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다니는 아들에게 쓴 엄마의 편지

2011. 10. 31. 08:5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사랑하는 아들아, 많이 춥제? 오늘 신문 첫 장에 “30년 만의 강추위”라데. 혼자서 일찍부터 밥도 못 묵고 출근할 니 생각하니 참 보고 싶구나. 이 애미가 비록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너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늘 노력하고, 지금도 니랑 대화도 나눌까해서 이렇게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니 분야가 돈이 오가는 곳이라매? 그 뭐고……. 참! 여의도 증권가. 테레비에서 나올 때마다 “내 아들도 저렇게 양복 입고 출퇴근 하는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뿌듯하드라. 니 아부지랑 밥 묵으면서 “코스피 반등, 경제 회복되나”라는 기사 읽었다. 모르는 게 많이 있지만 요즘 신문이라는 게 참 많이 좋아졌더라고. 어려운 말 밑에 설명도 친절하게 해놨드라. 애미랑 애비는 
컴퓨타 없이도 이래 니가 어떻게 사는지 조금은 알 거 같다야.




저번에 니가 내리와서 쉬지도 못하고 그 뭐시기고 삐쭉삐쭉한, 아 그래 그래프를 보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너거 아부지가 “와 그래 있노, 미국인가 거긴가 뭐 달라를 그래 많이 풀어놓는다미? 그래서 우리나라 지금 달라 시장도 긴장하고 있나? 뭐라드라? 양, 양적완환가 머시긴가……. 그거 하면 너거도 머리 많이 굴려야 하제?”라고 말하니까 놀란 듯하며 니도 모르게 수년째 말 한번 길게 안 하는 아부지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나는구만.

늘 너거 아부지한테 “당신도 아들하고 이야기 좀 할라고 해봐요.” 하니까 아부지가 “내가 뭐 알겠노. 복잡하고 바쁘게 사는 애한테, 나는 농사나 하는 사람인데 대화할 게 뭐가 있겠노?” 하드라고. 참 그때는 엄마도 속상하드라. 그게 맞는 말 아이겠나.

“밥 묵었나?”, “뭐 하노?” 이런 대화 몇 번 하고 금세 할 말 없잖아. 괜히 나이 들고 하니까 보고 싶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운 거나 싶드라고. 그러다가 그때 니가 집에 내려왔다가 놔두고간 그 뭐고 ‘○○일보’인가? 나물 깔라고 펼치는데 뻘건 걸로 막 동글뱅이를 쳐놨더라고. 그래서 내는 뭔가 해서 봤지. 그 뭐 보니까 돈이 어쩌고, 주식이 어쩌고 하던 거였는데 그냥 니가 하는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제.

일하다가 가까이 보니 “불안한 주가시장, 늘어가는 애널리스트들의 고민” 이래 적혀 있드라고. 생각해보니까 그때 니가 막 숫자 보고 그래픈가 그거 보고 죙일 고민하던 게 그런 거 때문인가 싶드라. 미안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내가 니가 어떻게 사는지, 니가 하는 일이 어떤 거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런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애미라 할 수 있나 싶었다마. 니랑
대화를 하고 친해질라고 니 아빠랑 별 방법을 다 써봤는데 잘 안 되던데. 그냥 마 니가 사는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접하다 보니께 조금씩 니도 반응하고 참 좋드라.

그래서 요즘에는 아부지랑 내랑 하루에 낑낑 두 시간이나 신문 붙잡고 있다. 덕에 마을 사람들한테 아는 체도 쫌 하고, 내리오면 대화도 하고 이게 다 그 신문인가 그거 때매라는 걸 생각하니까 참 희한하제. 얼마 전에 니가 쓴 글도 봤다.

야야. 한번 내리온나. 니 줄라고 유자 따놨다. 그라고 니가 쓴 글도 잘라가 액자에 넣어놨다. 추운데 건강 조심하고 이제 그만 줄이꾸마. 아부지한테도 가끔 전화하고. 사랑한다 아들아.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1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동상 대학/일반부 수상작 박지익 님의 ‘세대를 연결해준 따뜻함의 끈’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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