화하기는 어렵기에, 우리가 인식해야 할 중요한 몇 가지를 언급하면서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리터러시는 그 자체가 목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수단적 개념임을 인식해야 한다. 앞서 고대 도시국가의 리터러시와 근대 국가의 리터러시가 당시 정치제도에서 요구하는 각기 다른 수준의 능력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이 용어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리터러시인가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진화하는 기술이나 표준화되고 제도화된 틀 안에 리터러시를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홉스(Hobbs, 2010)나 하지타이 등(Hargittai & Walejko, 2008)과 같은 시민주의적 접근이나, 젠킨스(Jenkins, 2006) 같은 참여적 융합문화론은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을 유용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개념은 디지털 시민성(digital citizenship)과 연결되고 있다(황용석·이현주·박남수, 2014).
둘째, 다양한 용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차원이 존재한다면, 1992년 미국에서 제시된 정의인 “접근, 분석, 평가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콘텐츠 작성) 능력(ability to access, analyse, evaluate and communicate messages in a variety of forms)”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에서 이 네 가지 개념들을 중심으로 리터러시 모형이 구성되고 있다. 가장 단순화된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 차원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이것을 통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미디어 리터러시 모형이 제시됐는데, 이들이 평가적 모형인지 구성적 모형인지(커리큘럼 구성 등), 또는 개인 차원의 모형인지 제도 차원의 모형인지 등을 구분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필요한 무엇’에 관한 리터러시의 초기 원형 개념을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Bawden, D. (2001), “Information and digital literacies: a review of concepts”, Journal of Documentation, Vol. 57 No. 2, pp, 218-259.
Bruce, C. S. (1994). Portrait of an information literate person. HERDSA News, 16(3), Nov., 9 11.
Bruce, C.S. & Candy, P., eds. (2000). Information literacy around the world: advances in programs and research. Wagga Wagga, NSW: Charles Sturt University.
Buckingham, D. (2008). Defining digital literacy: What do young people need to know about digital media? In Lankshear & Knobel (Eds.), Digital literacies: Concepts,
policies and practices (pp. 73-85). New York: Peter Lang Publishing.
Eshet-Alkalai, Y., & Chajut, E. (2009). Changes over time in digital literacy. Cyberpsychology & Behavior, 12. DOI: 10.1089=cpb.2008.0264
Gilster, P. (1997), Digital literacy. New York: Wiley Computer Publications.
Hargittai, E., & Walejko, G. (2008). The participation divide: Content creation and sharing in the digital age. Information, Communication & Society, 11(2)pp, 239-256.
Hobbs, R. (1998). The seven great debates in the media literacy movement. Journal of Communication, 48(1)pp,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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