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9. 16:59ㆍ웹진<미디어리터러시>
6. 갈등을 풀고 신뢰를 북돋우는 토론장을 제공한다
윤리적 언론은 다양한 사회 집단과 세력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소통함으로써 합의를 모색하는 공론의 장을 제공한다. 다양한 사람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의견이 공정하게 전달되고 교류되도록 한다. 대립하는 관점과 주장이 표출되고 조정될 수 있는 토론장을 제공함으로써 사회가 갈등과 이질성을 조화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윤리적 언론은 사회적 신뢰를 창출하고, 공동체가 믿음에 기초해 운영되도록 제 역할을 다한다. 진영 논리에 빠져 특정 세력을 편들거나 반대 세력을 과도하게 공격하지 않으며, 차이와 불화를 침소봉대해 갈등을 극대화하는 보도 태도를 지양한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 배경과 맥락을 파악해 비판적으로 전달한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강령」 중
숏컷 페미 ‘논란’?
기자·언론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방침, 「언론윤리강령」의 내용이다. ‘차이와 불화를 침소봉대해 갈등을 극대화하는 보도 태도를 지양한다’는 대목이 특히 뼈아프다. 지금 한국 언론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갈등을 극대화한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젠더 이슈는 언론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오늘날 미디어는 젠더 갈등의 ‘증폭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말부터 8월까지 국내 언론은 도쿄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한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향한 온라인상 공격을 보도하는 수백 편의 기사를 썼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 선수의 숏컷 머리 모양과 SNS에서 쓰는 말투, 여대 출신이라는 점, 출신 지역, 평소에 착용하는 세월호 배지 등을 문제 삼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한 뒤 각종 게시글과 댓글을 올리며 안 선수를 공격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공격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아카이브 빅카인즈에서 안산 선수가 첫 금메달을 딴 7월 24일부터 8월 3일까지 ‘안산’, ‘숏컷’, ‘페미’, ‘논란’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인 기사를 검색하면 108개의 기사가 나온다. 이 가운데 ‘갈등을 극대화하는 보도 태도’를 보이는 기사들의 제목을 살펴보자.
“페미 안산 메달 반납해야” vs “선수 보호해야” 갑론을박
안산, 사상 첫 3관왕… ‘숏컷 페미 논란’도 실력으로 잠재웠다
‘안산 숏컷’에 정치인·연예인까지 가세… 산으로 가는 ‘젠더 갈등
이런 제목들은 온라인 괴롭힘이라는 행위를 대등한 주체끼리의 갈등으로 표현하고, ‘숏컷’, ‘페미’ 등에 ‘논란’이란 단어를 붙여 안 선수의 행동이 문제를 불러온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숏컷 페미 논란’이라는 표현은 ①숏컷 머리 모양을 하면 페미니스트, ②페미니스트는 논란의 대상이라는 두 가지 오해를 부른다.
반면, 국외 미디어는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 안산 선수에 대한 공격이 성차별주의자의 ‘온라인 폭력(online abuse)’, ‘혐오 운동’이라고 일컬었다. <로이터> 통신은 7월 29일(현지 시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양궁 선수의 짧은 머리가 반페미니스트들을 자극했다”면서 이를 ‘온라인 폭력’으로 규정했다. <AFP> 통신도 “안산의 짧은 머리가 남성들의 온라인 폭력 대상이 된 뒤 안산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온라인 괴롭힘을 중계하다니
미디어가 젠더 갈등의 증폭기가 아닌 보다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갈등’과 ‘논란’을 제때, 제자리에 쓰는 것이다. ‘온라인 괴롭힘’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분명하게 전달하되,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성별 간 의견 차이가 있으니 논란이라고 쓰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하는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사실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관점도 없이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면 미디어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전달을 핑계로 폭력을 방임하는 것과 같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이 미디어의 존재 이유라면 모든 기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쓰면 될 것이다.
여전히 온라인 폭력을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전달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언론사, 기자들이 있다. ‘온라인 괴롭힘’과 ‘양 진영의 주장이 맞선 상태’(갈등 또는 논란)는 그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은 모두가 같은 조건 아래 있고, 공정한 규칙이 작동하는 경기장 위에 있다. 반면 온라인 괴롭힘에서는 억지 주장을 하는 가해자의 존재, 실체를 확인할 수 없고 피해자는 대중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대중이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라면 무조건 ‘중계식 보도’를 하는 언론 행태는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더한다.
미디어는 ‘억지 주장’을 따옴표 안에 담아 전달하는 행태에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이 아무것도 아닌 주장을 따옴표 안에 넣어 논란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 ‘논란 저널리즘’을 멈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논란은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나타내며 다툼’을 뜻한다. 시민들의 삶과 관련 없는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논란으로 기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논란 저널리즘’ 멈춰야
“공인이나 유명인의 발언이라도 혐오와 차별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 것은 ‘성평등 보도 가이드라인’을 모르더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보도 윤리다. 그러나 대량의 뉴스가 생산되는 올림픽 기간을 노려 조회 수를 높이려는 인터넷 커뮤니티발 기사 작성과 유포는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저널리즘 윤리 위반이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7월 29일 낸 입장문의 내용이다. 이처럼 미디어 내부에서 자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럼에도 올림픽이 끝난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삿거리를 찾아 전달하는 보도 행태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논란 저널리즘’이 잦아들지 않는 건 포털 등에서 갈등을 극대화하는 기사가 온라인 독자의 선택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조회 수에 따라 온라인 광고비 등이 책정되는 상황에서 지금 미디어 환경은 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정글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라는 주체와 더불어 미디어를 이용하는 독자의 인식 개선도 함께 필요하다. 독자가 한국 사회의 갈등 조장, 극대화 기사에 쓴소리를 내고, 자극적인 내용을 내세우기만 하는 기사를 ‘덜’ 선택하는 움직임이 있어야만 국내 언론의 ‘논란과 갈등의 저널리즘’은 잦아들 수 있다.
본 원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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