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의 무게와 책임감 느껴요

2021. 11. 16. 18:48웹진<미디어리터러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한 정보 교류 및 의사소통이 우리 사회 전체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로 인한 여러 긍정적 변화도 많지만 악의적 가짜뉴스 등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폐해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 보건과 생명에 관련된 가짜뉴스가 유포되며 사회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만큼 디지털 기술에 친숙하면서도 허위정보에 취약할 수 있는 청소년에게 정보를 구별하는 능력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지도사가 본 체커톤 대회
청소년지도사로서 평소 청소년과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인 나는 청소년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위해서는 지루한 수업이 아닌 새롭고도 공감할 수 있는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2019년과 2020년에 진행된 체커톤 대회를 알게 된 뒤 정보와 미디어를 다루는 ‘청소년 SNS 기자단’ 아이들과 이번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허위정보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청소년 SNS 기자단만의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청소년지도사로서 다양한 청소년 활동을 개발하고 제공하면서 단순히 일방향적인 교육과 지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청소년이 자기주도적인 활동과 경험을 할 수 있을지가 항상 고민거리였다. 청소년 활동은 지도자나 교사 중심이 아닌 ‘청소년에 의한’ 활동이 되어 그들에게 의미가 있어야 참여 수준, 즉 자기 주도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기 주도성이 높아질수록 청소년의 배움의 수준이 깊어가고 성인에게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질 수 있다.

내가 본 체커톤 대회의 핵심은 청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이었다매니저, 튜터, 슈퍼바이저는 청소년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할 뿐 대회 진행 과정에서의 모든 선택은 청소년 스스로의 몫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어른의 역할은 리더나 지도자가 아니라 촉진자로서 청소년이 품고 있는 열망, 지향하는 가치에 관해 스스로 행동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에 옮기게끔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체커톤 대회는 청소년과 어른 모두 이상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조로 기획됐다따라서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든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은 극적인 성취감과 함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 진단에서 해결 방안까지 스스로
처음 기획 회의를 하면서 막막해하는 우리 조원들한테 2020년도 체커톤 대회 참가 프로젝트들을 정리해 보여주었다. 수준 높은 지난해 결과물을 본 조원들은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각 결과물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해가며 회의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어떤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지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자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내용이 아닌 방법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전파되지 않는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논의에서 시작된 회의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에 앞서 어떤 내용이든 많은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집중됐다. 그리고 전파 방법을 고심하다 ‘카카오톡 채널’을 선택하자고 결론이 모아졌다. 좋은 콘텐츠를 잘 홍보하여 전파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쉽게 전파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정·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참신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카카오톡은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이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플랫폼이며, 허위정보의 빠른 유포 속도에 대처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대중성과 접근성 모두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법이 정해졌으니 이제 내용을 정할 차례다. 먼저 아이들에게 내용을 정하기에 앞서 왜 사람들이 허위정보에 취약한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우리만의 머리에서 답을 찾기보다 주위 청소년에게 의견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방법인 사전 설문조사를 추천했다. 조원들은 설문지를 직접 작성해 학교나 학원 친구들에게 배포했고 그 결과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가 허위정보에 취약한 이유는 바로 ‘번거로움’ 때문이다. 하나의 정보를 습득할 때 이 정보가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적어도 몇 번의 인터넷 검색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에도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학교, 학원 등을 통해 접하는 수많은 정보를 모두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그냥 무심코 접한 많은 정보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남게 되고, 사실이 되어 누군가에 전파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을 것이다. 이렇게 얻은 결론은 ‘그럼 우리가 직접 팩트체크를 해주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너 그거 알자’라는 우리의 카카오톡 채널이 탄생했다매일 아침 출근길, 등굣길에 주요 사건과 이슈를 직접 팩트체크하여 카카오톡으로 보내줌으로써 이용자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손쉽게 올바른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큰 틀이 잡히자 세부 내용은 금세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만든 ‘너 그거 알자’ 채널의 메인 콘텐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아침마다 알려주는 ‘1일1팩트체크’.
둘째, 챗봇 기능을 활용해 어려운 팩트체크를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해보는 ‘Q체커봇을 이겨라’.
셋째, 일방향적 정보 전달이 아닌 구독자가 의견과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대신 체크해줌’.


카카오톡 채널 ‘너 그거 알자’에 게시된 ‘1일1팩트’.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카카오톡 채널 ‘너 그거 알자’에 게시된 ‘대신 체크해줌’.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챗봇 기능을 활용해 어려운 팩트체크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Q체커봇을 이겨라’. <사진 출처: 필자 제공>
 


1일1팩트체크
운영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과 이슈를 모아 팩트체크하여 아침마다 발송하기, 채널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매번 새로운 포스트를 만들고 홍보 이벤트 진행하기, 다양한 주제와 챕터로 챗봇 게임을 만들어 운영하기 등 이 모두가 학업과 병행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거기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활동이 힘들어 대부분의 회의는 학원이 끝난 오후 9시쯤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이뿐이 아니다. 영상, 만화, 소설, 게임 등 다른 팀의 콘텐츠와는 달리 카카오톡 채널은 눈에 보이는 실물 결과물도 아닐 뿐더러 ‘완성’이라는 단계가 있지 않다. 즉각적인 보상이나 성취감을 얻기 어려운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열정은 사그라져 고비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1일1팩트체크’를 쉬거나 홍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속 학교가 모두 달랐던 4명의 조원들은 매일 밤 비대면 회의로 모이며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갔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드디어 아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아무 내용도 없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던 ‘너 그거 알자’ 채널은 다양한 게시물로 채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었다. 0명이었던 채널 구독자는 프로젝트가 종료될 시점에 우리의 초기 목표였던 200명을 넘어 220명까지 늘어났다.
우리 아이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카카오톡 채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희가 쓴 글을 수백 명의 사람이 지켜볼 때 어떤 느낌이 들 것 같니?” 맨 처음 아이들의 대답은 ‘성취감’이었다하지만 시상식이 다 끝난 후, “너희가 쓴 글을 수많은 사람이 보고, 발표까지 했는데 기분이 어때?”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의 대답은 ‘책임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쓴 글과 말이 누군가에게 편견과 고정 관념을 심어 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알아보고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나는 아이들이 이런 대답을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들뜬 마음을 즐기기도 바빴을 텐데 단지 많은 사람이 내 글을 봐서 좋다는 감정에 앞서 책임감과 경각심을 느꼈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생활화하겠다고 다짐하는 태도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짧은 시간에 훨씬 더 성숙해진 아이들을 보며 나는 대회 참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청소년이 주인공인 대회
우리 어른들은 ‘청소년이 미래이고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미래의 주인공일 뿐 지금은 아직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청소년은 아직 선거를 하기에는 미숙해’, ‘청소년이 스스로 배울 교육을 선택하기에는 아직 어려’ 등 청소년을 위한다는 말과 다르게 청소년을 믿지 못하는 이중성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해 본선에 오른 12팀의 발표를 보면서 청소년의 창의력과 열정은 어른들의 기대와 예상을 항상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청소년이 어리기 때문에 못할 것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다. 청소년이 더 높게 뛰려하고 더 멀리 보고 있을 때도 어른들은 청소년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 탓에 어른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이들을 가둬두려 한다. 하지만 청소년은 어른의 생각 이상으로 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어줘야 한다. 청소년을 마주보고 이들에게 지시하고 따라오게 만드는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의 옆에 서서 그들이 가고 싶은 곳을 같이 가주는 어른, 지도자, 교사, 부모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체커톤 대회처럼 청소년의 역량을 배양하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는 활동의 장이 앞으로는 더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본선 당일 대회에 참가한 ‘아 그거 아닌데’ 팀원과 매니저인 필자(사진 맨 앞줄).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도 모든 팀원이 다 참여할 수 없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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