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뇌’를 가진 우리 아이, 기억력이 떨어지는 이유

2011. 10. 21. 13:0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게임할 땐 뇌활동 거의 정지...책 읽으면 정반대" 

  - 일본 뇌신경 과학계 권위자인 모리 아키오 교수팀의 연구 
 
 

'머리가 좋아지려면 많이 읽어라!' 

'어떻게 하면 성적이 오를까?', '어떻게 하면 업무 능력이 향상될까?'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해외 연구진이 사람의 두뇌 능력, 이른바 '뇌력(腦力)'과 책 읽기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검증된 데이터로 내놓은 것이죠. 

2008년 일본 도쿄 민간교육연구소에서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에게 동화책을 2분 간 소리내어 읽게 한 뒤 기억력 검사를 시행한 결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때보다 10~20%나 기억력이 증진됐다는 구체적인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이 실험을 주도한 도호쿠 대학 미래과학기술 공동연구센터의 가와시마 후토시 교수(뇌과학 전공)는 "독서가 두뇌를 활성화시켜 결과적으로 두뇌 능력을 향상시킨 것"이라며 이같은 연구 논문을 뇌과학 관련 국제 학회에 발표했습니다. 


 


가와시마 교수가 '독서의 무한한 능력'에 주목하는 데는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됩니다. 가와시마 교수는 학생들에게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 '트럼프 게임을 한다', '책을 읽는다', '음악을 듣는다' 등 100종류 이상의 과제를 준 뒤 fMRI(기능적 핵자기공명 영상법)로 뇌 내부 자장의 미세한 변화를 관측했습니다(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면 그 부분이 모니터 화면에 붉은 색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책을 읽을 때 놀라울 만큼 광범위한 부위에 걸쳐 빨간색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반면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고 '트럼프 게임을 한다'는 과제 역시 뇌가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 치매 노인에게 하루 20분 간 '읽기•쓰기•계산'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그 결과 대상 노인들이 더 이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거나 하는 일이 없어졌고, 사람을 알아보고 일상적인 대화를 훨씬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효과가 발견됐습니다. 

가와시마 교수는 "책을 읽으면 주의력, 창조성, 사람다운 감정,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 등과 깊은 관련이 있는 뇌 부위인 전두전야(前頭前野)가 활성화된다"고 밝혔습니다. 개나 고양이에는 이 전두전야가 없으며, 원숭이는 조금밖에 없습니다. 또 이곳이 발달되지 않거나 손상될 경우 성인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거나 감정 통제가 안 됩니다. 


 


MRI 검사에서 책을 읽을 때 뇌가 빨간색을 띠는 것은 독서가 두뇌 전체에 흐르는 피의 양을 늘리고 혈류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는 특히 두뇌의 전두연합령(이마 바로 뒤의 두뇌부분)과 측좌핵을 활성화시킵니다. 이 부분은 사고력, 판단력, 창조력과 같은 정신운동을 통제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책읽기는 뇌를 훈련하고 연마하는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활동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흔히 빠져드는 게임이나 인터넷은 어떨까요. 결론은 책읽기와는 정반대로 두뇌 활동을 향상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 뇌신경 과학계의 권위자인 모리 아키오 교수팀의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모리 아키오 교수는 2002년 여름 장시간 게임이나 인터넷에 몰두하는 행동의 위험성을 알리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게임을 매일 2~7시간 하는 아이의 경우, 뇌활동 상태를 나타내는 뇌파가 전두전야에서 거의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즉 뇌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모리 교수는 이런 뇌를 '게임 뇌'라고 명명했습니다. 게임 뇌는 감정을 통제하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성을 잃기 쉬우며 집중력도 저하됩니다. 실제로 일본의 6~29세 사이 남, 녀 2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 정도가 게임뇌의 특징을 보였고, 이들은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신경질을 자주 부리거나 친구와 사귀기도 힘들어하는 등 자각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몰두하는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은 겉으로 보기에 활발한 두뇌 활동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두뇌 활성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입니다. 


이밖에 독서는 인체의 신경계통에도 좋다는 미국 의학계의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끕니다. 미국의 신경학 권위지인 뉴로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책읽기가 공해나 독성 물질로 인한 인체의 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납 주조 공장 등 독성 물질에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신경계 손상이 적었으며 기억력과 집중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학자들은 책읽기로 신경계에 흐르는 혈액량과 혈류의 속도가 증가해 독성 물질이 혈관계에 끼지 않고 몸 밖으로 신속히 배출되는 것을 돕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막힌 하수도에 고압의 물을 주입하면 시원스레 뚫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처럼 독서가 두뇌회전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일본 과학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추가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현재 일본 히타치 제작소 기초연구소의 고이즈미 히데아키 연구장은 두뇌 속의 혈류 변화를 바탕으로 뇌 활동을 측정하는 광(光) 포토그라피 장치를 개발, 책 읽을 때 뇌기능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연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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