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7. 13:57ㆍ언론진흥재단 소식
콘텐츠 확장되지만 이용자 편향성도 커져
AI가 미디어와 만날 때
알파고가 인간 바둑 고수를 가뿐히 이긴 것이 겨우 몇 년 전인데 이제 인공지능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한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간주됐던 창작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의 발전은 거침없다.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다. 미디어 속으로 들어온 인공지능의 의미와 주의할 점을 알아본다.
정재민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알고리즘은 기술 발전에 따라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발전해갈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편향적인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결과물도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윤리성이 요구되고, 미디어 리터러시에 데이터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이다.
로봇의 어원은 노동을 의미하는 체코어 ‘로보타(robata)’에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R.U.R.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U.R. 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희곡에서 처음으로 로봇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작품 속에서 로봇은 인간 대신 특정 노동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로봇이 처음에는 인간을 위해 기꺼이 일했지만, 결국 반란을 일으켜 창조주인 인간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세상을 만든다는 내용이다.1)
‘인간 대 AI’의 대결?
로봇뿐만 아니라 물리적 형태를 띤 기계적 장치나 소프트웨어도 지능이 있는 인간처럼 스스로 작동한다. 이들은 무생물의 존재가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어 학습할 수 있도록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다.
공상 과학 영화나 문학 작품 속에서 인간을 위협하던 캐릭터로 등장했던 AI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6년 3월, 바둑 두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통해서이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이미 체스나 퀴즈에서 놀라운 성과를 냈지만, 경우의 수가 훨씬 복잡한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이 발휘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흥미롭다. “사람 vs 컴퓨터, 바둑 대결의 승자는?”, “인간 vs 기계, 세기의 대결 누가 웃을까?”, “알파고 vs 이세돌, 인간의 명예를 걸고”, “이세돌 vs 알파고,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대국을 앞두고 주요 언론이 내놓은 기사 제목을 보면 마치 기계와 인간이 전쟁을 치르듯 사뭇 비장하다.
결국 이세돌이 패했고 언론은 인간의 패배로 확대해석하며 충격에 빠졌다. “인공지능, 인간을 넘어서다”, “세기의 두뇌 전쟁, 인간이 졌다”, “세기의 대결,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 “신의 피조물, 인간의 창조물에 참패”, “인간의 공포는 죽음보다 AI”, “인간들, 전율을 느끼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이기다니, AI 공포증 확산”. 언론 보도에서 인공지능 알파고는 괴물 혹은 머리가 1,200개 달린 괴수, 냉정한 기계 등으로 언급되며 인간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로 그려졌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자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국내외 언론은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고, 어떤 직종이 사라질 것이며, 그 가능성은 몇 퍼센트인지를 보도했다.
공상 과학 영화나 소설 속의 캐릭터에서 알파고까지,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나 소프트웨어는 인간에 맞서 싸우는 적으로 규정됐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 대 AI’의 대결 구도는 여전하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모창, 골프, 심리 인식, 주식 투자, 몽타주 그리기, 트로트 작곡 등 총 여섯 가지 종목에서 인간과 AI가 대결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프로그램의 제목도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다. 제작진은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가고 AI와 인간의 공존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지만 초점은 인간과 AI의 한판 승부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맞추어졌다.
인공지능 로봇의 역량은 단순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선을 넘어섰다. 청소를 하고, 땅을 파고, 음식을 나르고, 배달을 할 뿐만 아니라 지식이 요구되는 주식 투자, 법률 자문, 의료 진단처럼 전문가가 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까지도 할 수 있다. AI 의사, AI 변호사, AI 투자자문가 등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인공지능은 지식을 넘어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의 영역까지 진출했다. AI가 그린 그림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5억에 낙찰됐고, AI가 시집을 내고, AI 소설이 일본의 권위 있는 일간지 신춘문예 예선을 통과했다는 뉴스도 접했다. AI는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한다. AI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투자자문가, 변호사, 의사, 화가, 연주자, 작곡가, 시인, 소설가가 사라지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AI는 이들을 대체하기보다는 이들의 일을 보다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며 창의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고,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 영역을 열어갈 것이다.
AI 활용한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 등장
전통적인 미디어 영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초래됐다. 캐나다의 경제 뉴스 및 금융정보 제공 업체 <톰슨 파이낸셜>이 AI 알고리즘으로 0.3초 만에 기사를 쓴 것은 이미 2006년의 일이다. 이제 국내외 언론사에서 알고리즘을 활용해 자동 생성 기사를 생산한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기사를 빠른 속도로 많이 써낼 뿐 아니라 어떤 뉴스를 먼저 보이게 배치할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추천을 한다. 지금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에게 노출되는 뉴스는 모두 AI 알고리즘이 결정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에서는 AI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텍스트만 주면 365일 24시간 여러 채널에서 일할 수 있고, 못하는 외국어가 없다.
인공지능은 뉴스를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등장했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유명 광고제 수상작 15년 치의 텍스트, 오디오, 비디오를 학습한 뒤 이를 토대로 일본 도요타의 신차 광고 대본을 썼다. 미국 영화사 20세기폭스도 자사 공포 영화의 예고편을 AI에게 맡겼다. 인공지능은 기존 공포 영화 100여 개의 화면 구성 요소를 학습하고 분류해 공포 영화 예고편의 패턴을 찾아낸 뒤 맛깔나는 예고편을 만들어냈다. 데이터만 있다면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고 결과물을 내놓게 하는 것은 지식과 예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혹은 그 어디서든 영역에 구분 없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고, 대본을 쓰고, 예고편을 편집한다고 해서 기자나 작가, 피디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들이 하는 업무의 특정 부분에 인공지능이 효율적으로 이용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가 나타날 것이다.
인공지능의 기계학습과 딥 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디어 창작 영역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딥페이크(deepfake: deep learning과 fake를 합친 말) 기술은 이미지 합성의 정밀도를 높였다. 국내 한 업체가 내놓은 버추얼 휴먼 ‘루이’는 인공지능이 제작한 가상 얼굴을 가진 캐릭터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노래 부르는 동영상에 AI가 가상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노래하고 춤추고, 브이로그를 올리는 이 버추얼 휴먼 ‘루이’의 개발사에는 가상 얼굴 분양을 요구하는 일반인들이 줄을 잇는다. 잘 보이고 싶어서 셀카 사진을 공들여 찍고 보정까지 하는데 ‘루이’ 같은 외모를 가질 수 있다면 비록 온라인상에서지만 왜 마다하겠는가. 인공지능을 통해 이상형에 가까운 대화 상대를 만드는 모바일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 서비스는 2020년 5월 출시된 후 2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누구든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와 목소리를 선택해 영상과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다. 이 기업은 50억의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AI의 어두운 그림자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미디어 세상의 잠재력과 확장성 속에 놓치지 말고 숙고해야 할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미디어 속에 들어온 인공지능에 대해 이용자가 주의해야 할 점을 짚어본다. 미디어 이용은 나의 선택인가? 뉴스와 정보의 과잉 속에서 무엇을 볼지 선택하는 것은 정말 본인인지 생각해 보자. 포털에서 먼저 노출되는 뉴스와 유튜브에서 추천되는 동영상을 결정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대체로 내가 클릭한 콘텐츠와 유사한 내용이거나 나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 누군가가 이용한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내가 관심 가질 만한 콘텐츠를 골라주고, 관련성 없다고 판단되는 콘텐츠는 걸러내서 아예 접할 기회가 없어진다. 필터 버블에 갇히면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버블에 갇힌 사람들에게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마저 어렵게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동영상을 보면 평소의 그와 다르게 거친 욕설을 해댄다. 믿기 힘들지만 오바마가 아니라고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2) 유명 앵커와 똑같은 얼굴을 만들어 뉴스 채널 로고를 달아서 내보낸다면 그 ‘뉴스’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얼굴에 음란 동영상을 합성해 충격을 준 사례도 이어진다. 이처럼 기술의 악용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일반인도 얼굴 사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합성 동영상물이 만들어진다. “저는 이런 영상 찍은 적 없는데요?” 누구든 AI 기술로 만들어낸 가짜 동영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텍스트를 넘어 음성과 영상마저 완벽하게 조작되는 세상이다. 출처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습관이 가짜뉴스의 확산을 낳는다. 허위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법적 처벌 대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데이터 리터러시 필요
모든 것이 디지털 흔적으로 남는 세상에서 빅데이터는 쌓여가고 알고리즘은 기술 발전에 따라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발전해갈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편향적인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결과물도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윤리성이 요구되고, 미디어 리터러시에 데이터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이다. 누가 어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왜 수집하는지, 나의 데이터로 무엇을 하는지, 왜 이 뉴스와 콘텐츠, 광고가 먼저 보이는지, 나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기업이 이윤을 얻는 것이 타당한지 묻고 알아야 한다.
결국 알고리즘의 미래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올바른 인공지능을 만들고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산업 효과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으로 인한 다양한 상황에 대한 관심과 고민, 논의 속에서 알고리즘의 원리를 이해하고, 투명성과 윤리 기준을 만들어나가고 새로운 법과 제도를 요구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자료]
1) R.U.R. In Wikepedia. http://en.wikipedia.org/wiki/Rossum%27s_Universal_Robots
2)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딥페이크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Q54GDm1eL0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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