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빠진 온라인 교육은 범죄”

2021. 1. 29. 17:14해외 미디어 교육

헨리 젠킨스 남캘리포니아대학(USC) 교수. 저서 《컨버전스 컬처》로도 잘 알려진 저명한 미디어학자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빠진 온라인 교육은 범죄”

 

[미디어교육 석학 인터뷰] 헨리 젠킨스 USC 교수

 

한국은 1991년에야 국제연합(유엔)에 북한과 동시에 가입했지만,

1950년부터 유엔 교육사회문화기구(유네스크)에 가입해 활동했다.

2020년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가입 70돌을 맞아 유네스코가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에 개최하는

‘세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대표회의(GMIL)’를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2020년 주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디스인포데믹(허위정보 범람 현상)에 저항하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다.

 

글 구본권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모든 시민이 정보를 유통할 때 좀 더 관심을 갖고 책임감을 갖기 바란다.

또 시민들이 각자 의존하는 정보 출처의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좀 더 나은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온라인 교육에서 핵심은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직면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지도 받지 못했다.

건강한 미디어 리터러시 없이 온라인 교육을 개설하는 것은 범죄다.

 

 


 

 

‘세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대표회의(GMIL)’ 개막일인 10월 26일 첫 순서는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의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교수의 기조연설이었다. 헨리 젠킨스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젠킨스 교수는 《컨버전스 컬처》 등의 저서를 통해,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에서 모든 미디어를 융합적으로 이용하는 현상과,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문화를 예견해온 저명 미디어학자다. 젠킨스 교수는 온라인 비대면 교육 확대로 집단 간 격차가 커지는 현상에 대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없이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라고 역설했다.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허위정보가 난무하는 탈진실 상황에 대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강조한 젠킨스와의 인터뷰 전문을 소개한다. 오늘날의 컨버전스 미디어 현상과 참여 문화를 예견해온 미디어 리터러시 석학의 통찰이 담겨 있다.

 

 

유네스코는 인간 발달 차원에서 오래 전부터 문해 교육을 실시해왔으며,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조해왔다. 2020년에는 ‘허위정보에 저항하기(Resisiting Disinfodemic)’를 주제로 열린다. 유네스코에서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허위정보와 싸우기(Combating Disinfodemic)’ 능력을 강조해왔다.

 

- (구본권) 유네스코가 올해 주제를 ‘허위정보에 저항하기(Resisting Disinfodemic)’로 설정한 이유는?

= (젠킨스 교수)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 왜곡 정보(Disinformation)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요 문제의 하나로, 많은 민주 국가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러시아와 일부 국가가 펼친 적국과 경쟁자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적극적 노력에도 원인이 있지만, 국내에서 생겨난 음모론과 극단적 주장의 영향도 적지 않다. 참여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나는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는 세상에서 일반 시민들이 이러한 왜곡 정보의 확산에 관여하는 방식이 걱정된다. 모든 시민이 정보를 유통할 때 좀 더 관심을 갖고 책임감을 갖기 바란다. 또 시민들이 각자 의존하는 정보 출처의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좀 더 나은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 당신이 이번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대표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강조한 것은?

= 나는 항상 일반 시민이 세상에 변화를 만드는 주체임을 강조한다. 내가 2004년 맥아더재단의 도움으로 출판한 백서 《참여 문화의 도전(Confronting the Challenges of a Participatory Culture)》에서 다룬 내용을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젊은 활동가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활용해 중요한 문제에 대한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내는지 돌아보면, 우리 시대에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미국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 민주당), ‘우리 목숨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총기 반대 학생시위)’의 엠마 곤살레스 등이 사례다. 나는 또한 2014년 보고서에서 제시했던 새로운 미디어와 관련한 ‘참여 격차’, ‘투명성 문제’, ‘윤리적 도전’이라는 세 문제가 허위정보와 관련된 현재 상황과 관련해 언급되지도 않았고 맥락을 만들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정보전염병(인포데믹)을 경고하고 나섰으며, 실제로 무수한 코로나19 관련 허위정보가 유통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 인류는 어느 때보다 오래 교육받았고, 진위 확인을 할 수 있는 도구를 항상 지니고 있는데도 허위정보로 인한 피해와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는가?

= 핵심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 부족 때문이다. 도구도 있고 접근성도 문제없다. 우리에게는 정보를 집단적으로 검증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있다. 하지만 평균적 시민은 이러한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내 가족 중에도 음모론 사이트인 큐어넌(QAnon)을 팩트체커로 선호하는 이가 있는데, 미디어 편향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접하고,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주고받으며 각자가 다른 사람들의 필터로 기능한다. 정보의 대부분은 전통적 뉴스 미디어에서 만들어지지만, 상당히 편향된 관점의 웹 사이트나 적극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출처인 경우도 있다. 문제는 다양한 출처를 가진 뉴스들이 뒤섞여 동일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전달되는데, 우리는 원래 출처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소비한다.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이 검증하지 않은 정보를 단지 흥미롭거나 지지자들이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정보가 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젊은이들이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의 본질을 분별할 수 있다고 기대하겠는가?

 

다시 말해, 개개인이 스스로 유통하는 정보의 품질에 책임을 갖고 콘텐츠를 걸러내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습득하고 활용해야 한다.

 

- 많은 나라와 기업에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피해에 대한 법적, 기술적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법이 약간의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한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정보의 질에 대해 식견을 갖추고,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공중을 대체할 것은 없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 허위정보가 넘치는 탈진실 시대에 가장 중요한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내가 2004년 백서에서 “서로 다른 정보 출처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판단력’이다. 연결과 참여를 지향하는 시대에 판단력은 몇 가지 다른 역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첫째 ‘집단지성’. 공통의 목표를 위해 지식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비교하는 능력이다. 둘째 ‘네트워킹(연결)’. 정보를 검색하고 종합하고 분해하는 능력이다. 셋째 ‘협상’. 다양한 공동체를 넘나들며 여러 관점을 분별하고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말하면 판단력은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개인이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연결된 문화에서 우리는 각자 정보 환경의 질을 보장받기 위해 상호의존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해당 정보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포함된다. 협상의 개념은 우리가 다른 인종, 또는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매우 다른 일상을 경험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만약 정보 가치를 평가하려 한다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을 경청하면서 우리 자신의 특권과 문화적 고립에 대해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과다 의존하는 현상도 보고되고 있으며, 개인별 디지털 미디어 이용 능력에 따른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 상당기간 지속될 팬데믹 상황에서 현명한 미디어 사용 태도는 무엇인가?

= 코로나로 인한 격리(록다운)는 ‘화면 이용 시간(스크린타임)’ 개념에 근거한 주장에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크린과 스크린이 끼치는 영향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스크린으로 각자가 수행하는 활동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화면을 보면서 지내지만, 개인이 스크린을 이용하는 목적은 업무와 교육을 비롯해 관계 맺기와 오락 등 실로 다양하다. 항상 그래왔다. 화면이 고립을 부르고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축소시킨다는 비난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 중인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디지털은 소중한 사람들과 사회적 접촉을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코로나19는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많은 진실을 드러냈다. 가장 현명한 태도는 미디어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미디어 효과 이론)를 질문하기보다 우리가 미디어를 활용하는 활동이 삶을 형성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품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통해 생각하고 미디어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당분간 사회의 많은 핵심 기능을 스크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누가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지, 누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 누가 지역 사회에서 고립돼 있는지 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접근과 참여의 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주장해온 ‘참여 격차’의 영향이 지금보다 명확했던 적은 없으며, 우리가 공동체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 등교가 중지되고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면서,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 교육 확산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나를 비롯해 연구자들이 20년 전부터 이 문제를 예견했다. 우리는 뉴미디어 환경의 장점을 활용해 풍부한 교육 자원과 활동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전문적 훈련 과정을 요청해왔다. 어떻게 온라인에서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도 지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육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정책 결정자들은 우리가 20년 전에 지적한 문제들로부터 기습을 당한 셈이다. 온라인 교육에서 핵심은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이다. 이는 투명성의 문제다. 미디어를 이용한다고 해서 미디어의 작동 방법이나 미디어가 우리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또는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미디어 사용하는 방법을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직면하는 복잡한 사회적·윤리적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지도를 받지 못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와 뉴스를 분별하는 역량과 개인적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건강한 미디어 리터러시 없이 온라인 교육을 개설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다(적어도 범죄라고 간주되어야 한다).

 

 

‘컨버전스 문화’의 주창자로서 젠킨스 교수는 일찍부터 오늘날과 같은 융합적 미디어 이용을 이야기해 왔다.

 

- 당신은 융합적 기능의 미디어 기술보다 이용자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역량을 강조해왔는데, 이를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개인적 주체보다 집단적 주체를 강조해 왔다. 나는 뉴미디어 리터러시가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장 잘 구현된다는 점에서 이를 사회적 기술이자 문화적 역량이라고 말한다. 현대 세계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하다.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을 공유하고 정보의 품질을 토론하며,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서로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참여 지향적인 문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다. 위키피디아에 형성된 규범과 관행, ‘우리들의 기록보관소(Archive of Our Own)’ 같은 팬픽션 사이트에 참여하는 다양한 형태의 리터러시, 마인크래프트 같은 친밀한 커뮤니티에서 자원이나 기술을 공유하는 게 좋은 사례다. 서로에게서 배우고 동시에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곳이다.

 

- 쌍방향 미디어 환경의 ‘참여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 무엇보다 현대 세계에서 이 문제는 중요할 뿐 아니라 기술적 역량과 접근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종종 학교와 도서관을 통한 접근을 보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를 통해서만 이러한 플랫폼과 관행에 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집에서도 수시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새로운 격차가 생겨난다. 단지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참여 격차는 사회문화적 장애와 관련 있다. 참여에 필요한 기술을 지녔는가? 배움과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유용한 공동체를 찾을 수 있는가? 당신이 글을 올릴 때 사람들이 당신을 경청하는가? 아니면 구조적 형태의 차별과 직면하고 있는가?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미디어를 만들고 공유할 자격을 지녔다고 여기는가? 온라인에 접속할 때 올바른 선택을 안내해주는 데 필요한 조언자가 있는가? 등등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도구적 기술 개발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물음들이다.

 

 

미디어의 ‘수용자’ 개념이 ‘프로슈머(Prosumer)’로 변화하고 있으며, 젠킨스 교수가 강조해온 참여적 미디어가 확산되고 있다.

 

- 당신은 미디어 이용에서 이용자의 참여 문화와 집단지성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이는 자연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이용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 역량인가, 아니면 새로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하는 역량인가?

= 젊은이들이 디지털 미디어 접근을 통해 스스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한다는 생각은 ‘신화’다. 웹2.0과 유해한 게임 문화에 의해 거칠게 길러진 야생적 인터넷 세대가 낳은 결과다. 이 신화는 “아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이고 부모들이 디지털 이민자라면 어떻게 부모가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난처한 질문에서 기성세대가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지도가 필요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필요한 기술과 역량, 리터러시를 배우도록 돕고, 자라면서 직면하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방법은 게으른 자유방임적인 대응이나 이들에 대한 감시가 아니다. 어깨 너머로 자녀의 스크린을 엿볼 필요도 없다. 젊은 세대는 우리가 자신들의 뒷모습을 지켜봐주기 기대한다. 그렇다.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학교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고, 부모의 조언이나 앞서 언급한 참여적 공동체를 통한 비공식적 방법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 수용자들이 콘텐츠 제작자 역할을 하는 등 참여 문화가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다. ‘프로슈머’ 측면에서 적절한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 교육에서 무엇이 새롭게 필요할까?

= 읽기만 하고 쓸 줄 모르다면 글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미디어를 소비만하고 생산할 줄 모르는 사람을 ‘미디어를 이해하는(media literate)’ 사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네트워크 문화에서 ‘소비/생산’의 구분 틀은 명확하지 않다. 이용자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의미 있게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요구한다. 즉, 공동체에서 차이점에 대해 협상하는 기술, 정보를 집합적으로 처리하는 기술, 유통시키는 정보 품질을 책임지고,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해내는 기술 등이다. 이 모두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을 살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핵심적인 리터러시 욕구이기도 하다.

 

 

젠킨스 교수는 《컨버전스 컬처》에서 미디어 기술보다 이용자의 주체적이고 능동적 역량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소셜 미디어와 맞춤형 알고리즘 위주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개인의 능동성보다 테크 기업들의 알고리즘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다.

 

-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환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떠한 요구를 받고 있는가?

= 분명히 알고리즘 조작은 개인과 공동체가 디지털 환경에서 주체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 문제는 이러한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는 우리에게 선택지를 제공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연결할 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리즘 사용을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집단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리즘의 역할과 영향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우리는 볼 수 없는 적을 상대로 집단행동을 취할 수 없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은 영업비밀로 숨겨져 있으며, 핵심적 전제는 종종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 근거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단계는 젊은이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보다 강력한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 리터러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이 알고리즘을 읽을 수 없다. 우리 생활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을 바꾸기 위한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알고리즘을 추방하지 않겠지만,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의미 있는 되돌리기를 허용하며, 더 큰 투명성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표는 오직 교육 받은 시민들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디지털 원주민’과 ‘디지털 이민자’ 신화

 

- 영국의 미디어 교육학자 소냐 리빙스턴과의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에 관한 좌담이 흥미로웠다. 성인 세대가 오해하고 있는 ‘디지털 원주민’에 관한 신화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

= ‘원주민’, ‘이민자’라는 용어가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공격적인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자. 사실 ‘디지털 원주민’이란 개념은 19세기 ‘정착민 신화’에서 파생된 ‘고귀한 야만인’의 이론이다. 디지털 원주민은 이민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새로운 세상에 아무런 가치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달리 말해서, 디지털 자연주의의 일종이다. 바라건대, 실제 원주민이나 이민자에 대해서 이러한 견해를 전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매우 드문데, 왜 우리가 디지털 세계에 대해서는 이런 구분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한 이 신화는 모든 젊은이가 디지털 네트워크에 동등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어떠한 성찰이나 교육도 없이 직접 그러한 기술을 사용하면서 습득하고, 그들이 습득한 기술은 그들이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기에 충분하다고 가정한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다.

 

- 디지털 이민자인 성인 세대가 ‘디지털 원주민’ 세대에게 교육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 ‘디지털 원주민 신화’는 자녀에게 도움과 지도를 제공하고 그들이 스스로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 우리가 지금까지 디지털 시대를 상당 기간 살아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순간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그때까지 학습한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잃어버리는가? 이러한 용어를 둘러싸고 더 이상 의미 있는 논의를 할 필요가 없다. 가장 바람직한 참여형 문화공동체는 나이에 따른 강고한 구분 없이, 청년과 성인이 서로 배우는 공동체다.

 

오늘날 부모 세대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게임을 하고 채팅방에서 수다 떨고 팬사이트 논쟁에 참여하면서 성장했다. 이들은 트위치(Twitch)나 틱톡(TikTok)처럼 특정 플랫폼을 모르더라도 자녀가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회적 이슈를 (현실에서) 많이 접해 실제 경험이 풍부하다. 만약 흔히 말하듯 ‘자녀에 대해 막막했던’ 디지털 이민자 세대가 있었다면, 그들은 현재의 부모가 아닌 조부모 세대다. 또한 성인들은 인간관계, 전래 문학과 연구기술에 대해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어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에서 선택을 할 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1950년대에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조부모들이 평생 극적인 변화를 많이 경험한 만큼 우리는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조부모들에게 더 의존해야 한다고 썼다. 우리는 또한 팬덤이나 게임과 같은 공유된 관심사와 열정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성인과 청소년이 교류할 때 고정된 관계(부모-자녀 또는 교사-학생)에 구속받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어 전문지식과 기술이 오가는 현상을 목격한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이런 상호작용을 방해한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마을 전체가 필요한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젊은이가 그러한 관계를 통해 멘토나 경험 많은 연장자를 찾고 있다.

 

 

현재의 쌍방향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용자 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크게 증가했지만,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견해가 다른 그룹 간의 소통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 이 같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참여 문화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현재의 대화형 미디어 환경에서 새로 필요한 미디어 기능은 무엇인가?

= 윤리적 도전이라는 과제다. 기술은 참여를 가능하게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적 참여의 형태가 건설적인지, 아니면 파괴적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인터넷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공유된 윤리적 가치를 심어줄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번도 인터넷을 써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서로에 대한 의무에 대해 성찰하거나 자신이 퍼뜨린 정보를 책임지도록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의사소통 능력을 부여했다. 놀라울 것도 없이 그들 중 일부는 매우 무책임한 방법으로 그 힘을 악용하고 있다. 웹의 어두운 면은 매우 현실적이고 우리 문화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해결책은 공동체에서 윤리적 규범을 확립하고, 구성원들이 위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지역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규범과 사회적 계약을 통한 자율규제는 법적 규제보다 디지털 참여 주체들이 훨씬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다시 모든 길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수렴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들의 온라인 생활에 대한 가치관을 내재화할 수 있게 해준다.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https://www.kpf.or.kr/front/intropage/intropageShow.do?page_id=48035c62865b4989a98bb3f860d076ce


1 2 3 4 5 6 7 8 9 ···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